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소식에 국제사회가 긴장 속에 예의주시하면서도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미국 등 동맹‧우방국들이 우리 정부와 즉각적 공조 대신 신중한 접근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군 파병설은 우크라이나 언론이 이달 초 제기한 이후 17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식 언급했고 우리 국가정보원이 18일 사실임을 확인했다.
국정원은 북한이 8~13일 청진, 함흥, 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특수부대원 1500여명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1차 이송시켰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지난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위성 사진 등 관련 자료를 18일 공개했다. 국가정보원 제공하지만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은 국정원 발표와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국방장관 회의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관련 보도를 확인할 수 없으나 사실이라면 우려된다고 밝혔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18일(현지시간) "현재까지 공식 입장은 '확인 불가'"라며 "모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총리와 프랑스 외무장관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같은 가정을 전제로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물론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국정원이 공개한 위성사진과 우크라이나 측이 주장한 북한군 추정 영상 등의 증거가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근거가 확실치 않거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는 것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1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올린 러시아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소 영상이 대표적이다.
이 영상은 동양인 군인들이 줄을 서서 군용 배급품을 수령하는 장면으로 "넘어가지 말라" "뒤에 바짝 따라 붙으라" 등의 북한 말투의 한국어가 들린다.
그러나 정작 발언자의 입 모양이 촬영되지 않아 음성 편집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는 없다. 넘어가지 말라는 등의 지시에 화면 속 군인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다소 어색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엑스(X)에는 "이 영상은 과거 러시아-라오스 합동훈련이 출처임이 확인됐다"는 아이디 'LogKa@LogKa11'의 글이 올라왔다.
이와 관련해 라오스 매체 '더 라오티안 타임스'는 자국군이 9월 25일 러시아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장에서 러시아군과 합동훈련을 한 사실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공개한 영상 속 장소이다.
이런 탓인지 우크라이나 매체인 키이우 인디펜던트도 자국 기관 발표를 인용하면서도 "이 주장을 검증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이 영상 뿐 아니라 텔레그램 계정 파라팩스(ParaPax)가 공개한 북한군(추정) 훈련 장면에 대해 북한군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단서를 달았다.
우크라이나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가 1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올린 러시아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소 영상. X 캡처이에 비해 위성사진까지 포함된 국정원 증거는 보다 강력하고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 세계 최고로 평가되는 미국 정보자산이 빠져있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국정원은 민간업체인 에어버스(AIRBUS) 광학위성 사진 2장과 우리 정부 자산으로 추정되는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사진 1장을 제시했을 뿐이다. RFA는 민간위성 사진만으로는 북한군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인용 보도했다.
정부는 대북 감시에서 한미연합자산을 누누이 강조해왔지만 이번에는 그런 언급조차 없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북러 군사협력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