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내정된 홍명보 울산 HD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마침내 한국 축구 대표팀의 새 사령탑 선임 작업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축구 팬들의 반응은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줄곧 대표팀 감독직을 맡을 생각이 없다고 강조해 왔던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현역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반대했던 축구 팬들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외국인 감독 선임을 큰소리쳤으나, 결국 국내 지도자를 선임해 지난 5개월간 헛발질을 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협회는 7일 "축구 국가대표팀 차기 사령탑에 홍명보 감독을 내정했다"면서 "8일 오전 축구회관에서 이임생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관련 내용을 브리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축구협회는 지난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탈락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후 약 5개월간 새 사령탑 선임 작업을 진행했다. 전력강화위원회 수장으로 정해성 위원장을 임명해 클린스만 전 감독의 후임을 물색해 왔다.
정 위원장 체제의 전력강화위는 무려 100여 명의 외국인 지도자를 놓고 평가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잘 아는 외국인 감독 선임을 바라는 팬들의 요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안한 재정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축구협회는 내년 준공 예정인 천안 축구종합센터 공사 비용이 늘어나 300억 원가량 대출을 받았다. 여기에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하면서 거액의 위약금도 지불해야 했다.
결국 연봉 등 세부 조건을 맞추지 못한 전력강화위는 유력 후보를 줄줄이 놓쳤다. 리즈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등을 이끌었던 제시 마쉬 감독은 캐나다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했고, 헤수스 카사스 감독은 이라크 대표팀에 잔류하는 등 협상 과정에 난항을 겪었다.
전력강화위는 당초 5월 중으로 정식 사령탑을 선임하겠다며 3월 A매치를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로 치렀다. 하지만 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못해 6월 A매치에 한 차례 더 임시 감독 체제를 운영하며 김도훈 감독을 앉혔다.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 연합뉴스새 감독 선임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으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정 위원장은 외국인 지도자는 연봉 등 현실적인 조건이 맞지 않아 선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홍명보 감독, 김도훈 감독 등 국내 지도자 쪽에 무게를 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협회 고위층은 외국인 지도자 선임을 바라는 팬들의 요구에 국내 지도자 선임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협회 고위층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정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돌연 사의를 표하며 새 감독 선임 작업이 더 지체될 것으로 보였다.
정 위원장이 물러난 전력강화위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를 중심으로 새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했다. 이 기술이사는 새롭게 후보로 거론된 거스 포옛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 다비드 바그너 전 노리치 시티(잉글랜드) 감독과 면담을 위해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하지만 전력강화위는 여기서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결국 선택지가 국내 지도자뿐이었던 전력강화위는 돌고 돌아 홍명보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택했다.
홍 감독은 줄곧 새 사령탑 후보로 거론됐으나 명확히 거절의 뜻을 밝혀왔다. 지난달 30일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는 "나보다 더 경험 많고, 경력과 성과가 뛰어난 분들을 데리고 오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내 입장은 항상 같으니 팬들께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새 사령탑 선임에 난항을 겪는 협회의 설득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김광국 울산 대표이사는 "축구협회와 홍 감독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고 충분히 협의했다"면서 "한국 축구와 K리그의 발전을 놓고 많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의 소속팀 울산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시즌 중 사령탑이 대표팀으로 떠나게 돼 잔여 일정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올 시즌 K리그1 3연패에 도전하는 울산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1위 김천 상무(승점 40)에 1점 차로 뒤진 2위(승점 39)에 자리하고 있고, 3위 포항(승점 38)에 1점 차로 쫓기고 있는 만큼 상위권 승점 차가 촘촘하다.
울산 HD 서포터스 처용전사의 대한축구협회 앞 트럭 시위 모습. 처용전사 제공
홍 감독은 지난 2월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직후에도 하마평에 오른 바 있다. 이에 울산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격분하며 축구회관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였고, 성명문을 통해 K리그 현역 감독의 차기 대표팀 사령탑 선임을 반대하는 뜻을 전했다.
당시 이들은 트럭에 설치한 전광판에 '필요할 때만 소방수, 홍명보 감독은 공공재가 아니다', 'K리그는 대한축구협회의 장난감이 아니다', 'K리그 감독 국가대표 감독 선임 논의 백지화' 등의 문구를 띄웠다.
그러면서 "대한축구협회의 무능력함을 규탄한다. 협회 졸속행정의 책임을 더는 K리그에 전가하지 말라"면서 "홍명보 울산 감독을 비롯한 모든 K리그 현역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협회는 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홍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홍 감독은 오는 9월 15일 홈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차전부터 대표팀을 이끈다. 계약 기간은 2027년 1~2월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 약 2년 6개월이다.
협회는 8일 오전 축구회관에서 이 기술이사 주재로 홍 감독 내정과 관련한 내용을 브리핑할 예정이다. 극심한 반대 여론을 딛고 홍 감독을 선임한 데 대해 팬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