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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무자격자가 언급한 대통령의 자격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용산의 공천개입 의혹을 뒷받침할 대통령 육성이 공개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다. 위기는 육성 공개 때문에 단박에 등장한게 아니다. 정권 초 이준석 대표 찍어내기와 이태원 참사에서 시작된 독단적인 리더십은 임기 내내 이어졌고, 명품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를 덮으려는 과정에서 무수한 권력기관이 형해화되면서 민심의 불만은 마치 밀폐용기에 증기가 쌓이듯 압축게이지를 높여왔던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 지지율이 국정 동력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20%를 하향 돌파해 10%대로 추락했다.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19%를 기록했고, TK(대구경북) 지지율은 18%로 전국 평균보다 낮은 기현상을 보였다. 같은 날 엠브레인퍼블릭 조사는 긍정평가 17%, 부정평가 78%, 무응답 5%로 같은 흐름을 뒷받침했다.

    유례없이 일찍 찾아온 위기는 국민의 질책을 외면한 독선과 독주의 결과로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천개입 의혹을 포함해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를 둘러싼 국정 농단 의혹이 폭발하고 있는 만큼 비상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가래로는 막지 못할 위중한 상황이다.
     
    "대통령 자격이 있는거야?"

    최근 공개된 녹음파일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가 바로 '대통령의 자격' 부분이다. 명씨는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던 상황을 지인에게 이렇게 묘사했다. "지 마누리(김건희 여사)가 옆에서 '아니 오빠 명 선생님 그거 처리 안했어? 명 선생님이 이래 아침에 놀라서 전화오게 만드는 오빠가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거야?'"
     
    김건희 여사가 생각하는 대통령은 과연 어떤 자리길래 닦달하며 자격 운운하는 걸까? 윤 대통령은 왜 배우자의 언행은 통제하지 못한 채 겉으로만 쎈 척하며 독선과 불통의 국정운영을 멈추지 않는걸까? 대선 전인 2021년 11월15일 서울의소리 기자와 통화했던 대목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내가 권력을 잡으면 거긴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거야. 거기는 이제,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래서 무서운 거지."
     
    학력위조 등 논란과 관련해 비판적으로 보도해 온 언론에 보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농담으로도 입에 담아선 안되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발언인데, 공개된 발언으로 볼 때 적어도 김 여사의 머리 속엔 '대통령=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이런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라며 윤 대통령을 수시로 다그쳤던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공공성이나 책임성이라는 개념은 찾기 힘들다.
     
    보수 원로인 윤여준 전 장관은 저서 <대통령의 자격>에서 국가통치술의 첫번째 조건을 '헌법적 기본원리를 포함한 국가제도의 관리'에 뒀다. 국민 일체감 형성과 통합구현, 대내외 현안에 대응하는 올바른 정책수립과 실행, 다양한 정치세력과 인물의 관리도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의 중요한 자격으로 꼽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수많은 국가조직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현 검찰은 주요 사건 처리과정에서 선별수사와 기소권 오남용을 일삼아 대통령 친위대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은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공수처 검사 연임재가를 임기만료 이틀 전까지 미뤄 사실상 수사외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헌법적 기본원리을 포함한 국가제도의 관리'에서 낙제점 수준으로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예산안 시정연설의 총리대독과 이념편향 논란 등을 볼 때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과도 거리가 멀다.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날, 경선 때부터 여론조사로 도움을 줬던 명태균씨와 통화하면서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라고 했다고 본인 입으로 밝힌 대목은 공천개입을 자인한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명태균씨가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한 것은 앞뒤 호응이 맞다. 명씨가 다른 사람과의 통화에서 밝힌 "윤상현이한테 전화했습니다. 보안 유지하시고…"라는 김건희 여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공천개입이 실행됐음을 부연하는 것이다.
     
    명태균씨 페이스북 캡처명태균씨 페이스북 캡처
    게다가 명씨가 대선 기간 3억 7천만원을 들여 윤 대통령을 위한 여론조사를 수 십차례 실시해 보고했고, "김건희 여사가 김영선 공천은 자기 선물이라고 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볼 때 공천의 대가성까지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다. 명태균씨는 김영선 전 의원 회계책임자였던 강혜경씨와의 2022년 5월 2일 통화에서 "오늘 여사님 전화왔는데 내 고마움 때문에 김영선 (공천) 걱정말라고, 내보고 고맙다고, 자기 선물이래"라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건 배우자의 장단에 춤을 추는 듯한 대통령의 태도다. 명씨의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 장관 앉혀 뭐 앉혀'라는 말에 '나는 했다. 분명히 했다'라는 김건희 여사와 윤 대통령의 대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사실이라면 국정농단에 다름아니다.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등등 김 여사의 거침없는 언행에서 국민들은 또다시 대통령의 자격에 의문부호를 달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도 대통령실의 잇단 거짓 해명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권력 오남용은 국민에 대한 배신…특검 수용해야

    대통령에게 공권력을 포함해 막대한 권한이 주어진 것은 권한을 남용하거나 사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다. 선출되지 않은 자가 권력을 나눠가져서도 안된다. 특혜나 반칙, 사적보복, 공권력의 선별적 행사 등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호기가 계속되면서 집권 2년 반 만에 국격이 크게 훼손됐다. 민생은 피폐해지고 국회관계는 단절되고 국정은 여기저기 찢어져 너덜너덜하다. 30조원에 달하는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원화안정에 쓰일 외평채와 서민들의 청약통장에서 모아둔 주택도시기금까지 긁어모으려 한다. 안보불안도 새로운 걱정거리다. 공천개입을 시사하는 대통령의 육성통화가 공개됐는데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날짜를 거론하며 법적 책임 면피 운운하니 법률회사인지 정당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자연이 진공을 허락하려 하지 않듯 권력도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허점이 많은 리더의 빈공간을 비선이 채울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어설픈 사과로 넘길 단계는 지났다. 의혹의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하고 특검수사를 수용하는 게 선거에서 권력을 위임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세우는 길임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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