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서해문집 제공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평생 독립운동을 이끈 백범 김구(1876~1949)를 테러리스트로 깎아내리는 책이 오는 15일 광복절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어서 역사 퇴행 논란을 부르고 있다.
11일 다수 온라인 서적 플랫폼에서는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제목을 단 책의 판매를 알리는 홍보 페이지가 운영 중이다.
해당 페이지 책 소개 글은 '백범 김구라는 거대 신화의 탈신화(脫神話)에 도전하다'라며 '김구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테러리스트. 김구는 평생에 걸쳐 수십 건의 잔혹한 테러를 자행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적 암살자였다'고 적고 있다.
이어 '세계적인 테러리스트와 대한민국 국부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백범 김구라는 거대 신화의 탈신화에 도전하는 본격적인 학술연구'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시각은 당대 일본 제국주의자들 시각을 오롯이 따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 이 책을 쓴 정안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앞서 일제가 대한민국 근대화를 견인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담아 비판받은 책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라는 데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광복회 이종찬 회장은 지난 10일 광복회 학술원 헤리티지 특강에서 책 '테러리스트 김구'를 언급했다. 이 회장은 "김구가 테러리스트면 안중근도 윤봉길도 다 테러리스트라는 이야기"라며 "뉴라이트들은 강력하게 저항한 최후의 수단을 다 테러리스트로 하고 싶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테러리스트 김구'를 쓴 정안기 위원은 이른바 '뉴라이트' 핵심 인사로 꼽힌다. 뉴라이트는 그간 대한민국 건국일을 두고,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이 아니라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이라고 말하는 등 통설을 뒤집는 주장으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역사학계는 이러한 뉴라이트 주장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몸집을 키우고, 윤석열 정권 들어 관련 인사가 요직에 들어가는 등 기승을 부린다며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을 지낸 역사학자 주진오 상명대 명예교수는 최근 SNS 글을 통해 현 정부의 뉴라이트 인사 중용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과거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역사의식이 한 번 뒤틀리면 미래의 역사도 동시에 뒤틀리게 돼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뉴라이트 세력은 이승만을 집요하게 역사의 중심으로 세우려는 역사 바꿔치기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여기엔 자존의식도 자기긍정도 없으며, 결국 힘이 정의를 대체하고 각자도생이 생존의 법칙이 된다. 이들이 역사기관들을 장악한 후에 대대적인 역사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