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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티'에 마약 섞어 들여온 피고인 '함정수사에 빠졌나'[법정B컷]

법조

    '밀크티'에 마약 섞어 들여온 피고인 '함정수사에 빠졌나'[법정B컷]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지난 5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에서 남성신 마약범죄수사1계장이 와인으로 위장한 원료물질로 필로폰을 제조한 피의자 및 분말 밀크티 스틱 제품으로 위장하여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밀수입한 피의자 검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5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에서 남성신 마약범죄수사1계장이 와인으로 위장한 원료물질로 필로폰을 제조한 피의자 및 분말 밀크티 스틱 제품으로 위장하여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밀수입한 피의자 검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재판부터 피고인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함정 수사'에 당했다고 주장한 피고인 측은 재판 과정 내내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받는 혐의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A는 올해 2월 이름도 생소한 덱스트로메토르판이란 마약류 성분이 섞인 '밀크티 스틱'을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밀수한 혐의를 받습니다. 1천개 스틱을 50박스에 나눠 담고, '보따리상'을 통해 국내로 들였죠.

    검찰에 따르면, 이보다 약 두 달 전 그는 지인 B에게 스틱 2개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수사기관의 마약류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신종마약이다. 이걸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봐 달라" 검찰은 그가 스틱 하나에 원가 3-4만원인 가격을 3배 이상 부풀려 국내에 유통해 수익을 얻기로 마음먹었다고 봤습니다. B에게는 일종의 '중개책' 역할을 제안한 거라고요.
     
    사건은 이 B라는 인물이 경찰에 '제보'하면서 시작됩니다. 제보자(B)라고 하겠습니다. A는 제보자가 경찰과 모의한 후 자신이 밀수범죄를 하게끔 유발했다며, 함정수사이니 공소기각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의 '법정B컷'은 '속아서 법정까지 서게 됐다'는 피고인에게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경찰이 현금다발 사진 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약 밀수나 성매매 범죄와 같이 은밀히 행해지는 범죄에 대해 함정수사가 허용되곤 합니다.
     
    다만 함정수사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범의(범죄 행위임을 알고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를 가지지 않은 자에게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 범의를 유발케 해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 수사는 위법하다"는 게 우리 법원의 기본 태도입니다.

    애초에 범죄를 저지를 마음이 없었는데, 수사기관의 '꾀'에 말려 들어 범행하게 됐다면 이는 함정수사로, 피고인은 처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위법한 함정수사인지 따지기 위해서는 범죄의 종류와 유인자의 지위나 역할 그리고 유인의 방법이나 행위의 위법성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함정수사' 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6도2339 판결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인자가 피유인자와의 개인적 친밀관계를 이용해 피유인자의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적 심리적 압박이나 위협 등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거나 또는 범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범행에 사용될 금전까지 제공하는 등으로 과도하게 개입함으로써 피유인자로 하여금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해 허용되지 아니한다 할 것이지만 유인자가 수사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아니한 상태에서 피유인자를 상대로 단순히 수차례 반복적으로 범행을 부탁했을 뿐,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는 없는 경우는, 설령 그로 인해 피유인자의 범의가 유발되었다 하더라도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데에는 B의 제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B는 지난해 12월 중순 피고인 A에게서 향정신성의약품이 섞인 밀크티 스틱 2개를 샘플용으로 건네 받습니다.
     
    판매처를 알아봐달라는, 일종의 중개책 요청까지 받은 B는 스틱을 들고 수사기관을 찾습니다. 이후 그는 경찰과 상의해 A와 위장거래를 진행하죠.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은 '1억 돈다발 사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A의 변호인 측은 이 부분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A는 애초에 수입 의사가 없었는데 경찰이 적극 개입해 함정수사를 벌였다고 공격했습니다.
     
