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불도저에 탄 소녀'에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일어선 혜영에게 전화 한 통이 온다.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이 입금됐다는 전화였다. 곧바로 확인한 통장에는 거액이 찍혀 있었다. 힘겹게 살아왔고, 힘겹게 일어서서 삶을 살아가는 혜영에게 아버지의 보험금은 슬프지만 희망일 될 것이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에서 용수는 자신의 죽음을 위장한다. 자신의 죽음을 위장해 얻게 될 보험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을 거 같은 어촌 마을로부터 도망가게 해줄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에서다. 물론 영화 속 용수의 자작극은 많은 허점을 지니고 있다.
그 스스로도 치밀하게 사전 조사를 하지 않아서 실제 진행 과정에서 오류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보험금은 용수, 정확히는 용수의 아내 영란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둘은 보험금을 갖고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어촌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가벼운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박이웅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보험'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장치인지 말이다. 그러자 박이웅 감독은 "누가 그랬는데, '보험사기 3부작' 찍을 거냐고 했다"라며 웃었다.
그는 "나는 제일 먼저 떠오를 일일 거라 생각했다. 분명히 범죄다. 그런데 범죄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인데, 이건 그게 명확하지 않다"라며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는지 명확하지 않고, 도덕이 해이해질 수 있는 형태의 범죄다. 그래서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오히려 되게 쉽게 벌어지고, 금방 잊히는 일 중 하나더라. 내가 그걸 조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그는 2008년,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위해 바다를 따라 어촌 마을 조사에 나선 적이 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무작정 동해 경찰서에 가서 용수처럼 조업 중 바다에 빠질 경우 조사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물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죽은 척하는 거면 어떠냐?"라고 물었다. 그때 경찰은 박 감독에게 화를 냈다.
그는 "전혀 상상 못 했던 일인 거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때, 쉽게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TV나 뉴스에서는 (보험사기가) 자주 나오니까 마치 일으키기 쉬울 거라 하는데, 일반적인 사람이 일으킬 경우 의심할 수 없는 행위라는 걸 알게 됐다"라며 "그러다 보니 이게 되게 해 볼 만한 이야기라는 동력을 제공했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보험'이 가진 안전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영화적인 요소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보험이라는 게 사실상 안전을 보장해 주는 거다. 그런 것도 소극적인 느낌의 보장이라면, 이걸 내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사람의 욕심, 이런 것도 재밌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시나리오가 탄생한 순서로 보면 '아침바다 갈매기는' 이후에 '불도저에 탄 소녀'가 탄생했다. 박 감독은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바탕으로 노인에서 젊은 소녀로, 바다에서 도시로 인물과 배경에 변화를 줬다. 그는 "그러면서 보험 관련 이야기도 약간 변형돼서 남아 있었던 거 같다"라며 "둘이 서로 다른 형태의 같이 쓰인 이야기"라고 했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컷. ㈜고집스튜디오, ㈜트리플픽쳐스 제공박 감독에게 다음 행보를 물었다. 그에게서 '사극'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사극도 역시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난 내가 본 것들,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주변에 있고, 내가 의문을 지니는 것에서 시작한다"라며 "사극을 보면서 '왜 다 왕과 양반들의 이야기지?' '말도 저렇게 말 안 할 거 같은데?' '저렇게 말 안 해도 재밌을 거 같은데?'라면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왜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극장에서 봐야 더 다양하게 느끼는 거 같다"라며 "윤주상 배우가 한 말인데, TV로 볼 때와 달리 극장에서 보면 눈 밑 떨림, 입술 떨림 등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 달라진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박 감독은 "'불도저에 탄 소녀'도 그렇고 '아침바다 갈매기는'도 그렇고, 내가 추구하는 영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스펙터클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라고 했다.
"집에서 그냥 TV로 보면 재밌는 이야기로 끝날 수 있지만, 극장에서 볼 때는 그 공간의 느낌을 느낄 수 있어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그곳의 풍광과 바람이 느껴져야지만 이 영화가 완성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