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10일 오후 서울 국회에서 열린 여·야·의·정협의체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정치권이 모처럼 머리를 맞댔지만 의료계가 '2025년도 정원부터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야·의·정 협의체가 구성조차 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 대표가 '해결사'를 자처하며 협의체 구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내우외환(內憂外患)' 형국은 이번 국면에서도 그대로다. 당정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는 데다 민주당도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 없이는 협의체 구성이 무용(無用)하다고 보고 있어 한 대표로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동분서주 韓…정부-의료계 '치킨게임'만 계속
한 대표는 11일 부산을 찾아 응급실에 들러 현장 상황을 둘러본다. 지난 2일 여의도성모병원 방문에 이어 의료계 현장을 찾아 직접 설득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 대표 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도 전날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과 면담을 갖는 등 여당 지도부가 의료계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별다른 입장 변화 없이 정치권에 '정부를 설득해 달라'는 취지의 대화만 이어가고 있다. 의료계는 △2025년도 정원을 포함한 원점 재검토 △수가 정상화 △건강보험 재정 국고지원 확대 △대통령 사과를 포함한 관계 부처 책임자 경질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권은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된 만큼 2025년 증원 백지화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의료인들의 헌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추석 연휴 전후 한시적으로 진찰료, 조제료 등 건강보험 수가를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며 달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다만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여권과 의료계 사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여당 지도부도 답답해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CBS노컷뉴스에 "의료계는 정부가 안(案)을 만들어오면 협의해 보겠다는 의견도 있는데, 정부는 안(案)을 갖고 오라고 하지 않느냐"며 "대통령실에서 '협의체는 여당이 주도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표하던데 책임만 미루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대통령실은 여당이 협의체를 제안한 만큼 협의체 발표나 형식, 구성 등에 대해서는 여당이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윤창원 기자중재 역할을 떠맡은 한 대표로서는 정부와 의료계가 당초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점점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것. 한 대표는 전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의료계가 책임자 문책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데 대해 "그런 식의 전제조건을 걸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할 수 있도록 모두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의체 출범 전제조건으로 '뭐는 안 된다' 이런 건 없다"며 "(경질론·2025학년도 정원 등) 모여서 무슨 얘기든 못하겠느냐"고 강조했다. 의료계를 달래려는 목적도 있지만 정부를 향해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달라는 우회적인 요청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에 '손 떼라'는 野…의료계는 '분열'
'대표성' 있는 의료 단체가 없다는 것도 협의체 구성에 있어 어려운 점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과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서도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며 임현택 의협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의협이 2025학년도 정원 원점 재논의를 주장하는 반면,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정책패키지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협의체가 추석 전에 구성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면서 야권 내에서도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가운데)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의료계가 내건 조건 일부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성의 있는 조치를 선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의료계의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 실패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졸속 정책으로 의료 대란을 초래한 장·차관은 경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물론 여당도 경질론에 거듭 선을 긋고 있는 만큼 여야의 인식 차도 다시 벌어지면서 주중 여야정 협의체라도 띄우겠다는 국민의힘의 계획도 이미 틀어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 야권 관계자는 "의사단체도 제각각 입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정부와 여당도 이해관계가 다른데 여야정 협의체로 개문발차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