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김민석 차관이 11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 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정부가 '주 69시간제' 논란에 덮어뒀던 노동시간 유연화 카드와 노동계·시민사회와 갈등을 빚었던 이른바 '노사법치' 기조를 다시 꺼내들었다. 임기 반환점을 돌아선 윤석열 정부가 공개한 '노동개혁 3.0'의 청사진이다.
노동계에서 플랫폼 종사자 등을 근로기준법 보호망 밖으로 내몰 것이라 우려하는 '노동약자지원법'은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한다는 목표는 재확인했다.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은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尹정부 노동개혁 키워드 '노사법치', 임기 후반에는 '임금 체불'이 간판
고용노동부는 12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고용노동 정책의 주요 성과와 향후 계획을 공개하면서 보도자료의 제목을 '노사법치를 토대로 청년과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개혁 지속 추진'으로 잡았다.
윤석열 정부 임기 전반부에 진행한 '노동개혁 1.0'이라 할 수 있는 노사법치는 정부 입장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비록 "노사법치는 노사를 불문하고 적용"한다고는 강조했지만, 그 성과로는 "산업현장에서 오랫동안 묵인되어 온 건설현장의 자기조합원 채용, 단협상 우선·특별채용 등의 관행들을 개선했다"며 "노동조합 회계공시를 지난 2023년부터 시행하여, 올해는 공시율이 90.9%에 이르고 있다"는 등 노동조합을 겨냥한 정책 변화만 거론했다.
건설노조 고 양회동 열사의 장례절차가 시작됐던 지난해 6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분향하고 있는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황진환 기자이른바 '건폭몰이' 수사로 인해 지난해 노동절인 5월 1일, 고(故)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분신해 목숨을 잃었고, 최근 ILO(국제노동기구)가 정부를 향해 '건설노조의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무색할 성과 홍보다.
이번에도 노동부는 그간 정부가 진행한 노동정책의 성과 중에서도 노사법치 기조를 첫 머리로 들었다.
다만 노동부는 '노사법치'에 대해 "불법, 부당행위는 노사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면서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강조하고 있는 '임금체불 근절'을 간판으로 새로 걸었다. 특히 체불된 임금 중 약 40%가 퇴직금인 점을 고려해 연금개혁과 연계하며 '퇴직연금' 가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엔 '주69시간제' 수렁 피할까…다시 노동시간 유연화 추진하는 尹정부
이어 눈에 띄는 지점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방점은 '근로시간 제도 개선'에 찍혔다.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아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도 못했는데 관련 규제를 다시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기선을 제압했던 '노사법치' 노동개혁을 토대로 속도를 내다 '주69시간제' 논란에 좌초됐던 '노동개혁 2.0'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이미 여당인 국민의힘은 R&D(연구개발) 분야 종사자는 향후 10년 동안 주 52시간제에서 예외로 두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을 당론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민석 노동부 차관은 "저희가 단순하게 근로기준법이 금과옥조처럼 이것만이 옳은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면 논의가 안 된다"며 "저희는 합리적으로 논의가 되도록 지원할 예정"이라며 여당과의 입법 공조 가능성을 내비쳤다.
더 나아가 내년에도 30인 미만 사업장에 주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2021년 주52시간제 도입과 함께 정부는 기업 부담을 덜겠다며 5~29인 사업장에는 주60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는 '추가연장근로제'를 허용했는데, 올해 연말까지 이러한 '계도기간'이 연장된 상태다.
김 차관은 "계도 기간을 더 유예할 것인가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현장 상황을 봐야 할 것"이라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관련 논의도 같이 봐서 결정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정년연장·계속고용에 대해서는 관련 사회적 대화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현재 경사노위 계속고용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사회적 대화를 토대로, 정부는 청년일자리와의 갈등이나 부담완화를 위한 임금체계 개편 등에 관한 대안을 마련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 차관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한 합리적 계속고용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며 여당 일각과 경영계가 거론하는 직무급제 도입을 강조했다.
5인 미만 사업장도 근기법 적용한다더니…구체적 계획은 아직 보이지 않아
고용노동부 김민석 차관이 11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 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플랫폼 종사자·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와 같은 취약노동자들을 지원하겠다며 정부가 추진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노동약자지원법)은 연내 제정되도록 올해 정기국회 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법 제정 이전이라도 노동약자의 애로사항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예산사업도 확대 개편할 계획"이라며 △근로자이음센터 확대(6→10개소) △이동노동자 쉼터 조성 △분쟁조정 지원 △영세사업장 HR플랫폼 이용지원 △교육·법률구조상담 등을 제시했다.
또 채용 절차의 공정성·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정채용에 관한 법률'(공정채용법)도 당정 협업을 통해 올해 정기국회에서 논의하도록 추진한다고 밝혔다.
반면 김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강조했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계획이 제시되지 않았다. 대신 노동부는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여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관련 대안을 마련할 사회적 대화를 지원하기 위해 해당 사업장 현장을 조사·분석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김 차관은 "5인 미만의 근로기준법 적용은 반드시 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국세청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근로시간, (사용자의) 지불 여력 등을 살펴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사노위의 어느 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의제로 설정해서 논의할 것인지는 아직 확정이 안 됐다"면서도 "저희도 적극 참여해서 합리적 대안이 무엇인지 노사 불문하고 설득할 계획은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강조된 '자기규율 예방체계'…'아리셀 참사' 교훈 반영될까
한편 올해 들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확대된 가운데, 정부는 현 정부 들어 내세우고 있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중심의 산업재해 예방 정책 기조를 다시금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6월 경기 화성 1차전지(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참사 당시 해당 사업장이 위험성평가 인정심사를 무사 통과했고, 노동부가 3년간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하는 등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 바 있다. 노동자들이 위험성평가에 충분히 참여하거나 준비하지 못하고, 노동부도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참고기사 : 정부 책임·핵심 원인은 어디? 알멩이 빠진 아리셀 참사 개선책)
이에 대해 노동부는 "점검·감독 등도 단순 규정 위반 여부를 중심으로 하는 형식적 단속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고 예방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내실화할 계획"이라며 "민간·기업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우수사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 확인하는 한편 이를 모델화하여 관련 지역 및 업종 등에 보급하여 예방 수용가능성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산업안전 예방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여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