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개혁신당도 제3자 추천안을 국민의힘에서 발의하고 민주당에서 협조한다면 수용한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한 대표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 대표는 즉각 발의를 약속하는 대신, '제보 공작'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감안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채 상병 특검법 발의는 해야하지만, 여권 내 반발이 여전한 탓에 별도의 조건을 내걸며 시간을 버는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가감없는 의견 청취로 결론을 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朴 "한동훈안 수용, 특검안 제출해달라"…韓 "필요한 절차 진행"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민주당 박찬대 직무대행은 16일 관훈토론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순직 해병의 억울함을 풀고 외압의 진실을 밝힐 수만 있다면 민주당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언급한 제3자 추천안도 수용할 수 있다"며 "한동훈 대표가 집권여당 대표답게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서 특검안을 신속하게 제출하길 바란다. 민주당은 열린 자세로 토론과 협의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박 직무대행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다음주 금요일(23일) 혹은 열흘 안에 결단을 내려주시면 좋겠다"고 시한을 제시하기도 했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도 "제1야당이 한동훈 대표의 뜻과 공약을 받아들여 양보와 타협의 손을 내민 것"이라며 "이제는 한동훈 대표도 자신의 안을 구체화하여 협상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동훈 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그동안 일관되게 대법원장이 선정하고 무소불위적 위헌적 요소를 제거한 제대로된 특검안을 내자는 입장을 밝혀왔고, 최근 드러난 소위 '제보 공작'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등 당 내외 의견을 반영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를 위한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필요한 절차≠즉각 발의'…야권 수용 의사에도 계속 '뭉개기'
하지만 한 대표가 언급한 '필요한 절차'는 특검법안의 즉각 발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당 내외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것을 의원 발의를 추진한다는 것으로 가면 너무 나간 것"이라며 "박 직무대행이 토론회에서 한 한마디 말에 대한 한 대표의 반응은 그저 원론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 핵심 관계자도 "이제 논의를 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박 직무대행이 제시한 열흘의 시한도 의미가 없다고 보는 기류다. 친한계의 한 의원은 "박 대행이 열흘 안에 법안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여당이 맞출 수는 없는 것"이라며 "우리 일정에 맞게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어떤 법안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법안이 될지 등을 고민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야권이 한 대표가 제시한 법안을 수용하겠다고 했음에도 특검법 발의에 미온적인 현 상황에는 변화가 없는 셈이다.
'제보 공작' 프레임 전환에 野 "못받을 것 없다"…與에서도 "이제는 의견 모아야"
대신, 한 대표는 '제보 공작'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꺼내들었다. '제보 공작' 의혹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처음 제기한 것으로, 임성근 전 사단장의 구명로비 의혹을 제기한 공익제보자가 더불어민주당과 관련돼 있어 제보 자체가 '야당발 공작'이라는 취지다. 민주당은 구명로비 의혹을 매개로 김건희 여사까지 특검 범위를 넓히려는 상황인데, 국민의힘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제보자가 민주당과 연결돼 있을 경우 민주당을 공격할 수 있는 데다, 민주당이 빈약한 의혹을 수사 대상에 포함한 만큼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의혹도 수사 대상에 넣자는 취지로 읽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에서도 각종 의혹을 특검법안에 다 포함시켰는데, 우리도 우리가 생각했을 때 수사가 필요한 것은 다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서는 수세에 몰린 한 대표가 '시간벌기'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한 대표가 조건을 붙이는 것은 계속 시간을 끌겠다는 것이고 진실을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궁색한 처지에 놓이니 계속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각종 의혹으로 점철되는 '물타기'가 될 수도 있지만, 더 세부적인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민주당 소속 한 법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특검이 제보 공작을 수사하며 공익제보자의 녹취록 등을 더 세부적으로 수사하면, 더 많은 의혹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다른 의원은 "민주당은 '제보 공작'과 전혀 관련된 바가 없기 때문에 해당 특검법안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구체적인 수사가 진행되면 곤란해지는 쪽은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 측일 텐데, 한 대표가 외형적으로는 야당을 공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실질적으로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단 민주당은 '제보 공작' 의혹을 포함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의견을 조금 더 모아보고 논의한 다음 말하겠다(황정아 대변인)"는 입장이다.
여당 내에서도 무한정 시간을 끌 수 없기에 이제는 결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중진의원은 "법제화에 대한 당내 의견수렴절차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 사안에 대한 의원들의 가감없는 의견을 청취하고 야당에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