    2024.06.13 '밀크티 스틱' 마약 밀수 사건 증인신문 中
    변호사: 제보자(B)에게 사진 준 건 흔하지 않은 일 같은데요?
    증인(경찰): 중국에 물건 세팅됐다고 했습니다. 제보자가 사려고 하는 사람이 돈이 있느니 없는지 찍어보내라고 해서, 밀수입 된 밀크티를 살 사람이 돈, 자금력이 있냐 보는 거라고 (했습니다) 

    변호사: 제보자(B)가 피고인(A)이 '돈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합니다'라고 경찰에게 물었나요?
    증인(경찰): 지금 피고인은 (판매책이) 돈이 없는지 있는지 제일 궁금하다고 그러기에 그 부분 현금으로 찍어 보내는 데 피고인도 알 수 있도록 내 이니셜인 삼식이 이런 걸 좀 써서 보내줘라 그래서 쓴 적 있습니다. (중략) 제보자가 이 부분이 해결된다면 수입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B의 신원 보호를 위해 조심스럽게 증언에 나선 수사관은 'B로부터 돈다발이 있으면 밀수입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가 보내 준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이미 A에게는 신종마약을 밀수할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고요.

    2024.06.13 '밀크티 스틱' 마약 밀수 사건 증인신문 中
    검사: 제보자(B)가 적극적으로 피고인(A)의 범의를 유발하는 게 아니라 피고인이 이미 밀수입 판매처를 구하고, 밀수입할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거지요?
    증인(경찰): 네, 그렇습니다 저희가 이 부분에 있어서 제보자하고 경찰하고 어떤 관련성은 없습니다. 

    검사:경찰에서 제보자를 통해서 적극적인 수입 요구를 한 이런 건 아니잖아요.
    증인: 


    "제가 들은 건 다릅니다" 제보자의 증인 신문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피고인 측은 제보자 B의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꼭 법정에 불러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죠. 신변 보호를 위해 재판 내내 '가명'으로 불렸던 B는 증인 소환에 두 차례 응하지 않다, 7월 중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비공개 신문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증인석과 피고인석 방청석 사이에 가림막을 쳤습니다. 여전히 A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B를 위해 재판부는 A를 법정 바로 옆 대기 공간으로 보내고 문을 살짝 열어 놨습니다. 벽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말은 들을 수 있는 상태로 이날 법정은 정비됐습니다.
     
    2024.07.17 '밀크티 스틱' 마약 밀수 사건 증인신문 中
    검사: 피고인이 밀크 스틱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증인(B)에게 현금 다발 사진 같은 걸 제공한 적도 있나요.
     
    증인(B): 부탁을 드렸어요. 중국에서 그걸(스틱) 만들어 올려면 (피고인이) 얼마를 달라, 돈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돈이 없다"고 했더니 "믿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경찰분들한테 말했습니다. 돈다발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줄 수 있느냐고.

    B와 수사관 모두, 경찰이 위장거래의 구체적인 방식이나 절차에 대해 지시하거나 가르쳐준 사실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피고인 측은 B가 "마약 수사 공적을 쌓기 위해 경찰과 모의한 후 덱스트로메토르판 스틱에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전혀 모르는 피고인을 상대로 범의 유발해 함정수사를 한 결과이므로 공소기각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밀크티 수입을 먼저 제안한 것도 피고인이 아닌 B라고요.
     
    2024.07.17 '밀크티 스틱' 마약 밀수 사건 증인신문 中
    검사: 피고인의 주장입니다. (피고인은) 증인(B)하고 같이 있는데 C로부터 전화를 받아서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C라는 사람이 밀크티 스틱 얘기를 하니까, 증인이 피고인한테 샘플을 받아달라고 부탁해서, 샘플을 받아서 증인에게 주게 됐다. 그러니까 피고인의 주장은 증인이 먼저 '스틱을 좀 받아와 달라' 요구했다, 그런 취지로 주장을 하는데 증인의 기억은 어떤가요?
     
