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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장 "3·1 독립선언서에도 조선 건국 42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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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회장 "3·1 독립선언서에도 조선 건국 42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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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광복회장은 20일 최근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나라는 있었다. 일제강점으로 국권 행사를 못했을 뿐'이라는 논거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초대 내각 전원의 일치된 생각이었다"고 거듭 비판했다.
     
    이 회장은 이날 '내년 광복절 8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모두 한마음으로'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헌법의 법통이 된 3.1독립선언서에 '조선 건국 4252년'이 명기된 점 등을 나열하며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논리는 사실과 완전히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승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1904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한 사실을 거론하며 대한제국-대한민국 승계를 강조했다.
     
    ▶ 입장문 전문
    "내년 광복절 8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모두 한마음으로"

    1948년 12월 초,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내각 이인 법무부장관은 국적법을 심의하기 위해  국회법사위원회에 출석했다. 국적법을 심의하던 중 어느 의원이 질문했다.

    의원: "장관이 국적법안을 갖고 오셨는데,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국적이 확실하게 될 것 아니오? 그러면 국적법이 통과되기 이전,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국적은 어디입니까?"

    장관: "대한민국 국적이죠"

    의원: "네? 이 법이 아직 통과되지 않았는데도요? "

    답변 "나라는 있었습니다. 정부가 없었을 뿐입니다. 나라는 있는데 정부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가 있었으므로 국적은 대한민국이죠. 이를 정리하기 위해 법이 필요한 겁니다." 이인 장관은 단숨에 결론지었다.

    독립기념관 관장 심사 때 관장을 하겠다는 후보에게 "일제강점기 우리의 국적은 어디냐"고 물었다. '기이한 질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인 초대 법무부장관과 같은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뜻밖에 그는 "그 시기에 우리 국민은 일제의 신민(臣民)이었다"는 거침없는 답을 듣고 실망했다.

    독립기념관장은 독립운동선열들다운 자질과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이다. 그는 다른 글에서도 계속 강변했다. "손기정 선수가 일본 국적이었는데, 일장기를 달지 않고 가능했느냐?"며 너무 당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조차도 생전에 "우리가 국권을 빼앗겨 일장기를 가슴에 단 것이 부끄러웠다. 또 화가 치밀어 꽃다발로 이를 가리려고 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당시 손 선수의 분노는 한국민 전체가 같이 느꼈다.

    동아일보는 일장기를 사진에서 지워버리고 보도하여 <일장기말소사건>으로 정간까지 당한 것도 이런 애국심 때문이었다. 광복회는 손기정 선수같이 비애를 느끼지 않고 당연시하는 그런 분이 국민성금을 모아 건립한 독립기념관 책임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나라는 있었다. 일제강점으로 국권행사를 못했을 뿐"이라는 논거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초대내각 전원의 일치된 생각이었다. 애국선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권을 침탈당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라는 표현을 했다. 일제 침략으로 나라가 지구상에서 절멸된 것 아니라, 국권을 일본이 강탈해간 것이다. 빼앗긴 국권을 되찾으려는 투쟁이 독립운동이다. 3·1 독립선언서에서 "우리는 한국이 독립국임과 한국민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라 했는데 이 말이 바로 일제 침략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국권을 되찾자는 선언인 것이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어쩌면 1945년 해방의 기쁨도 맞이하지 못할 뻔했다. 카이로선언은 약소국문제에서 처음 일본이 개전을 선포한 1914년 이후 탈취한 나라만 독립시키자고 했었으나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당시 장제스 총통을 만나 '노예상태에 있는' 한국의 독립을 가까스로 약속받았다.    

    혹자는 말하기를 좌파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건국했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우파는 "1948년 8월15일 건국했다"라 하여 두 주장이 대립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독립운동 선열들의 정신을 계승한 우리 광복회는 둘 다 정답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왜 그랬을까? 헌법전문 법통의 시작인 3·1독립선언서를 보라. 말미에 "조선건국 4252년"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2333년 건국했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렇게 말하면 또 다른 시비가 나올 수 있다. 독립운동 선열들의 의지는 "단군이 건국시조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장구하여 우위에 있다" 이런 생각에서 한때 대종교가 항일투쟁의 이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 일제 식민사관에 빠져있는 학자들은 "단군조선은 신화다" 반론하고 있다. 이 지면에선 그것까지 가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1920년 임시의정원에서 10월 3일 개천절을 '건국기원절'로 결정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이 신생공화국이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한 것을 보면 그 분 자신이 '1948년 건국'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라는 있었다"는 주장의 연장선에서 지금 정부도 조선왕조 때 조미통상조약 등 외국과 체결된 조약은 대한민국이 승계한다고 결정한 것 아닌가 싶다. 청년 이승만이 1904년 미국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도 조선이 미국과 1882년 체결한 <조미수호통장조규(이하, 조규)>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임시정부 구미위원부를 조직하고 외교독립운동을 전개할 때에도 내내 미국이 '조규'를 지키지 않았다고 항의하여 미국 국무부에서도 골치를 앓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도 "미국과 조규를 체결한 이래 두 번째 호사(好事)라" 감회를 표현하지 않았는가! "나라가 계속 있었다"는 주장으로 왕조시대 체결된 조약도 유효하다는 입장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일제 강점기에도 나라는 있었고, 단지 일본이 불법적으로 한반도를 강점했다는 주장을 견지해 왔다. 역대 정부의 이런 주장이 바로 우리 외교의 기본 틀이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회담 때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서 한국이 일본과 지금까지 팽팽히 맞서는 '조약해석'이 있다. 조약2조에서 우리는 "일본이 과거 강압적이고 불법적으로 체결된 조약은 체결된 당시'이미무효'라고 주장해왔고, 일본 측은 실효시기를 1945년 또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시점부터 무효임을 주장하여 지금도 맞서고 있다.

