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 직후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 대표직 연임 선언을 앞두고 있는 이재명 전 대표가 출마 선언문에 담을 내용을 두고 막판 '고심'에 들어갔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강조하며 경제와 민생에 중점을 둘 방침이지만, 이번 당 대표 연임이 대권가도로 이어지는 연장선 성격이 짙은 탓에 대선 주자로서의 메시지 또한 담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때문에 이 대표 측에서는 중도층을 아우를 수 있는 확장성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동안 이 대표의 입지를 다져 준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내용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가 관건이 됐다.
연임 도전 발표하는 李…'전당대회' 출마하지만 '국민 전체' 향한 메시지
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대표는 오는 9~10일로 예정된 당 대표직 후보 등록을 즈음해 연임 도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민주당 전국당원대회는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로 이 전 대표의 연임을 위한 무대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출마 선언문에 담길 메시지는 당권을 거머쥐기 위한 내부 경쟁적인 내용보다는 보다 범주가 큰 주제들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메시지의 중심은 민생, 안보 등 국민 전체를 향한 내용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한 친명계 인사는 "늘 했던 대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민생을 위해 이재명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득하는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 본인도 지난 달 당 대표 사퇴를 발표하면서 "전당대회는 의례적인 당원들의 축제가 아니라 희망을 잃어버린 많은 국민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중요한 모멘텀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권 주자로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예고인 셈이다.
이번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일제히 '친명'(친이재명)을 강조하고 나선 점도 중도층을 위한 메시지에 힘을 실어야 하는 이유로 떠올랐다. 최고위원 후보들이 이미 이 전 대표만 바라보며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메시지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마저 지지층 중심의 행보에 나선다면, 중도층의 반감이 더욱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SNS를 통해 "전화·문자 그만 좀…시도 때도 없는 문자와 전화는 격려가 아니라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했다. 과도한 응원에 대한 피로감 호소의 측면도 있지만, 중도층에게 보여주기 위한 언행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체돼 있는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부담도 중도층을 겨냥한 메시지의 필요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4.10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여당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는 이른바 '이재명 일극 체제'에 대한 부담감도 꼽힌다.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당 지지율을 높일 필요가 있는 만큼, 그간 '우클릭'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경제정책 등이 담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중도층 '활성화' 노리지만 '강성 지지층'과의 사이에서 고민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오른쪽)가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와 같은 중도 확장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소위 '개딸(개혁의 딸)'로 대표되는 강성 지지층 또한 결집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이 전 대표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권리당원 등 강성 지지층은 최근 당내 주요 현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국회의장 당내 경선 때는 강성 지지층이 원했던 추미애 의원 대신 우원식 의원이 당선되자 집단 탈당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총선은 물론, 주요 정치 현안 때마다 이 전 대표와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만큼 그의 입장에선 강성 지지층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국회의원만이 투표권을 행사하던 원내 선거에 당원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고, 이 전 대표의 거취와도 관련 있는 당 대표 임기나 당직 관련 사항도 당헌·당규 개정을 통해 당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경했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촉구하는 국회 청원 동의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선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병대 채 상병 특검(특별검사)법 반대 등으로 인해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야권 지지층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인 만큼, 이 전 대표가 관련 내용을 메시지에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월 열린 온라인 당원 행사 도중 한 당원이 게시한 내용을 읽다가 '윤석열 탄핵'이라는 내용이 나오자 깜짝 놀란 듯 입을 막은 적이 있다.
'중도' 겨냥해도 강성 지지층은 지지?…李 강조해 온 기본소득 등 민생·경제 중심 될 듯
중도층과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는 사이, 당내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가 중도층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경우 그를 지지하는 팬덤 또한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전 대표를 향한 지지세는 당원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인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이자 당 대표로서의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준 측면에 기인한 점도 있는 만큼 그의 변화를 지지층이 적극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친명계 의원은 "중도로의 '확장'이라기보다 '활성화'가 맞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의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루고, 지지자들이 적극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서 지지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등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심 지지층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보다 새롭고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제를 제시하면 거기에도 적극 공감할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강성 지지층이 이 전 대표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면 변화를 받아들임은 물론, 오히려 지지층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 설득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민주당 인사는 "민주당은 원래 계급 정당이 아니었기에 중도층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동안 정책을 추진할 때 일관성이 부족했다고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과거부터 기본소득 등 민생 분야 의제를 강조해 온 만큼, 다시 이런 부분들을 살려서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