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오 사진가◇박혜진> 낮에는 침을 들고 환자를 진료하고, 밤이 되면 오름과 제주 들판을 다니면서 제주말을 카메라에 담아온 분이 계십니다. 한의사이자 사진가인 김수호 작가 이야기인데요. 제주돌문화공원 내 갤러리 누보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수오 작가 만나봅니다. 이번 사진전 타이틀을 '가닿음으로' 정하셨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김수오> 전시하고 있는 내용은 제가 5~6년 동안 제주의 전통적인 방식인 방목되고 있는 말들의 이야기입니다. 한라산 들판에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는 제주마들의 공동체에 제가 가닿았기 때문에 담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박혜진> 이 작품들을 남기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김수오> 제가 본격적으로 카메라 들고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중하고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들을 난개발이나 여러 개발 과정으로 최근 10년여 사이에 소중한 자연환경들이 본의 아니게 사라지잖아요.
정작 남아 있는 것들을 모두가 다 바쁘고 나름 이해관계 때문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사라지기 전에 이 모습들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름, 중산간, 들판을 주로 담았습니다.
제가 낮에는 진료하기 때문에 새벽이나 저녁부터 달빛 아래 풍광까지 담다 보니까 말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 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담은 게 한 5~6년 정도 됩니다.
◇박혜진> 5~6년의 기간동안 거의 매일 사진찍으러 가셨다면서요.
◆김수오> 물론 매일은 아니죠. 태풍이나 눈이 많이 내려서 차가 움직이지 못하면 안 갑니다. 카메라가 젖으면 안 되니까요. 비바람, 눈보라가 치거나 집안의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빼고는 무조건 새벽 4~5시에 깨면 새벽에 가고, 새벽 5~6시에 깨면 저녁에 퇴근하면서 진료 마치고 가곤 했죠.
◇박혜진> 그러다보니 들판의 말들의 삶을 거의 매일 보셨겠군요?
◆김수오> 그렇죠. 제주도의 전통적인 마을 목장은 기본적으로 수만 평으로 굉장히 넓어요. 넓은 곳에서 말 20~30마리 정도가 1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아서 망아지를 키우고 그 망아지가 1년 정도 되면 크거든요. 그 말들을 마주 분들이 와서 다시 데려가는 거죠. 데려가면 다시 또 새로운 망아지가 태어나고 이런 식으로 일종의 마을처럼 유지가 됩니다.
◇박혜진> 그동안 에피소드가 많으시겠어요?
◆김수오> 어느날 말 한 마리가 막 뒹구는 거예요. 아픈 줄 알았더니 새끼가 태어나려고 한 거죠. 1~2시간의 산통 끝에 망아지가 태어나고 그 망아지가 몇시간 후에 엄마와 누나를 따라서 들판으로 사라지는 거예요.
그런 모습들을 쪼그리고 앉아서 5시간 동안 곁에 앉아서 고스란히 카메라로 찍고 영상으로 다 기록했죠. 그 후 일어나려고 했는데 제 무릎이 안 움직였어요. 5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던 터라 그랬던 모양입니다.
또 한겨울 눈보라 칠 때 망아지 한 마리가 뒷다리를 다쳐서 걸음을 잘 못 걸었어요. 어미 뒤를 따라다니다 버티던 애가 결국 폭설주의보가 내리던 날 밤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떠났더라구요.
들판에 동그란 작은 봉분이 있었고 옆에는 또 큰 봉분이 하나 더 있었어요. 눈 녹은 다음 봤더니 그중에서 늙은 말이었습니다. 그 노마가 추위에 떨다가 떠난 겁니다.
그 죽은 새끼의 어미 말은 어디 있나 찾아봤더니 하얀 눈 쌓인 벌판 가운데서 눈을 해치면서 풀을 뜯고 있더라고요. 문득 4·3 할머니들의 증언록 중에서 아기가 죽어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죽은 젖먹이를 그냥 우영밭에 묻고 묵묵히 다시 검질을 맸다고 하는 '살암시민 살아진다'라는 문구들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가 제주마들을 기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유년 시절에 봤던 척박한 제주 땅에서 강인하게 살아온 제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미 말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에 강하게 우리를 채워줬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진을 담고 있는 제주말이 내 잃어버린 유년시절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보존됐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김수오 사진가◇박혜진> 사진찍으러 다니면서 건강은 괜찮으셨어요?
◆김수오> 제가 한의사이다보니 계속 아픈 사람을 보니까 진료 후 들판에 나가 달빛 아래 오름의 풍광이나 말들이 고요히 잠든 모습들은 저에게 굉장한 위안이 되고 힐링이 돼요. 20~30년 동안 한의사로서 진료하는 낮에는 긴장감이 그리고 저녁의 평온함이 서로 다른 부분을 보완해 주는 거예요.
◇박혜진> 수만 장의 사진 중에서 35점을 전시하셨는데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김수오> 공통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운데 말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너무 마음이 찡하다 하는 거고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가 일반적인 사진을 출력한 게 아니고 한지에 프린트를 했습니다. 사진이 그림처럼 보인다는 반응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현장 가서 직접 봐보시죠.
◇박혜진>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또 찍으실 계획이세요?
◆김수오> 제가 전업 작가는 아니어서 제가 한의사로서 조금 더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더해 제주에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움들을 우선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또 그 중의 하나는 산담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오름에서 나고 자라서 오름 곁에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장례 문화가 바뀌면서 이장 후나 주인없는 산담들을 조경업자들이 와서 불법적으로 가져가 버리거든요.
제주가 사람들에게 위안 주는 부분은 가장 제주다운 모습 그대로일 때가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제주문화, 오름, 곶자왈, 산담 등을 담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