김광림 시인. 연합뉴스
한국시의 세계화에 힘썼던 문단의 원로 시인 김광림(본명 김충남) 전 한국시인협회장이 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1948년 단신으로 월남해 그해 '연합신문'을 통해 시 '문풍지'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육군 소위로 참전하기도 한 고인은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다. 1961년에는 김종삼, 김요섭 시인 등과 함께 문예지 '현대시'를 창간했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고인은 문화공보부, KBS, 한국외환은행 등에 잠시 재직한 뒤 장안대 교수로 봉직하다 1996년 퇴직했다. 1992~1994년에는 제28대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서구 모더니즘의 바탕에서 깨끗하고 명징한 이미지의 시 세계를 추구했다. 정지용, 김광균으로 시작해 김광섭, 박남수 등을 거치며 형성된 모더니즘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필명 광림은 김광균의 광(光)과 김기림의 림(林)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1959년 '사상계'에 발표한 시 '꽃의 반항'은 전후(戰後)의 황폐함을 배경으로 꽃과 인간의 속성을 대비시킨 서정성을 드러낸 그의 대표작이다.
"꽃은 꺾인 대로 화병에 담아 채우면 / 금시 향기로워 오는 / 목숨인데 / 사람은 한번 꺾어지면 / 그만 아닌가 (중략) 사람도 그만 향기로울 데만 있으면 / 담아질, 꺾이어도 좋은 꽃이 아닌가" (김광림, '꽃의 반항' 중)
화가 이중섭(1916~1956)과의 인연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해방직후인 1947년 원산에서 이중섭과 처음 만나 그가 작고한 1956년까지 인연을 맺었다. 군 복무시절 이중섭의 요청으로 양담배 은박지를 수집해 그림 재료로 전해줬던 장본인이다. 이중섭은 생전에 극도의 자기혐오 속에서 자신의 그림들을 불살라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 김 시인은 이중섭의 그림들을 잘 보관했다가 돌려줬다고 한다. 이중섭과의 인연은 고인이 2006년 펴낸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화가 이중섭 생각'에 잘 드러난다.
김 시인은 1980년대부터 한·중·일 시단 교류에 앞장서며 한국시의 세계화에 힘썼다. 시집 '오전의 투망', '천상의 꽃', '앓는 사내' 등 다수와 평론집 '존재에의 향수, '아이러니의 시학', '일본현대시인론' 등을 펴냈으며,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일·한 문화교류기금상, 청마문학상 등을 받았다. 1992~1994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유족으로 아들 김상수(바움커뮤니케이션 회장)·김상일(조각가)·김상호(대만 과기대 학장 겸 대만 현대시인협회장) 씨, 딸 김상미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