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중국과 필리핀 사이 벌어지고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물대포를 동원한 양국 선박간 충돌은 물론 최근에는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는 등 무력 충돌 수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양국 영유권 분쟁의 이면에는 남중국해를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해양패권을 노리는 미중간 전략경쟁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필리핀 영유권 분쟁 무력 충돌…서로 네 탓
연합뉴스필리핀 해군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서 자국 해군 선박이 상주 병력에 대한 인원교대·재보급 임무를 수행하던 중국 해경선이 고의로 충돌 사고를 일으켜 필리핀 병사 1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필리핀 군은 부상 병사가 의료시설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현지 매체 인콰이어러는 이 병사가 1명이 엄지손가락이 잘리고 여러 병사가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국 해경은 선박 충돌에 이어 필리핀 선박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가 하면 필리핀 함정에 올라타 총 여러 자루와 구명보트 여러 척을 빼앗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과 함께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무책임한 중국의 행동을 규탄한다"면서 "중국 선박의 위험하고 고의적인 물대포 사용, 충돌, 차단 기동, 손상된 필리핀 선박 예인 등은 무모하며 역내 평화와 안정에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 해경은 "필리핀 선박은 중국의 거듭된 엄정한 경고를 무시하고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을 위반한 채 정상 항행하는 중국 선박에 비전문적 방식으로, 고의로, 위험하게 접근해 충돌 발생을 유발했다"면서 "책임은 완전히 필리핀에 있다"고 주장했다.
더 빈번해지는 무력 충돌…국제재판도 소용없어
연합뉴스스플래틀리 군도 인근은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으로 최근 양측간 물대포 발사와 고의 선박 충돌 등 무력 충돌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스프래틀리 군도는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된다. 하지만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 등 남중국해 90%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필리핀을 비롯한 인접국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에 필리핀은 국제상설재판소(PCA)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016년 PCA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여전히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자국이 영유하는 남중국해 해역에 침입하는 외국인, 외국 선박을 최장 60일간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시행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또, 오는 9월 16일까지 이 지역을 어업 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
반면, 필리핀은 자국 어민들에게 남중국해 필리핀 EEZ에서 계속 조업할 것을 촉구하며 중국의 조치를 무시하겠다고 공표해 양국간 기싸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 등에 업은 필리핀…"남중국해 패권 차지 저지"
연합뉴스스플래틀리 군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국간 영유권 분쟁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중국 측의 공격적인 도발에 필리핀 측이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해상 전력이 필리핀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필리핀이 중국의 무력에 굴하지 않고 대결 구도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미국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양국간 영유권 분쟁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데 동맹국인 필리핀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철통같다"면서 "필리핀의 항공기나 선박, 군대에 대한 어떠한 공격에 대해서도 (미국과) 필리핀 간 상호 방위 조약을 발동하게 할 것"이라고 중국에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
말 뿐만 아니라 미국은 필리핀과 수시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중국을 겨냥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은 최근에도 필리핀은 물론 캐나다, 일본과 함께 남중국해 필리핀 EEZ에서 이틀간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4월 훈련에는 캐나다 대신 호주가 참여하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과 필리핀 양자간 벌이는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 이유는 해양대국을 꿈꾸는 중국이 남중국해의 해양 패권을 차지하고, 더 나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패권을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중국은 4천km에 이르는 긴 해안을 가지고 있지만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 남쪽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 막혀 해양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이를 십분 활용해 동맹국들과 함께 주요 길목에 중국을 겨냥한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동시에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을 지원하며 중국의 해양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중국 견제하려 비밀작전도…"미국, 긴장 고조 조장"
로이터통신은 지난 14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미국 국방부가 중국산 백신에 대한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비밀 작전을 벌였다고 폭로한 바 있는데 이 역시 남중국해 해양패권과 관련돼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크게 부족했다. 그 사이 중국이 자국산 백신을 개발도상국에 공급하는 '백신 외교'를 펴며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필리핀 역시 중국으로부터 백신을 공급받는 조건으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대통령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벌이고 있는 영유권 분쟁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미국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중국산 백신을 깎아 내리는 비밀 작전을 편 이유다.
이런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은 자신들의 '레드라인'(한계선)이자 '핵심이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의 19일자 사설은 중국의 이런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 매체는 미국의 남중국해 문제 개입에 대해 "미국의 주요 목표는 중국의 영향력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중국 주변에 혼란을 조성하면서 중국과 주변 국가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