    증인(제보자): 저한테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저한테는 자기가 '판로'가 있다고 했어요. 부산이랑 자기랑 판권, 총판권이라고 그러거든요. 다이렉트로(직접) 자기만 받아올 수 있는 그 권한을 말해요. 판권을 자기가 받아올 수 있다. 이게 잘만 팔리면 그래서 그걸 너만 아니더라도 천안이나 평택도 반응이 있었고, 부산에서도. 서울의 강남 술집 마담들한테도 이게 괜찮으니 가지고 들어올 거다. 너도 팔 데가 있으면 얘기를 해라. 저한테도 그렇게 했죠.

    피고인은 자신은 마약류를 수입할 마음이 없었지만, '함정 수사에 걸려 밀수 범죄를 저질렀고, 법정에 서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애초부터 마약인지는 더더욱 몰랐다고요. 비록 단순 밀크티는 아니지만 먹으면 잠이 잘 오는, 마약류로 지정이 안 돼 중국에서는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이해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증인은 다르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2024.07.17 '밀크티 스틱' 마약 밀수 사건 증인신문
    변호사: 피고인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중략) C도 그렇고 증인도 스틱 안에 마약 성분이 없다고 확신을 줬기 때문에 피고인 입장에서는 홍차스틱 안에는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안심하고, 증인의 부탁을 받고 중국에서 수입한 거라고 주장을 해요.

    증인(제보자): 저한테는 신종 마약이다, 이거는 먹어도 검출 안 된다고.

    변호사: 검출 안 된다는 건 아직까지 합법이다 그런 의미 아닌가요?

    증인: 근데 굳이 그런 거를… 그러면 제약 회사 그대로 가지고 나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굳이 잘라서 유통되고 있는 밀크틱 홍차 스틱 안에 넣어서 (가져와야 했나요)

    변호사: 중국에서 판매되는 홍차 스틱을 자르고 기존에 있던 분말을 덜어내고, 새로운 이걸(마약류) 집어넣고 다시 밀봉하지 않습니까? 피고인은 몰랐다고 주장하는데 피고인이 알았나요?

    증인: 알았어요. 보면서 포장 기가 막히지 저한테 얘기했으니까요.



    변호사는 경찰에 가 진술서를 쓰기 전에 경찰과 만난 적이 있는지도 따져 물었습니다. 제보자와 수사기관의 '직접적 연결고리'를 강조하려는 변론 전략으로 읽혔습니다. (실제 B는 대마 관련 인천세관 조사를 받았지만, 재판부는 이미 수사기관에 제보한 이후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 측에 유리한 증인이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피고인 측이 신청한 또 다른 증인은 "되레 제보자가 태국에서 액상대마를 수입 하는 등 마약에 더 가깝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말에 신빙성이 없다고 말이죠.

    재판부 "함정 수사 아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피고인이 함정수사에 말려든 게 아니라고 봤습니다. 

    피고인은 제보자 말고도 다른 판로를 찾았던 걸로 보인다며, 제보자의 요청으로 '비로소' 밀크티 스틱을 수입하려는 범의를 갖게 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을 사용했다고 볼 만한 행위도 없다고 했습니다
    .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위장거래를 제안해 B로 하여금 피고인에게 스틱을 수입하면 이를 팔아줄 것을 약속하도록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마약류 수입 판매 계획을 가진 피고인에게 그 기회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밀크티 신종마약 사건' 선고 판결문 中
    "위 현금 다발 사진은 B가 먼저 경찰에 요청한 것이고, 경찰은 덱스트로메토르판 매수 대금으로 지급할 돈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현금 다발 사진을 제공한 것에 불과한 바, 이를 두고 수사기관이 범행에 사용될 금전을 제공함으로써 범의를 일으키게 한 경우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보지 않은 재판부는 B가 A를 유인한 목적이 수사기관으로부터 포상금을 받으려는데 있었다거나 자신의 혐의를 감면 받으려는 데 있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합법적으로 국내 반입이 가능했다면, 굳이 홍차 스틱으로 가장해 중국 보따리상을 통해 밀반입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피고인이 수입하고 갖고 있던 스틱의 양은 35kg에 달했습니다.

    해당 사건 피고인과 검찰 모두가 1심 판결에 불복하면서 2심 판단을 받게 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함정수사'를 어떻게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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