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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3대가 머뭇거렸다…작은 카페 바꿔놓은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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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3대가 머뭇거렸다…작은 카페 바꿔놓은 '이것'

    '경사로' 하나로 모두가 편해졌다…'모두의 1층×서울'

    문래동에서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는 최전주 대표가 '모두의 1층_서울'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 장규석 기자문래동에서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는 최전주 대표가 '모두의 1층_서울'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 장규석 기자
    카페 앞에서 휠체어 3대가 머뭇거렸다. 7월 뜨거운 도로 위 3명의 휠체어 손님들은 선뜻 에어컨 바람이 쏟아지는 카페 문을 밀고 들어오지 못했다.

    커피를 내리던 최전주 대표는 곧바로 알아챘다. "알고 오신 분인지, 모르고 오신 분인지 손님들 얼굴만 딱 보면 읽을 수 있어요. 이분들은 앞에 와서 고민하는 게 보이니까… 여기를 알고 오셨구나 하고 바로 뛰어나갔죠."

    최 대표는 2023년 커피 로스팅 국내 챔피언으로, 세계 대회에서도 7위에 오른 로스팅 계의 유명 인사다. 역시나 소문을 듣고 그의 커피 맛을 보고 싶어서 찾아온 손님들이었다.

    "제가 휠체어를 직접 들어드리고, 테이블도 붙여드리고 했어요. 서비스로 다른 것도 한 잔 만들어드리고 그랬죠." 그런데 가게를 나가던 한 손님의 말이 최 대표의 가슴에 꽂혔다. '우리가 힘들게 해서 죄송해요.'

    가슴에 꽂힌 한마디, "죄송해요"


    "가게가 좁아서 제가 더 죄송했는데 그러고 가시니까… 휠체어도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시멘트로 된 턱을 깨기도 힘들고 비용이 얼마나 들지도 모르겠고 고민만 하고 있었어요."

    불과 2주 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 사람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신은 건축사이고 서울시와 협업으로 턱이 있는 가게에 휠체어 경사로를 설치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동의해 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너무 좋다'고 말했죠. 그런데 이게 빨리될 줄 알았는데 두 달 정도 걸렸어요. 설치할 경사로의 각도와 길이가 정해져 있더라고요. 또 도로를 점유해야 하니까 그 절차도 필요하다고 하고…" 그렇게 지난 9월, 최 대표의 작은 카페 앞에는 휠체어 경사로가 놓였다.

    카페 앞에 경사로가 설치된 모습. 장규석 기자 카페 앞에 경사로가 설치된 모습. 장규석 기자 
    최근 유튜버 박위 씨가 휠체어를 타고 바로 그 경사로를 지나 카페로 당당히 들어왔다. 머뭇거림은 없었다. 아내 송지은 씨와 데이트를 나온 그에게 최 대표는 자연스럽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의자를 빼주고 메뉴 사진을 직접 보여주며 주문을 받았다.

    평소에도 휠체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대동한 손님이나 나이 든 어르신 손님에게도 제공하던 서비스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물론, 구독 중인 위라클 채널의 박위 씨와 소싯적 팬이었던 시크릿의 송지은 씨를 대면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모두가 다 편해진 것 같아요"


    경사로가 생긴 이후 휠체어, 유모차 손님, 어르신들, 목발을 짚은 손님은 물론 단골들도 "들어오기 편해졌다"며 많은 응원을 보냈다. 무거운 커피 생두를 가져오는 거래처 분들도 경사로의 혜택을 본다. "모두가 다 편해진 것 같아요." 최 대표는 말했다.

    박위 씨가 휠체어를 타고 카페로 들어가는 모습. 유튜브 위라클 채널 캡처박위 씨가 휠체어를 타고 카페로 들어가는 모습. 유튜브 위라클 채널 캡처
    그래서일까, 프로젝트 이름도 '모두의 1층×서울'이다. 사단법인 '무의'와 '두루'를 중심으로 지난해 민간에서 해오던 '모두의 1층' 사업에 올해 서울시 약자동행담당관이 합세했다. KB증권에서 7천만 원을 후원했고, 브라이트건축사사무소가 경사로 설계와 제작을 맡았다. 사업 설계부터 실행까지 공공과 민간이 함께했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해 경사로를 설치한 매장은 45곳으로, 아직도 설치 지원 작업은 진행 중이다. 경사로 설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도로점용허가다.

    휠체어는 턱이 2cm가 넘으면 스스로 올라갈 수 없다. 경사 각도가 너무 가팔라도 안 된다. 그래서 턱이 높을수록 경사로 길이는 길어지는데, 도로(보도 포함)와 맞닿은 매장인 경우 경사로가 지자체 소유인 도로를 침범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도로점용허가는 필수다.

    '모두의 1층_서울 경사로 길라잡이' 서울시 자료집 캡처'모두의 1층_서울 경사로 길라잡이' 서울시 자료집 캡처
    그러나 보행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청에서 점용허가를 내주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도로가 국유지인 경우에는 자산관리공사(캠코)를 설득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점주가 경사로 설치를 원했지만 끝내 점용허가를 받지 못한 곳도 적지 않다. 

    만만찮은 점용허가


    문래동 카페거리의 경우, 다행히 영등포구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경사로를 집중적으로 설치할 수 있었다. 서울시 담당자는 문래동 사례가 다른 자치구로 확산될 수 있는 선례로 남았으면 한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아울러 기업의 참여를 확산하기 위해 협약을 맺은 파리바게뜨와 본죽, CU 등 3개 프랜차이즈 기업의 매장에 경사로 설치가 시작된 것도 성과다. 여기에 더해 본죽은 각 가맹점의 단차 여부와 경사로 설치 유무 등 '매장 단차 정보' 정비에도 나섰다.  

    경사로가 설치된 문래동 카페거리 매장들. 서울시 자료경사로가 설치된 문래동 카페거리 매장들. 서울시 자료
    점주들을 위해 사례별 경사로 설치 방법을 알려주는 가이드북, '모두의 1층×서울 경사로 길라잡이'도 e북 형태로 제작·배포했다. 점주들이 자발적으로 경사로 설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다.

    '모두의 1층×서울'은 일종의 마중물 사업이다. 경사로 설치에 시민과 점주, 지자체, 기업들이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기존의 경사로 설치 지원 사업이 확대될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서울시는 경사로를 설치한 매장 앞에 '모두의 1층_서울' 스티커를 부착하고, 모바일 지도 등에 매장 정보를 표시할 예정이다. 또한 매장 점주의 만족도 조사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 김현아 약자동행담당관은 "경사로를 설치하는 매장과 기업이 칭찬받고 응원받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민간이 주도하는 '모두의 1층' 사업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경사로 사업을 하는 다른 지자체에 사례를 알리는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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