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과 그 추종세력으로부터 가해지는 각이한 위협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안전 환경 하에서 강력한 군사력보유는 우리 당과 정부가 한시도 놓치지 말고 또 단 한걸음도 양보하지 말아야 할 의무이며 생존권리입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권수립기념일 연설 중 일부이다. 김 위원장이 선언한 적대적 2국가론을 감안할 때 위 문장에서 '그 추종세력'은 대한민국이나 한국, 또는 이에 해당하는 '멸칭'이 들어가야 할 법한 곳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과거에 사용하던 '남조선'이나 '남녘 동포'는 물론 '한국'이나 '한국 것들', '대한민국 족속들' 등과 같이 국가성이 반영된 호칭 대신 단지 '추종세력'이라고만 언급했다.
다른 곳에서도 "공화국의 핵 무력을 위협적이라고 떠드는 그런 세력"이라며 남한에 대한 직접적인 호칭을 피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핵 역량의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라며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회피했다"는 점을 이번 연설의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9.9절에 처음 실시한 이례적 연설에서 이처럼 대남(對南) 언급이 전무한 것에는 남한을 당분간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달 광복절에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으나, 이에 대해 북한은 한 달 가까이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8.15 독트린에 반응을 하지 않고 아예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또한 김 위원장이 선언한 '적대적 2국가론'에 부합하는 헌법 개정 등 북한의 내부정비와 세부정책 마련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1월 김 위원장의 지시 후 영토조항 신설 등 헌법 개정작업을 계속 벌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헌법을 개정하는 최고인민회의 개최 동향은 여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대신해 이번에 9.9절 연설을 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적어도 이달에 최고인민회의는 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의 헌법 개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해상국경선 등 영토조항이 일단 정리가 되어야 이에 부응하는 대남·대미정책이 가동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오는 11월 미국의 대선 결과도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김영호 장관은 지난달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북한에 제안한 '남북 당국 간 실무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에 대해 "북한 당국도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윤 대통령의 '통일 독트린' 및 '대화협의체' 제의에 신중하게 검토하는 조짐은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 매체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무시'에 가깝다. 김 위원장이 9.9절 연설에서 대남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