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정부가 내년에도 예산 증가 폭을 3% 안팎으로 묶어 긴축 재정을 이어간다. 고강도 지출구조조정의 결과라지만, 내년 실질재정은 정부 전망치만으로도 약 78조 원 적자에 국가 채무도 추가로 81조 원 늘어 재정건전성 확보 여부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는데도 건전재정이 위협받는 원인으로는 취임 후 계속 확대해온 감세기조가 지적된다.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인하에 이어, 올해는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인하를 골자로 한 세법개정안까지 정부안으로 확정돼 원안 가결 시 대폭의 감세가 예상된다.
'부자 감세' 논란을 빚어온 적극적 감세와 긴축재정으로, 자칫 침체된 내수를 살리고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적 문제에 대응할 재정 역할까지 축소돼 재정 건전성은 물론 정부가 져야 할 책임마저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2025년도 예산안' 및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은 677조 4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20조 8천억 원(3.2%) 증가한다. 올해 예산안 증가율 2.8%에 이어 긴축 재정을 이어가는 것이다.
연간 GDP(국내총생산)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3%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 목표에도 재도전한다. 앞서 윤 정부는 취임 첫 해 GDP 대비 재정적자를 2.6%로 한 2023년 예산안을 냈지만, 결과는 3.6% 적자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이어 2024년 예산은 아예 3.9% 적자를 제시한 뒤 현재 -3.6%를 전망하고 있다.
2025년 예산안과 재정총량관리목표. 기획재정부 제공 단순히 정부가 씀씀이를 아끼는 것을 넘어, 재정 긴축과 동시에 추진하는 감세 정책은 우려를 더한다.
앞서 윤 정부는 취임 두 달 만에 단행한 세제개편을 통해 종부세와 법인세 부담을 크게 낮춘 바 있다.
주택분 종부세 기본공제금액은 6억 원→9억 원으로, 1세대 1주택자의 기본공제금액도 11억 원→12억 원으로 각각 상향했다. 종부세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인하도 단행한 터라 감세 폭은 더 컸다.
또 0.6~3%로 적용되던 1주택자 기본세율을 0.5~2.7%로, 다주택자 중과세율도 1.2~6%에서 0.5~5%로 각각 내렸다. 그 결과 지난해 귀속 주택분 종부세 납세 인원은 전년대비 무려 65.8%, 결정세액은 71.2% 쪼그라들었다.
법인세 최고세율도 25→22%로 낮추고 과세표준도 '200억 원 이하'와 '200억 원 초과' 2개 구간으로 단순화해 '대기업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침체가 감세 쏠림 정책과 맞물리며 지난해 법인세는 전년보다 23조 2천억 원이나 덜 걷혀 역대급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다. 올해도 상반기 기준 법인세가 지난해보다도 16조 1천억 원 덜 걷혀 2년 연속 '세수 펑크'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정부는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기존 50%→40%로 하향하고 상속세 자녀공제 금액을 5천만 원→5억 원으로 늘려 '부자감세' 논란을 반복한 세법개정안을 이번 예산안이 의결된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으로 최종 확정, 원안 통과 시 추가 감세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반복된 대규모 '부자 감세'로 세입 부족에 직면하면, 건전재정을 이유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강요하는 긴축 기조가 반복되는 셈이다. 특히 2022년 말부터 한국 경제는 높은 가계부채 때문에 주요국의 고금리 통화긴축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금리를 유지하느라 고물가·고환율로 내수 침체가 심화해온 터다.
수출과 부동산 경기 부양에 힘입은 올해 2.5% 안팎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여전히 큰 이유다. 글로벌 긴축 시기 충분히 긴축하지 못했던 통화정책의 확장 여력이 더딘 사이를 채울 재정의 역할이 내년 예산안에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내년 예산의 분야별 재원배분을 보면 전년 대비 3.6% 줄어드는 SOC(사회간접자본)를 제외한 11개 분야 투자가 조금씩 늘지만, 그나마도 가장 증가폭이 큰 R&D(연구개발)는 지난해 대규모 삭감 논란 이후 2023년 수준을 회복(29조 7천억 원)하는 데 그친다.
