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23명이 숨진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사고를 수사중인 경찰이 사건 관련자들을 입건하고 강제수사로 증거물을 확보하는 등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화재 당시 CCTV를 확보해 발화점을 찾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한 만큼, 경찰의 칼끝은 아리셀의 안전관리 전반으로 속도감 있게 나아갈 전망이다.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남부경찰청 화성 화재사건 수사본부는 지난 26일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인 아리셀과 박순관 대표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 했다.
화재 발생 다음날인 지난 25일에는 박 대표 등 아리셀 관계자 3명과 인력파견 업체인 메이셀 측 2명 등 관련자 5명을 입건하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에는 사망자 23명의 신원도 모두 확인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CCTV 확보로 시간 절약한 경찰, 수사 속도낼 듯
이제 수사팀 앞에 남은 건 화재 원인 규명이다. 원인을 확인해야 참사의 책임 소재를 따져볼 수 있다.
통상 대형 화재는 발화 지점을 파악하는 데만 해도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 지난 2020년 4월,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역시 발화점을 확인하는 데 많은 수사력이 동원됐다.
화재가 발생한 곳이 신축 공사장이다 보니 당시 상황을 추정할 단서가 부족했다. 수사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기관과 4차례 합동감식을 실시하고, 인근에 주차돼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까지 확인했다.
또 건물 내부의 연소 패턴을 확인하고 각 공정별 작업 위치와 내용도 확인했다. 그 결과 우레탄 공사로 유증기가 가득 찬 건물 지하 2층에 있던 작업자가 용접을 하던 중 불꽃이 튀며 화재가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이번 아리셀 화재 사고에선 이런 과정을 일부 단축할 수 있다. 내부 CCTV 영상을 통해 당시 화재 상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CCTV 영상에는 아리셀 공장 3동 2층 작업장에 적재된 배터리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42초 만에 연기가 가득 차는 장면이 모두 담겨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CCTV 영상만 보고 발화점이나 화재 원인이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면서도 "CCTV 영상을 통해 불이 시작되고 확대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화재 사건과 비교하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고, 수사도 속도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의 의무 이행' 여부 확인이 수사 관건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경찰은 목격자와 아리셀 관계자를 상대로 평소 배터리를 보관하는 방식, 사고 당일 배터리 포장 과정에서의 특이점 여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또 화재예방 교육 등 안전수칙을 준수했는지를 살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아리셀 박 대표 등에게 적용한 혐의 중 하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업무 영역에서 주의를 다하지 않아 상대방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케 했을 경우에 인정된다.
핵심은 '업무상 주의 의무'를 이행했는지다. 업무 현장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했더라도 안전교육이나 매뉴얼 등을 이행했다면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아리셀은 유해화학물질인 염화 티오닐(SOCl2)을 취급하고, 폭발 가능성이 있는 리튬 배터리를 생산하기 때문에 업무에 위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주의 의무를 이행했는지가 관건인데, 당시 근무자나 감독관청인 소방당국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리셀이 부주의 했던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리셀은 화재 발생 19일 전인 이달 5일 소방당국으로부터 화재안전 컨설팅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화성소방서 관계자들은 직접 아리셀에 방문해 관계자 2명을 상대로 아리셀이 보관하고 있는 위험물 취급 방법과 화재 발생 시 조치, 대피방법 등을 안내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리셀은 올해 3월에도 소방당국으로부터 화재 위험성을 지적 받았다. 화성소방서는 올해 3월 28일 아리셀에서 소방활동자료조사를 실시하고 "3동 제품 생산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 있음"이라고 위험성을 알렸다. 소방당국의 두 차례 경고에도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아리셀 측이 주로 일용직 형태로 운영되는 외국인 작업자들에게 안전 및 화재예방 교육을 실시했는지, 화재 발생 시 매뉴얼을 숙지시켰는지 등을 확인할 전망이다.
경찰의 또다른 관계자는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고, 평소 안전매뉴얼이나 화재교육 여부, 소방당국의 주의 이후 사후조치 등을 따져볼 것 같다"라며 "화재 직후 임직원들이 나눈 메시지나 통화도 눈여겨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4일 오전 10시 30분쯤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내국인 5명(남성 3명·여성 2명), 중국인 17명(남성 3명·여성 14명), 라오스 여성 1명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