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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내릴 수 있는 기적이란 무엇일까[노컷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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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내릴 수 있는 기적이란 무엇일까[노컷 리뷰]

    핵심요약

    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감독 오시마 나기사)

    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아는 사람이라면 영화는 몰라도 그의 대표곡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음악이 어떤 의미를 담고 탄생했는지, 음악의 멜로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가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모두 담겼다.
     
    제2차 세계대전, 인도네시아 자바섬. 무사도 정신을 맹신하는 일본군 대위 요노이(류이치 사카모토)는 포로수용소에서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데이비드 보위)와 마주하게 된다. 사형 직전의 잭을 자신의 수용소로 데려온 요노이는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면서도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끊임없이 갈등한다. 한편,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국군 중령 존 로렌스(톰 콘티)는 영국군과 일본군 양측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수용소의 분위기는 점점 격화된다.
     
    우리에게는 음악가로 잘 알려진 류이치 사카모토와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연기 데뷔작이기도 한 '전장의 크리스마스'(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극 중 대사이자 OST 중 하나이기도 한 영문 제목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라는 마지막 대사와 하라 겐고(기타노 다케시)의 얼굴을 향해 직진해 나가는 작품이다.
     
    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국내 관객에게는 영화의 일부 묘사나 메시지가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전범국이자 가해자인 일본이 "우리는 서로 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 자체가 좌익이자 일본을 가해자가 칭했으며, 영화를 만들 때도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렇기에 류이치 사카모토와 데이비드 보위, 기타노 다케시 등 당시 배우가 아니었던 이들이 대거 출연하게 된 것이다.
     
    영화는 특수성 안에서 보편성을 발견해 나간다. 전쟁터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 인간이 갈등하고 부딪히는지 보여주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 전쟁과 군인이 아닌 인간이 존재하는지 드러낸다.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지점은 흔히 전쟁영화에 등장하는 전쟁 신이나 전투 신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영화는 대규모 무력 충돌 뒤에 가려진 전쟁의 민낯, 인간의 내면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 적대적인 행위 뒤에 어떻게 서로 다른 인간이 서로 충돌하고 서로를 적대하는지, 어떻게 스스로가 인간임을 잊고 있는지를 그리며 전쟁이 낳은 폭력성과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속 일본군과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영국군은 문화적인 차이와 시각을 좁히지 못해 사사건건 충돌한다. 영국군에게 일본의 무사 문화는 잔혹한 행위일 뿐이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타협할 줄 아는 영국군의 모습은 일본군에게는 비굴하게 비칠 뿐이다.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 서로 적대관계라는 위치는 한쪽은 다른 한쪽을 폭력으로 대하고, 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선과 악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폭력을 가하는 쪽과 폭력을 당하는 쪽은 언제 어디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로렌스와 하라의 위치가 바뀌었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애당초 영화는 어느 한쪽을 선으로, 악으로 나누어 그려내지 않는다. 일본인 개인을 증오하진 않는다는 로렌스의 말처럼 개개인을 증오하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누구도 옳지 않은 이들이며,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로렌스의 말마따나 영화는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희생물'을 만든 건 누구이며, 그 원인은 무엇인지, 왜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됐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서로 반목하면서도 때로는 친한 친구처럼 웃고 떠드는 일본군과 영국군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그들은 군인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점이다. 인간이기에 적대적인 관계이지만 살리고자 하고, 문화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비슷한 과거를 지녔다는 공통점에 이끌려 서로에게 다가가게 만든다.
     
    그렇게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전쟁 끝에 어떻게 화해와 용서로 나아가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마지막 하라와 로렌스의 대화, 그리고 로렌스를 향해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라고 말하는 하라의 모습은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을 관통한다.
     
    어쩌면 전장 속에 내릴 수 있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란 우리가 '인간'임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엔딩에서 만난 하라의 모습은 이 세상에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선물이 주어지길 바라게 된다. 무엇이 인간을 전쟁으로 이끌고, 폭력과 잔혹성에 노출된 채 서로를 적대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전에 우리는 모두 인간이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전쟁과 군인이라는 특수성 안에서 지워졌던 인간을 만나고, 그 안에 담긴 보편성에 관한 탐구를 통해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로 치환됐던 "우리는 서로 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었다"라는 문장이 남는다.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유명한 건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영화음악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해 준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OST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때문이기도 하다.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된 작품 안에서 그가 작곡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배우 류이치 사카모토를 마주한다는 건 여러모로 흥미롭다.
     
    여기에 대중음악은 물론 여러 방면에서 큰 영향을 미친 문화 아이콘이자 뮤지션인 데이비드 보위가 연기하는 잭 셀리어스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큰 가치를 지닌다.
     
    123분 상영, 11월 20일 국내 최초 디지털 리마스터링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공외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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