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 황진환 기자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또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단독 김민정 판사는 30일 강제동원 피해자 A씨의 유족 등 9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총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유족들은 A씨 등 피해자들이 1945년 초 일본제철에 강제 동원돼 피해를 봤다며 2019년 5월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날 김 판사는 "피고(일본제철)가 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하나 그 주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망인에 대한 행위는 일본 정부의 불법 식민지배와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해 망인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입은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고, 이를 배상할 책임이 일본제철에 있다"고 봤다.
이어 "손해배상 액수와 관련해서는 불법행위 이후 상당 기간 피해회복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 피고가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자료는 1억원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판사는 이모씨 등 3명과 장모씨 등 5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피고가 원고들에게 총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날 선고 직후 A씨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향 이상희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일본 제철은 여전히 모든 소송에서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제철은 지금 모든 소송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특히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지 6개월 이내에 제기해야 하느냐가 첨예한 문제"라며 "다행히 많은 재판부가 3년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저희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일로부터 6개월 이후에 제기한 것인데, 재판부가 저희의 청구 금액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날로부터 10년 혹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다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인정될 경우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고, 장애가 해소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법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가 가능해진 2018년 10월 30일이 소멸시효 기준이 돼야 한다고 봤다.
지난 2023년 12월 대법원이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사실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한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