    우리 광복회가 "'1948년 건국론'은 일제강점을 정당화하는 것" "왜 일제시기 우리 국적을 일본이라 하는가"라고 비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이승만 정부 이래 지금까지 유지해 온 우리정부의 일관된 기조, 즉 "일제강점은 불법이고 당시 체결된 모든 조약은 '이미 무효'"라고 주장해 왔는데, 왜 이를 뒤엎는 사람들을 요직에 등용하느냐는 것이다. 왜 "1948년 건국이전에는 나라가 없다"하면서 우리 한민족을 일본인으로 만들어 선열후손이나 국민들의 공감도 없이 전전(戰前)일본에 면죄부를 주며 독립운동을 폄훼하느냐"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독립기념관 수장으로 임명하느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건국론을 주장하니까 일본 언론들은 "1948년 건국론"을 냉큼 받아들여 벌써부터 "1948년부터 무효"라 주장하지 않는가? 우리정부가 일본에게 왜 그런 빌미를 주느냐는 게 광복회가 비난하는 이유다.

    이승만 대통령이 과거 왕조시대 체결된 조약도 승계한다는 데 새삼스럽게 1948년 건국했다 함으로써 과거역사와 단절시키면 지금 정부가 하는 조약 승계도 말이 되느냐? 1948년 이전 나라가 없다면 한반도는 무주공산이란 말이 된다. 이게 일본의 한국강점을 합법화해주고 한국 국민은 일본 신민으로 전락하게 되고, 당시 일본인이어서 위안부나 강제동원문제도 제기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와 우익단체의 논리와 상통한다. 말하자면 대일 배상청구 일체를 무력화시키고 일본 측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이래도 광복회더러 침묵하란 이야기인가?  

    광복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정책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있다. 윤대통령은 당초에는 전전(戰前)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우리나라를 강점, 수탈한 일본과 전후(前後)일본, 평화헌법을 준수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일본을 구분하자고 했다. 일본문제라면 민감한 광복회지만 이에 대해 동의했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는 일련의 정책은 광복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윤대통령은 전전일본과 전후일본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전전 일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세는 없어지고, 국민정서에 의한 공감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과의 친선우호만 강조하는 것 같다. 왜 그런 의구심이 생길까? 나라의 기본 정체성 확립에 가장 중요한 국민의 정통성, 정체성, 정신문화, 독립과 역사를 전담하는 기관 수장을 모두 '친일적' 인사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사를 평생연구한 학자나 후손들은 근처에도 못 오게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광복회가 이런 현상을 보고도 못 본체 하란 말인가?

    전전 일본의 수탈을 항의하는 우리 국민을 '반일종족'이라 비하하는 사람을 한국학 중심연구기관장으로 기용했다. '일제강점이 우리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이라 주장하는 단체의 수장을 독립기념관 이사로 못 박았다. 학문의 자유라면 좋지만 국민의 세금을 쓰는 기관이나 단체의 장은 안 된다. 광복회는 이런 인사를 무리하게 기용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1948년 이승만을 앞세워 '건국절' 제정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본다.

    와중에 이미 여러 정부에서 시도하다가 국민저항에 부딪힌 '친일'국정교과서를 만들자는 음모도 꿈틀거리고 있다. 국민들의 의구심이 지금 확산일로에 있는데 광복회는 눈감고 광복절 행사에 나가 계속 만세 부르고 기뻐만해야 하는가?

    광복회는 여러 차례 정치하는 단체가 아니라고 언명해 왔다.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과의 소통에서도 그 뜻을 천명해왔다. 우리는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니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몰두할 뿐이다. 정치적이라고 매도하는 자체가 정치적이다.

    우리가 정부에 대하여 "대일정책을 수정하라! 친일인사 기용을 중단하라" 요구한 것은 목숨과 재산을 초개같이 버린 선열들의 권위로 광복회만이 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장이 정치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정치문제화 되지 않도록 끝까지 경계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내년 2025년은 을사늑약 체결 120주년, 광복 80주년, 광복회 창립 60주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일국교 정상화 60주년 되는 해다. 광복회는 진심으로 한일 간에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선진적인 나라관계로 발전되기를 희망한다.

    그러자면 먼저 대통령 주변에 옛날 일진회 같은 인사들을 말끔히 청산하라! 청산하고 존경받는 인사들이 한일관계를 풀어나가는 환경을 조성하라! 한일관계에서 우리나라가 도덕적 우위를 갖고 전범 일본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다. 그래야 우리 광복회도 대일항쟁 정신을 대일우호 정신으로 바꿔 새 세상 만드는데 앞장 설 수 있다.

    모두가 단합하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고대한다. 오늘의 이 갈등은 비온 뒤 대지가 더욱 굳어졌다는 칭송의 소리로 발전되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박물관 문에 새겨진 Forgive but never Forget (용서하자 그러나 과거는 잊지말자) 이런 말을 우리도 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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