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0일 임기 반환점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은 '관치'를 넘어 '인치'로 업계에서 표현되곤 한다.
취임 첫해 발생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 수습을 시작으로 부동산PF 구조조정, 공매도 금지, 홍콩 ELS 배상, 가계부채 관리 등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면서다.
그 선봉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해결사로 등판해왔다. 그의 말 한마디에 금융업계는 좌충우돌, 우왕좌왕이었다.
'관리의 금융'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작동해왔지만, 자유시장주의를 내세웠던 정부가 오히려 시시각각 시장에 개입해 물길을 바꿔왔다는 비판 역시 받고 있다.
대통령·금감원장 말 한마디에 시중은행 '허둥지둥'
지난해 초,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자 윤 대통령은 "은행 종노릇"이라는 문구를 입에 올렸다.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허덕이는데, 은행의 '이자장사'를 꼬집는 표현이었다.
은행들은 곧바로 향후 3년간 취약계층에 10조원 이상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상생금융'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입김은 강했다. 가계대출 이슈에 대응한다는 그의 발언에 은행들은 금리를 올리기도 했다가, 돌연 인상을 멈추더니 갖가지 조치를 쏟아냈다. 최근에는 총량 관리 차원에서 대출 창구 문을 걸어닫기도 했다.
때론 레고랜드 사태 개입 등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가계대출 발언의 경우 논란이 확산하면서 그는 공개적으로 사과를 표명했고,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교통정리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시스템 리스크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선 때론 관치도 필요하다"며 "다만 현 정부의 개입 방식은 매우 투박하고 일관된 방향성을 읽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그러면서 "DSR 등 여러 제도가 있는데 오히려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잘한 개입이 계속되면 시장에서도 면역이 생기고 더욱 정부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기도 어렵다. 갈수록 시장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스템 개선보다 말부터 앞선 가이드라인은 논란의 중심에 금융당국을 세우고 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정권 입김이 강한 초기, 대통령 후배인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부동산PF가 연착륙 방향으로 수습되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달리 말해 시장 원칙대로라면 이미 망했어야 할 부실회사들도 때와 사람을 잘 만나 생명을 연장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금융법 전문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윤 정부에서 매번 말하는 '법치'는 예측가능성이 핵심인데 현재 금융시장은 '인치'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은행을 때려서 10조원을 내놓게 할 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쉽게 돈 버는 구조를 바로잡으려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1500만 투자자 표심만 쳐다보는 포퓰리즘 금융"
금융정책이 지나치게 표심에 흔들린다는 지적도 크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터진 홍콩 H지수 ELS 손실 사태에서 금융당국은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크게 묻고 빠르게 자율배상을 진행시켰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일부 불완전판매 사례가 있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례도 당국의 주도로 자율배상을 하게 된 것"이라며 "다른 고위험 투자상품으로 손실을 본 고객과 형평에도 어긋나고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시장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결정하고 밀고 가야 하는데 금감원장이 언론에 한 이야기 대로 시장이 따라가는 모습이 계속 연출된다"며 "이런 방식은 업계가 당국의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 조치와 금투세 폐지 논의, 밸류업 정책 등에서도 1500만 투자자의 표심을 지키느라 시장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이 많았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은 "정부 출범 당시엔 규제개혁 등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솔직히 실망스럽다"며 "세제혜택 빠진 밸류업 정책이나 상법 개정 이슈 등이 주주를 위한 것이라지만 방법을 잘못 찾아서 기업만 탓한다. 다분히 포퓰리즘적"이라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기업과 시장을 대하는 태도가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당시 기업 활동은 국내에 한정됐지만 이제는 해외 시장이 더 크다. 국내법으로 발목을 잡으면 기업이 커나갈 수 없는데, 미국 테크 기업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