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야권이 재차 추진하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합의가 없는 법안인데다가 야당만이 추천하는 특검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의 수사를 먼저 지켜봐야 한다는 '선(先)수사·후(後)특검' 입장도 명확하다. 지난 5월 야권 단독으로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내세웠던 논리에 변함이 없는 셈이다.
다만 '탄핵 청원'에 의해 악화한 여론이 부담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명백한 위법 사항이 있지 않는 한 탄핵은 불가능하다면서도, 상황을 잘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갈등과 대결의 정치가 반복되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을 극복할 수 없다.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도 없다"며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면, 그 모든 어려움과 고통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자진사퇴하고, '채상병 특검법' 등을 야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정국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특히 채상병 특검법은 여야 '강 대 강' 정국의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야7당이 추진한 채상병 특검법은 이르면 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맞서겠다는 입장이지만 재적의원 5분의 3을 확보한 거야(巨野)는 24시간이 지난 후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할 수 있다.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은 정부로 이송된 법안을 검토해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이미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법안은 당연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위헌 사항이 분명한데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직무 유기"라고 밝혔다.
정 실장은 거부권 행사 논리로 △여야 합의가 없었다는 점 △야당만의 추천으로 이뤄진 특검은 3권 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 △상설 특검 성격인 공수처 위에 또 다른 특검이 오는 '옥상옥'이라는 점 △공수처와 경찰 수사를 지켜본 뒤 미흡하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앞서 지난 5월 야권 단독으로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내세웠던 논리와 변함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90만 돌파한 '尹 탄핵 청원'…악화한 여론은 부담
다만 여론이 변수다. 최근 '대통령 탄핵 청원' 등 부정적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서 관련 청원 동의 수가 이날 기준 9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민주당은 실제 탄핵 자체는 역풍 우려를 고려해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지만, 해당 청원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에서 심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명백한 위법 사항이 있지 않는 이상 탄핵은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정치적으로 탄핵을 계속 언급하면서 국정이 잘 진행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온 것 같은데, 이를 주시하고 국회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악화한 여론을 밑바탕에 두고 재차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재의결까지 방어하는 것, 나아가 여권 내에서조차 불거지는 찬성론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실 입장에서 만만찮은 과제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 당시 활성화돼 있던 청와대 국민 청원에서 문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청원 역시 146만 명에 마감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탄핵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법 위반 여부다. 정치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탄핵 청원과 함께 특검 찬성 여론도 부담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채상병 특검 도입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63%가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26%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반대했으며 의견을 유보한 응답자는 11%였다.(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1.8%.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실은 정부의 개혁 속도와 강도를 높이는 한편, 약자 복지 등에 무게를 둔 국정 기조로 돌파구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자유경쟁에 근거한 경제발전을 추진하면서도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이 있다면 손잡아 일어설 수 있게 돕는 것 또한, 우리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정부는 올해 저소득층 생계급여를 4인 가족 기준으로 21만원 증액했는데, 이는 5년간 생계급여를 총 19만6천원 인상한 문재인 정부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정무장관직 신설을 통해 국회와 정부의 실질적인 소통을 강화하며 냉각된 정국을 풀어가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 정책과 개혁 기조를 일관되고 강력하게 해 나가겠다는 뜻"이라며 "정무장관직을 신설하기로 한 것도 정부 개혁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추진하기 위해선 야당과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