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둘 중에 정기가 막내예요. 굉장히 살갑고 자상했던 딸 같은 아들이었어요. 그런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세 번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나서는 억장이 무너졌어요."
군 복무 중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57)씨는 군기훈련을 받다 사망한 육군 훈련병 사건을 비롯한 다른 군 사망사고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박씨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들 죽음이 헛되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왜 또 이런 일이 반복된 것인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부실한 군 의료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정기 일병. 유족 제공홍정기 일병은 육군 제2사단에서 운전병 및 인사행정병으로 복무하던 중 백혈병 발병에 따른 뇌출혈로 입대 7개월여 만인 2016년 3월 숨졌다.
박씨는 아들이 사망한 직후엔 경황이 없어 책임 소재를 따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군을 믿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에 가려진 진실을 접하고 세상이 달리 보였다.
"훈련소에 입소할 때도 혼자 가겠다며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당찬 아이였어요. 처음엔 사랑니 때문에 아프다고 해서 휴가를 나오면 발치하기로 했죠. 연대 전술 훈련기간이라 당장 휴가를 나올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그러려니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그땐 몰랐죠."
입대 전 병력이 없던 홍 일병은 연대 전술훈련 기간이던 2016년 3월 6일 처음 이상징후를 느꼈고 이후 두통과 구토 증세로 연대 의무중대와 사단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았다.
같은 달 21일 민간병원 의사가 혈액암 가능성을 제기하며 '즉각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소견을 밝혔으나, 군의관은 응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홍 일병을 돌려보냈다.
홍 일병은 위중해진 상태로 이튿날 오전 9시 진행된 국군춘천병원 검사에서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24일 숨졌다.
홍정기 일병 사진. 유족 제공그렇게 아들을 떠나보낸 박씨는 2018년 6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군의관의 잘못된 처방 때문에 아들을 살릴 수 없었다는 법의학자의 소견을 접했다.
밤새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는 홍 일병에게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군의관이 처방한 약을 삼키며 고통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살릴 기회가 세 번이나 있었다는 법의학자의 말에 눈이 뒤집혔다"는 박씨는 이때부터 거리로 나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전단을 돌리고 국방부와 군에 항의했다.
"군에 자식을 맡기는 부모가 국가를 믿지 못하는 현실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유족 입장에서 바라봐주고 진상 규명을 위해 힘쓴 군사망사고위원회가 있어 든든했죠.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한이 남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홍정기 일병과 어머니 박미숙 씨. 유족 제공2020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홍 일병이 훈련기간에 구토와 어지럼증 등의 증상으로 의무중대와 사단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군 측이 단순 진통제 처방만 하고 심각한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민간병원 검사 결과 정밀검진을 권유받았는데도 부대가 훈련기간이라는 이유로 홍 일병을 계속 훈련에 참여시킨 것이 부적절한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전문성이 부족한 군 의료체계도 문제지만, 지휘관의 안일한 상황 판단 때문에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분명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나 책임이 있다. 잘못한 것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뒤따라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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