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이 품은 국보인 거조사 영산전. 고려시대 목조건물이다. 이재기 기자 수많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아름다운 경관을 보유한 팔공산이 지난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원의 효율적인 유지관리가 가능해졌지만, 팔공산의 문화적 가치를 재활용해 부가가치 창출의 기반을 만드는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팔공산에서 각종 문화사업을 펼치는 팔공문화원은 사업예산이 전무해 팔공산을 소재로 한 이렇다 할 사업을 펴지 못한 채 아카데미 강좌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대구시와 동구청이 팔공산의 문화사업을 추진해야 할 주체지만 공무원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팔공문화원(동구 팔공로 197길 25)의 올해 예산은 1억 1200만원이다. 세부 항목은 사무국장과 사무직원 1명의 인건비 6천만원, 문화원 운영경비 1500만원, 연간사업비 3700만원이다.
사업비는 '찔끔'.. 시키는 일은 '태산'
동구청은 쥐꼬리 예산을 쥐여주면서 '이것 해달라 저 사업해야 한다'는 요구만 쏟아내고 있다. 동구청은 지난해 예산 300만원을 주면서 '문화가 있는 날 행사' 행사를 6번이나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팔공문화원의 천장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계단에는 페인트 찌꺼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이재기 기자 반면 동촌유원지 부근에 만들어진 아양아트센터를 운영하는 기관인 동구문화재단은 예산이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2024년에는 수영장과 체육시설 리모델링 예산까지 책정해 총 예산이 144억원에 이르렀다.
동구문화재단의 연도별 예산액은 2022년 62억원, 2023년 65억원, 2024년 70억원이다. 이 액수로 미뤄볼 때 리모델링에만 근 80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은 지 20년된(2004년 5월 준공) 건물이면 보수해서 사용해도 될일인데 굳이 수십억원 혈세를 쏟아붓는 건 괜찮은지 따져볼 일이다.
아양아트센터의 매년 증액 예산만도 못한 '쥐꼬리'
사정이 이러니 '구청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은 지원하고 팔공문화원은 찬밥 신세'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구시 동구 백안동의 팔공문화원 외경. 이재기 기자 직전 구청장 시절에는 동구청이 아예 팔공문화원을 폐쇄시키려 했다는 뒷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심지어 2021년에는 동구청이 팔공문화원에 대한 예산 지원을 끊었던 적도 있다.
시내에 위치한 아양아트센터와 팔공문화원을 수평 비교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10년이 조금 넘은 아양아트센터 시설을 리모델링한다고 수십억원을 쏟아 부으면서 팔공산 문화유산의 재해석과 부가가치화를 고민할 팔공문화원에는 순수사업비 3700만원을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대구시와 동구청 공무원들이 팔공산 문화사업에 대한 계획이 있기나 한건 지,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일부 시민들은 "이러려고 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만든거냐"는 비판을 한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됐으면 법에 정한대로 공원관리사무소가 공원을 보호관리하고, 지자체에서는 높아진 팔공산의 위상에 걸맞는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 내는 고심을 해야 한다. 그게 순서다.
국립공원 돼도 달라진 게 없다?
찬란한 팔공산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과 이를 문화사업으로 연결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선순환 구조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실정법에 입각해 만들어진 팔공산 문화단체가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라도 해야 하는게 시청.구청이 할 일이다.
특히 팔공산의 자연유산 가운데 많은 부분이 관내에 위치한 동구청은 팔공산 문화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입장이다.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다. 팔공산에 변변한 문화박물관을 조성할 수도 있고 비로봉의 천제단 정비사업을 펼 수도 있다. 사방에 흩어진 팔공산과 팔공산 소재 문화재 관련 서적을 모아 도서관을 열 수도 있다.
팔공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 비로봉 정상석. 이재기 기자 팔공문화원을 매개로 팔공산의 자연유산 문화유산과 연계된 정기적 탐방행사를 만들 수도 있다. 예산이 있어도 제대로 집행이 안되니 대구시민들은 그저 휴일이나 여가 때 팔공산 주변의 맛집이나 카페만 드나들거나 절집을 한 차례 휘 둘러보는게 전부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 처럼 국립공원 팔공산이 됐으면 시민들이 그곳에서 얻는 수혜의 수준도 걸맞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전국 최고의 문화유산 가진 팔공산
전국 어느 곳을 보더라도 팔공산 만큼 많은 스토리와 문화재를 품고 있는 곳은 없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 등에 따르면, 전국 20여개 국립공원 가운데 역사문화유적이 가장 많은 곳이 경주 빼고는 팔공산이다.
팔공산은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신라시대부터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였다. 수도 금성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와 함께 풍부한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그 속에서 수많은 역사와 스토리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팔공산은 중악이나 부악(父岳)으로 부르며 친근한 대상으로 여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위군의 국보 아미타여래 삼존석굴. 이재기 기자 실제로 거조사 영산전과 아미타여래 삼존 석굴은 팔공산이 보유한 자랑스러운 보물이다. 두 유산은 국보로 지정됐다. 이 뿐이 아니다. 송림사 5층 모전석탑 등 보물급 문화재는 부지기수이고 보물 이하급 문화재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팔공산의 보물.. 영산전과 삼존석굴
동구 파군재에서는 왕건과 견훤의 일전이 펼쳐진 스토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팔공산 정상의 공산성에는 서애 유성룡과 의병장들이 모인 '공산성 회맹'이 이뤄진 역사적 장소로 회맹을 기점으로 왜군을 상대로한 게릴라전이 활성화돼 혁혁한 전과를 세운 구국스토리가 가득하다.
팔공산 정상 비로봉에서 가까운 청운대(1122m). 화강석을 뚫고 자라는 외솔의 기상이 꿋꿋하다. 이재기 기자 대구시민이라면 과연 어디에다 예산을 투입할까? 구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낡은 시설 좀 고쳐서 사용해도 괜찮다. 아양아트센트는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겉보기에도 멀쩡하다. 고장 나거나 파손된 부분을 수선해서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의 보고인 팔공산은 선인의 뛰어난 족적이 켜켜이 쌓여 있지만 5백년 1000년이 지나도록 그 빛을 다시 발하지 못하고 있다. 국립공원이란 커다란 계기를 만나고서도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팔공산을 다시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