세부적으로도 우리나라의 가장 시급한 현안인 저출생 대응의 경우 올해 예산안에서 일·가정양립, 돌봄, 주거에만 19조 7천억 원을 투입해 전년보다 3조 6천억 원 늘린다고 밝혔지만, 당국은 저출생 예산의 범위·규모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인구전략기획부 출범 이후 협의할 것"이라는 해명만 되풀이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단순한 현금성 지원은 지양하겠다"며 "우리나라의 존립과 직결된 저출생 추세를 반등시키기 위해 재정 지원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전환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실제 정책 성과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정부가 집중 투자한다는 3대 과제조차 오랫동안 논의됐던 단기 육아휴직·육아휴직 업무분담 지원금·직장어린이집 긴급돌봄서비스를 도입한 것을 제외하면 기존 제도를 소폭 확대한 수준에 불과할 뿐, 이밖에 뚜렷한 대책 하나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재부 조용범 사회예산심의관도 예산안을 언론에 설명하며 "저출생은 재정으로만 풀 문제는 아니고 사회제도, 삶에 대한 인식, 문화 등이 겹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저출생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정책 대안 제시는 '인구부 출범 뒤'로 미뤄졌다.
소상공인 대책도 연 30만 원의 배달·택배비 지원이나 채무만기를 위한 새출발기금대출 지원 등에 그치는 데다, 역대급 폭염으로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던 전세계적 어젠다인 기후변화 대응 예산은 아예 정부가 꼽은 20대 핵심과제에도 들지 못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올해 총지출 증가율이 2.8%인데 내년도 예산안이 3.2% 증가한다고 하면 지출이 좀 더 늘어났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재량지출만 보면 내년에 0.8%만 느는 셈"이라며 "재정건전성을 위해 상당히 긴축적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 위원은 "통상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정부지출을 확대하고 경기가 좋을 때는 정부 지출을 줄이는데, 지금의 긴축은 경기가 살아나서가 아니라 재정건전성을 추구해야 되기 때문에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라고 봤다. '긴축을 위한 긴축'을 했다는 얘기다.
그 이유로는 "국세수입은 3년 전보다 줄었는데 그때부터 경상성장률은 매년 약 4%씩 성장했지 역(-)성장을 한 적은 없다. 즉, 세수는 경상성장률에 비례하는데 세수가 3년 전보다 감소할 만큼 크게 감세를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세수입은 2022년 395조 9천억 원에서 2023년 370조 3803억 원으로 준 데 이어, 정부의 올해 예상치는 367조 3천억 원, 내년 382조 4천억 원에 그친다.
이 위원은 "윤 정부 감세 효과가 내년 미치는 영향을 17조 원 감세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재정정책은 책임성과 건전성이라는 모순된 두 마리 토끼의 균형을 잡는 건데, 책임성이라는 토끼를 희생하고 건전성만 잡으려고 애쓴 예산안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작 건전성도 제대로 잡지 못할 거란 지적도 있다. 기획재정부 2차관, 예산실장을 지내며 '예산통'으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은 정부의 예산안 발표 직후 "정부가 예상한 내년 국세수입은 382조 4천억 원이나 결손 우려는 여전하다. 세입은 올해 예산대비 4.1% 증가했으나, 올해 20조 원 안팎의 세수결손 추정치를 감안하면 10% 증가한 수치"라며 "내년 경제전망이 불확실하고 부자감세 기조를 감안하면 3년 연속 세수결손 발생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논평했다.
참여연대 박효주 주거조세팀장은 "정부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하지만 가장 필요한 보건, 복지, 고용 예산 증가율은 4.8% 수준에 그쳐 2023년도 이후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건전 재정도, 민생도 모두 잃고, 정부 스스로 지키지도 못할 재정준칙에 가로막혀 취약계층, 영세자영업자,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외면한 예산안"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