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신임 당 대표가 23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제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한동훈 신임 당대표가 23일 결선 없이 당선을 확정 지으면서 야권이 띄운 각종 특검법을 놓고 당정 갈등에 다시 불이 붙을 조짐이다. 한 대표는 후보 시절부터 당대표가 되면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온 데다 당선 직후엔 논란을 빚은 김건희 여사의 검찰 조사를 놓고 "국민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직격했다.
한동훈표 제3자 특검법을 둘러싼 당내 눈치 싸움도 이어지고 있다. 한 대표가 압도적 과반 득표로 당선된 만큼 강한 그립(grip·장악력)으로 여야 협상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 반면, 여야 협상에 나서는 순간 대통령실과 선을 긋는 모양새에 아직까지 부담스러워 하는 의원들이 많은 만큼 한 대표가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다는 예측도 공존한다.
야권이 친윤계와 친한계 사이를 파고들기 위해 추진 중인 한동훈 특검법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친윤계와 친한계가 야권이 만든 특검이라는 칼을 서로에게 겨누고 있는 형국으로 흐를 수 있는 만큼 당정 갈등의 진폭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거부권 고리' 끊어야 하지만…與의원들 특검법 협상엔 거부감
국민의힘 한동훈 당대표 당선자가 2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서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당기를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내의 벽을 넘어야 한다.
앞서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당 대표가 누가 돼도 원내 사안은 원내대표 중심으로 간다"며 "분열되지 말고 똘똘 뭉쳐 단일대오로 가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 원내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선(先)수사 후(後) 특검'을 강조해 왔다. 반면 한 후보는 지난 16일에도 "우리 보수는 이 이슈에 대해 떳떳해져야 한다. 보수는 이런 상황이 생긴 것에 대해 죄송해야 되고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내는데 보수로서 적극 나선다는 메시지를 국민께 드려야 한다"고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추 원내대표가 전당대회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의총에서 원내대표로서의 그립감을 강조한 데에는 이 같은 한 후보의 입장에 대해 일찌감치 선을 그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제3자 특검법에 대한 당내 반응 역시 아직까지는 대체로 미온적이다.
영남권 한 초선 의원은 "여당 의원이 사실상 대통령 특검법에 동의를 쉽게 할 수 있겠느냐"며 "막상 당 대표가 되어서 여야 협상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특검 동력이 다소 상실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초선 의원도 "아직 의원들이 공론화 한 적은 없지만 한 대표가 온다고 해서 당장 제3자 특검법에 드라이브를 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한계의 반응은 다르다. 62.84%의 득표율로 일찌감치 승리를 확정 지은 만큼 여태까지 미온적이던 의원들도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이 당대표와 호흡을 맞출 최고위원 구성을 보더라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친한계는 2명(장동혁·진종오 의원)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수석최고위원은 친한계 핵심의원으로 꼽히는 장 의원이 차지했다. 또 김민전 의원은 득표율이 15.09%로, 탈락한 박정훈 의원(16.41%)보다 낮지만 여성 몫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만큼 친한계 후보들이 약진한 측면이 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매번 거부권을 행사하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며 "야당과 잘 싸울 수 있는 대표가 온 만큼 특검법 협상을 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동훈·김건희 특검법까지…고차방정식 된 당정 관계
이 가운데 한 대표를 정조준하고 있는 한동훈 특검법은 채 상병 특검법 여야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여야 협상안이 도출된다면 사실상 대통령 거부권은 무력화되기 때문에 이미 심리적 분당 상태인 친윤계 의원들로서는 협상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동훈 특검법까지 동시에 추진된다면 친윤계가 이를 역공의 빌미로 삼을 여지가 있다. 친한계가 채 상병 특검법 협상에 나선다면 친윤계는 한동훈 특검법 등 한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는 것에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 후보는 지난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동훈표 채 상병 특검법에 이미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금 현재 수사 기소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인사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는 검사들이 하고 있는데 수사가 엉망 아닌가"라며 "저는 현재 특검법 대로 하는 게 정의롭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 협상에 나섰다가 오히려 당정 관계는 물론 당내 계파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제3의 변수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남아있는 만큼 가뜩이나 꼬여있는 당정 관계는 고차방정식이 되어가고 있다. 한 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국민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사실상 대통령실과 각을 세웠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총선 패배의 큰 원인으로 꼽히는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최근 김 여사가 제3의 장소에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특혜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민 여론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 대표로서는 이 같은 여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만, 대통령실의 역린인 채 상병·김 여사 의혹을 놓고 친한계와 친윤계의 시각 차는 이전보다 커진 셈이라 당정 갈등의 또 다른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