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두고 미국과 중국 간 전쟁이 격화되면서 우리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저지하고 나선데 대해 중국 정부도 자국 기업에 미국 기업의 AI칩을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어서인데, AI칩 생산에 필수적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게 됐다.
中정부 "엔비디아 칩 쓰지마"…화웨이 "다양한 솔루션 개발해 경제 발전"
화웨이 데이비드 왕(David Wang) 이사회 전무이사 겸 ICT 인프라 관리 이사회 의장. 화웨이 제공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중국 기업에 AI 반도체 '어센드'를 납품하거나 납품할 계획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국영 통신사 차이나텔레콤이 "초거대 언어모델(LLM) 2개를 중국산 반도체 수만 개로 훈련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2년 전 출시한 2세대 칩(어센드910B)에 이어 3세대 칩(910C)에 대한 샘플을 고객사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910C는 엔비디아의 중국향 칩인 H20와 경쟁할만한 성능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최대 검색회사인 바이두와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통신사 차이나모바일 등이 910C를 사려고 협상중이라고 전했고, 로이터는 "바이트댄스가 화웨이 AI반도체 '어센드910B"를 사용해 AI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두와 바이트댄스, 차이나모바일 등은 엔비디아의 기존 고객이지만 중국 당국이 자국 기업에 H20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는 상황 등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 5월 중국 당국은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에 내년까지 자국 반도체 사용을 25%까지 확대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화웨이는 AI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화웨이 데이비드 왕 의장은 지난 19일 '화웨이 커넥트 2024'에서 "화웨이는 고객 및 파트너와 협력해 미래 보장형 인프라를 구축하고, 다양한 산업별 솔루션을 개발해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 메모리 수출도, '중국향 AI칩 탑재'메모리 수출도 난망
대중 반도체 갈등이 격화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내 반도체 업계는 난감한 분위기다. 두 국가 모두 반도체 공급망과 시장 모두에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HBM(고대역폭메모리) 실적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2022년 말 시작된 미국 정부의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로 자사의 최신 제품인 A100과 H100의 중국 수출이 막혔고, 성능을 하향 조정한 뒤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H20을 중국에 수출해 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엔비디아 제품 사용 자제 가이드라인으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H20에는 4세대 HBM 제품(HBM3)이 탑재됐는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요 공급처인 것으로 알려졌다. H20 중국 판매량이 감소할 경우 국내 메모리 업계 실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첨단 제품에서 범용 제품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국내 반도체 기업에겐 부담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은 물론 일본과 네덜란드 등 첨단 반도체 장비 생산국을 압박해 대중 수출을 가로막았던 것처럼 메모리 반도체 등 범용 제품까지 규제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 차관이 한국산 HBM의 중국 수출 규제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몇 세대 제품이 포함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바이두와 텐센트 등 중국 기업은 삼성전자의 3세대 HBM(HBM2E) 등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구형 HBM 제품까지 대중 반도체 규제가 적용된다면 국내 반도체 업계로선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도체 통상분야를 잘 아는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첨단 반도체뿐만 아니라 범용 반도체에 대해서도 한국 기업이 미국과 궤를 함께 해달라는 취지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중동에 대한 수출 통제 일부를 최근 완화한 것은 엔비디아는 물론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가 자국의 경제 및 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의 매출 감소와 이에 따른 연구 개발 및 투자 감소를 통해 미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저하되고, 중국은 기술 자립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미국 산업계를 중심으로 대중 규제 장기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데이터센터들이 '검증된 최종 사용자 자격(VEU)'을 산정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VEU로 승인된 데이터센터에 칩과 서버를 공급하는 기업은 개별 수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엔비디아와 AMD 등의 입장에선 중동 시장이 열리고, 엔비디아 등에 HBM 등을 납품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도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