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8·15 통일 독트린' 핵심 내용은…北호응·추진 동력 과제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8·15 통일 독트린'(doctrine·국가의 외교 방향 선언)을 제시했다. '자유 통일을 위한 도전과 응전'이라는 제목의 이 독트린은 통일의 지향점을 '자유 통일'로, 통일의 주체이자 추진 세력을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주민'으로 삼았다.
30년 전 발표한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통일의 지향점과 행동 계획을 보완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다만 남북 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적고, 구체적인 플랜 이행도 아직 미지수다. 초유의 '쪼개진 광복절' 사태가 보여주듯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진영을 아우르는 추진 동력 확보도 과제가 될 전망이다.
尹, '8·15 통일 독트린' 제시…지향점 '자유 통일', 주체는 '北 주민'윤 대통령은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산업화, 민주화를 '자유를 향한 위대한 역사'로 규정하면서 남북통일을 이룰 때 완전한 광복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3대 통일 비전과, 3대 추진 전략, 7대 추진 방안을 골자로 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3대 비전으로는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행복한 나라', '창의와 혁신으로 도약하는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를 들었고, 3대 전략으로는 '자유 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 배양', '북한 주민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 촉진', '자유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를 제시했다.
7대 통일추진 방안은 △통일 프로그램 활성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 전개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 △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 추진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을 통일 역량에 반영 △남북 당국 간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 △국제 한반도 포럼 창설 등이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중시하되 질서와 규범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면서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다.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하는 이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反)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또 "많은 북한 이탈주민은 우리 라디오 방송, TV를 통해 북한 정권의 거짓 선전 선동을 깨닫게 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의 가치에 눈을 뜨도록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며 '북한 인권 국제회의'와 '북한 자유 인권 펀드'의 추진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부의 대북 제안인 '담대한 구상'에서 이미 밝힌 대로 "비핵화의 첫걸음만 내디뎌도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통령실은 '8·15 통일 독트린'이 30년 전 발표한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 평화, 민주를 기본 원칙으로 하며, 통일의 과정을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3단계로 설정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이상적으로 옳은 모델"이라면서도 30년 동안 첫 번째 단계인 화해 협력도 제대로 되지 못하기에 행동 방안을 찾아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3단계 통일 방안은 우리가 도착할 목표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정신에 따라 어떻게 굳건히 지키고 확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실천 플랜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며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도달할 자유의 목표, 그 자유를 실현할 문제의식을 독트린이 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남북 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낮게 관측된다. 8·15 통일 독트린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북한 주민의 자유를 촉진하고 '자유 통일'을 이뤄낸다는 점에서 '흡수통일' 해석 여지도 있어, 남북 화해를 전제로 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수용성 자체가 상당히 낮을 수밖에 없다"며 "전체적인 구성이 통일 담론보다는 일방적인 대북 메시지, 독트린 성격이 있어 논쟁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라고 밝혔다.
반면 30년 만에 통일 구상을 새롭게 다듬었고 대화를 제안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학교 통일융합연구원장은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겠지만, 실무협의체를 제안하면서 대화 의지를 보인 것은 기존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의 구체적인 이행도 향후 과제다. 대통령실은 일부 과제는 우리 의지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브리핑에서 "7가지 통일 추진 방안 중에 4번 대북 인도지원과 6번 남북대화 협의체는 북한 당국의 호응이 필요하다. 기다리겠다"며 "당장 호응이 오지 않더라도 나머지 5개의 통일 추진 방안 내용은 우리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일 독트린은 '담대한 구상'에서 밝힌 비핵화를 필두로 한 남북 협력 문제의 모든 것도 다룰 수 있고 인도적 지원, 현안도 다룰 수 있고 사람의 교류와 협력 등 다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열어놓는다"며 "북한이 원하면 어떤 레벨에서든, 하드한 이슈든 소프트한 이슈든 모든 것을, 대화를 거침없이 시작할 수 있다라는 열린 제안"이라고 덧붙였다.
사상 초유 '쪼개진 광복절', 경축사 '대일 메시지'는 전무…여론 호응 숙제
사상 초유 '쪼개진 광복절' 행사를 한 만큼 사회적 갈등이 극심한 가운데, 진영을 넘은 추진 동력 확보 등도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경우 여야 합의로 마련됐기에 정권이 바뀌어도 30년 동안 지위를 유지한 바 있다.
앞서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 야권 인사 등은 이날 정부 주최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고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별도 기념식을 개최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광복회 등은 김 관장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성향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특정 단체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반쪽 행사라는 표현은 잘못됐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또 추진하지도 않을 정부의 건국절 계획을 철회하라는 억지 주장에 대해선 '엄정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한편 이번 경축사에서는 광복절마다 주목됐던 '대일 메시지'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은 '일제' 또는 '일본'이라는 표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며 최악의 경축사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일 메시지가 없는 이유에 대해 "한일관계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며 "과거사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지적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지만, 우리가 더 크게 되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며 국제사회 환영을 받으며 일본 협력을 견인해 나갈 때 그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일본을 극복하겠다는 사상이나 신조, 사회적 분위기)"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국민 여론과 거리감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원은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의 위상과 역할을 생각할 수는 있는데, 역사 얘기를 배제한다는 것은 너무 훅 뛰는 느낌"이라며 "대일 정책을 잘하라면 그 밑바탕에 여론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2024.08.1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