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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촉즉발' 남중국해…中, 베트남은 봐주고 필리핀만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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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일촉즉발' 남중국해…中, 베트남은 봐주고 필리핀만 때린다

    지난 19일 중국 해경선과 충돌한 뒤 구멍이 난 필리핀 해경 카프 엥가뇨( Cape Engaño)호. 충돌 사고가 발생한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군도에 있는 사비나 암초(중국명: 셴빈자오 仙賓礁·필리핀명: 에스코다 암초)는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 해경 페이스북 캡처지난 19일 중국 해경선과 충돌한 뒤 구멍이 난 필리핀 해경 카프 엥가뇨( Cape Engaño)호. 충돌 사고가 발생한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군도에 있는 사비나 암초(중국명: 셴빈자오 仙賓礁·필리핀명: 에스코다 암초)는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 해경 페이스북 캡처
    지난주 남중국해에서 사비나 암초 부근에서 중국 함정과 필리핀 함정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필리핀 해경 함정에 큰 구멍이 날 정도로 충격이 컸다. 필리핀 해경은 지난 19일 새벽 3시 24분 보급 물자를 싣고 가던 자국 함정 2척을 중국 해경 함정이 16분 간격으로 잇따라 들이 받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필리핀 함정이 허가 없이 셴빈자오(사비나 암초의 중국식 명칭)에 불법 침입했다고 반박했다. 해당 해역은 양국이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는 곳이다.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제 중국 선박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쏘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중국 해경이 필리핀 해경선에 바짝 접근해 도끼와 칼로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약 90%가 자국 영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주변국 선박의 접근을 강제로 차단하고 있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자국이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선포한 해역 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경고와 압박의 수위를 높여도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4월 미국은 일본·필리핀과 3국 정상회의까지 열어 남중국해에서의 공동 대응 의지를 과시했다.

    지난달 30일에는 미국의 국무·국방 장관이 마닐라에 가서, 지난 1951년 8월 체결된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을 발동할 수 있다며 경고성 성명까지 발표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 남중국해 어디서든지 필리핀 해안경비대 선박이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군이 지원하겠다는 표현까지 넣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미국과 필리핀의 해군 함정이 남중국해에서 합동 순찰에 나섰다. 동맹의 약속이 말뿐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달 31일 미국 해군의 연안전투함 USS 모바일호가 필리핀 해군 순찰함 라몬 알카라즈호와 함께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 안에서 합동 순찰을 하고 있다. 미국과 필리핀이 외교·국방 장관 2+2 회담을 열어 중국에 경고성 공동성명을 발표한 다음날이다. 미국 해군 제공지난 달 31일 미국 해군의 연안전투함 USS 모바일호가 필리핀 해군 순찰함 라몬 알카라즈호와 함께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 안에서 합동 순찰을 하고 있다. 미국과 필리핀이 외교·국방 장관 2+2 회담을 열어 중국에 경고성 공동성명을 발표한 다음날이다. 미국 해군 제공
    하지만 그로부터 3주도 안 돼 중국과 필리핀의 해경 함정이 충돌 하는 사건이 또 터진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이번 사건이 중국의 고의적 충돌로 일어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필리핀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안보 공약은 철통같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경고는 이제 공허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미국을 당황하게 만드는 부분은 또 있다. 중국이 유독 미국과 73년 동맹 관계인 필리핀에만 거칠게 대응한다는 점이다. 반면 남중국해 분쟁지역에서 매립 작업을 가속화 하고 있는 베트남에 대해서는 거의 눈을 감아 주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CSIS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아시아 해양 투명성 이니셔티브'(AMTI)에 따르면, 베트남은 남중국해의 분쟁 해역에서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 동안 섬 주변을 메워 약 2.8 ㎢의 면적을 늘렸다. 특히 이 기간 동안 베트남의 남중국해 전진기지로 불리는 바르크 캐나다 암초는 면적이 거의 2배로 늘어나 1.67 ㎢로 커졌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에서 베트남이 바다를 메워 땅을 급속히 확장하는 데 공개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베트남이 점유하고 있는 바르크 캐나다 암초 (Barque Canada Reef). 사진의 우상단 쪽에 섬을 인공적으로 길게 확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보인다. 총 길이가 4,318m로, 중국이 점유한 파이어리 크로스 암초, 미스치프 암초, 수비 암초에만 있는 3,000m 이상의 활주로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베트남은 이 암초의 면적을 지난 6개월 동안 거의 두 배로 늘렸다. 미국 국제전략문제 연구소 제공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베트남이 점유하고 있는 바르크 캐나다 암초 (Barque Canada Reef). 사진의 우상단 쪽에 섬을 인공적으로 길게 확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보인다. 총 길이가 4,318m로, 중국이 점유한 파이어리 크로스 암초, 미스치프 암초, 수비 암초에만 있는 3,000m 이상의 활주로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베트남은 이 암초의 면적을 지난 6개월 동안 거의 두 배로 늘렸다. 미국 국제전략문제 연구소 제공
    중국과 베트남은 오히려 정상들이 상호 교환 방문을 하며 화기애애 하게 지내고 있다. 베트남의 또 럼 (To Lam) 공산당 서기장은 취임후 첫 방문국으로 지난주 중국을 찾았다. 시진핑 주석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지 불과 8개월 만이다.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난 또 럼 서기장은 시 주석이 주창한 이른바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또 럼 서기장은 '적절하게 관리'해 나가자고 언급했다. 중국 외교부의 발표문에 이에 대한 시 주석의 답은 없었다. 시 주석은 '베트남의 혁신 개방과 현대화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베트남과는 남중국해 문제를 일단 덮어두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의 이런 자세를 두고 '대나무 외교', 또는 실용 외교의 결실 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보면 베트남과 필리핀을 갈라치는 '분열 전술'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베트남에는 양보를 하고 73년 동안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은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스 신문은 이러다가 '중국이 총 한방 안 쏘고 남중국해를 모두 차지할 것'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미국이 계속 물렁하게 대응할 경우 해상 교역로이자 군사적 중요성이 커지는 남중국해를 중국에 통째로 내줄 수도 있다는 직설적 경고다. 글을 쓴 중국 정치와 군사 전문가 오리아나 스카일라 마스트로 (Oriana Skylar Mastro)는 남중국해의 보급용 필리핀 해경선을 아예 미국 군함이 '직접' 호위하라고 주문했다. 군사적 충돌을 감수하고 초강수를 둬야 중국이 멈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이는 게 간단하지 않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위기라는 두 가지 사태를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남중국해 문제도 챙겨야 한다. 최근 미국 국방부는 중동 해역에 나가있던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를 남중국해가 포함된 7함대 구역으로 복귀하도록 명령했다. 곧바로 군사적 대응 조치에 나서기보다는 무력 시위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도 대선을 불과 10주 정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중국과 일촉즉발의 군사적 위기를 만드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점점 거칠게 나오고 있다. 이제 미국의 '레드 라인'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논란이 시작되고 있다. 자칫하면 지중해보다 넓은 남중국해가 조용히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올 정도로 상황은 다급해진 것이다.

    *저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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