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 월요일부터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이 예고된 가운데 14일 오전 서울의 한 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주요 의과대학 교수들과 의대 교수 단체들이 오는 18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하는 집단 휴진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 의협 결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13일 의협이 '단일 대오'를 강조하자마자 휴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사들도 나오고 있어 의료계 내부 균열의 조짐도 보인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장 오는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휴진이 현실화하기 전에 의료계와 정부의 극적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주요 의대 교수들 "의협 주도, 단일 대오 대응"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주요 의과대학 교수들과 의대 교수 단체, 의학회들이 대거 오는 18일 의협이 주도하는 집단 휴진 및 총궐기대회에 동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은 18일 휴진을 발표하면서 의협에 힘을 실었다.
우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27일부터 정부가 현 의료 및 의대교육 사태를 해결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할 때까지 무기한 휴진을 하기로 결정했다.
가톨릭의대 교수들도 18일 집단 휴진에 들어간다. 특히 가톨릭의대는 오는 18일 집단 휴진 이후 정부의 대응을 지켜본 뒤 오는 20일 '무기한 휴진' 등 추가 행동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울산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와 고려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도 집단 휴진에 동참하기로 했다. 고려대 의대 비대위는 "의협 주도하에 단일 대오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의대 교수 단체도 집단 휴진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또 다른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18일 의협이 주도하는 집단 휴진 및 총궐기대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의학회 차원에서의 동참 결정도 있다. 응급의학 의사들과 마취통증의학 의사들은 "의협의 결정을 따른다"며 집단 휴진과 총궐기대회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응급실을 지켜야 하는 만큼 직접 집단 휴진에 동참하지는 않고, 당일 근무하지 않는 의사들만 총궐기대회에 참석할 방침이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비대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마치 '집단 휴진 당일 병원에 남는 의사들은 정부 뜻에 동조하고, 일부 의사만 휴진할 것'이라는 정부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당일 근무하지 않는 의사들은 총궐기대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년 정원 재조정 초점 맞춰야"…"단일 창구? 협의 없어" 균열도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대정원 증원사태 대응방안 논의를 위한 제4차 비공개 연석회의'가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이런 가운데, 일부 의사들이 18일 의협이 주도하는 집단 휴진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계 내부 균열이 감지되기도 한다.
대학병원들의 뇌전증 전문 교수들로 구성된 거점 뇌전증지원병원 협의체는 "협의체 차원에서 의협의 단체 휴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협의체는 "뇌전증은 치료 중단 시 신체 손상과 사망의 위험이 수십 배 높아지는 뇌질환으로 약물 투여 중단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며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협의체는 "전 세계 정보 수집, 전문가 토론회 및 과학적 분석을 통해 2026년 의대정원을 재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전 국민의 공분을 피할 수 없고, 나아가 전 세계 의료인과 주민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와 '2025년 의대 증원 재조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협의체는 의협의 2025년 의대 정원이 아니라 '2026년 의대 정원'을 논의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 120여개 아동병원이 속한 대한아동병원협회도 휴진 동참에 주저하고 있다. 의협의 투쟁에 공감하면서도 진료를 멈추고 휴진에 동참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협회 차원에서 '불참 결정'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140여개 분만 병·의원이 속한 대한분만병의원협회도 18일 정상 진료한다는 방침이다. 분만협회도 협회 차원에서 지침을 내리지는 않지만, 임원들은 집단 휴진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분만협회 관계자는 "전국 분만 병·의원은 대부분 휴진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의협은 '압도적 지지'라며 집단 휴진 규모가 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휴진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18일에 휴진하겠다고 신고한 의료기관은 총 1463곳으로 전체 명령 대상 의료기관(3만6371곳)의 4.02%에 그쳤다.
여기에 사직 전공의들도 의협에 불신을 드러내면서 의료계 내부 균열이 부각되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3일 '단일 대오'를 주장한 의협에 대해 강력 비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임현택 회장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죠?"라며 "뭘 자꾸 본인이 중심이라는 것인지. 벌써 유월 중순이다. 임 회장은 이제는 말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지 않을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전히 (임 회장 등 의협이) 전공의와 학생만 앞세우고 있지 않나. 단일 대화 창구? 통일된 요구안? 임 회장과 합의한 적 없다"며 "범의료계 대책위원회? 안 간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의대 비대위 국회 회동…의협은 '대정부 요구안' 논의중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사태 대응방안 논의를 위한 제4차 비공개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당장 오는 17일부터 서울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고, 18일에는 의협이 주도하는 '전국 집단 휴진'이 예고된 만큼 휴진이 현실화하기 전 정부와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와 의료계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기 하루 전인 오는 16일 서울의대 비대위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의원들을 만날 예정이다.
서울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국회 복지위에서 만남 제안이 와서 동의했다"며 "대학병원 의대 상황과 저희 조건을 설명하고 국회의 역할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의대 비대위는 지난 11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의료계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 역할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의협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의료계 대화창구는 의협으로 통일해 달라"며 "조만간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 최안나 대변인은 "18일 투쟁 전에 정부에 요구할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준비하고 있다"며 "(요구안에는)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와 의대 증원 재논의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이 요구안에 대해 정부가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면 오는 18일 예정된 집단 휴진도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의협과 정부가 타협을 이룰 수 있을지는 대정부 요구안 내용에 달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협이 '의대 증원 철회'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면 정부와 타협할 여지도 생긴다. 정부는 이미 의대 증원 절차는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협은 당초 "이르면 13일 저녁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내부 논의가 길어지면서 14일까지도 요구안이 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