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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람이가 '타산지석' 될 줄 알았는데…" 공군 또 성범죄, '교훈' 못 얻었나[싸우는 사람들]

사건/사고

    "예람이가 '타산지석' 될 줄 알았는데…" 공군 또 성범죄, '교훈' 못 얻었나[싸우는 사람들]

    공군 전대장이 회식 뒤 소위 성폭행 시도 의혹…"공군, 2차 가해 못 막아"
    '성폭력 트라우마' 하사, '의병전역' 신청했지만 '불명예 전역' 권유받아
    방혜린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공군, 이예람 중사 사건에서 교훈 얻지 못했다"
    이예람 중사 父 "잇단 성폭력 사건에 자괴감과 분노…'전익수 방지법' 필요"
    현역 여군들 "나도 당했지만, 신고 못했다…진짜 불이익 없을까?"

    지난 7월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이예람 중사 봉안식에서 유가족이 봉안 전 고인의 유골함을 마지막으로 끌어안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7월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이예람 중사 봉안식에서 유가족이 봉안 전 고인의 유골함을 마지막으로 끌어안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예람이 사건이 '타산지석'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자괴감과 분노를 느낍니다. 얼마 전 공군 성추행 피해자 B하사 기사에 댓글을 남겼어요. '당신(공군)들의 모든 부조리를 없앨 수만 있다면 예람이를 만나러 가는 행운을 얻겠다'고."


    이예람 공군 중사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 2차 가해에 시달리다 2021년 세상을 떠난 후 3년 만에 공군에서 또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는 최근 보도된 두 사건을 언급하며 "군 장병들에게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초석을 놓는 심정으로 목소리를 내왔는데…"라고 목소리를 떨었다.

    이씨는 "한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그 가족과 친구 등 수십 명이 슬픔에 빠진다. 사실 우리 모두가 군인의 가족 아니겠느냐"며 "피해자는 을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연대의 뜻을 밝혔다.

    이씨는 지난 28일 이예람 중사의 직속 상관과 군검사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또 한 번 좌절감을 느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이날 이예람 중사에게 2차 가해를 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중대장과 군검사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초범이라는 것이 감형 사유가 됐다. 직무유기 등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대대장에게는 1심에 이어 무죄가 선고됐다.

    이씨는 딸의 명예회복과 가해자들의 엄벌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며 "누가 동조했고 누가 방관했는지를 밝히고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져야 군장병들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차 피해' 못 막고, 피해자에 '불명예 전역' 권한 공군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사진. 사진공동취재단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공군 내에서 벌어진 두 건의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며,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후 분골쇄신해야 했을 공군이 여전히 성폭력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각 사건에서 공군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각 분리하지 않아 '2차 가해'를 초래했고, 피해자에게 '불명예 전역'을 권유하는 등 미온적인 대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달 초, 공군 17비행단의 한 공군 전대장이 부하 여군을 강제 추행하고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 등에 따르면 10월 24일 해당 전대장은 직속 부하들과 회식 후 방문한 즉석 사진관, 택시 등에서 A소위를 성추행했다. 이후 그는 피해자에게 '한 잔 더 하자'며 관사로 가자고 강요했고, 자기 숙소로 돌아가겠다는 A소위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며 강간을 시도했다.

    A소위가 사건 다음 날인 금요일 오전, 성범죄 사실을 알렸으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는 다음 날 이뤄졌다. 가해자인 전대장이 "토요일에 이동하고 싶다"고 요청한 것을 군이 수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전대장은 토요일 직접 부대를 찾아 회식 참여자들에게 '걔가 많이 취했었지?' 등의 질문을 통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대답을 유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대관리 훈령 제250조에 따르면 부대 내 성희롱·성폭력이 접수됐을 경우 '피해자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야 하며, 피해자가 휴가 등으로 자연 분리된 경우라도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원 소속부대에서 분리해야 한다.  

    지난 10월 8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정감사에서는 공군이 강제추행·2차가해·디지털성폭력 피해자 B하사에게 '불명예 전역'을 권고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B하사는 2021년 12월 같은 대대 선임 부사관에서 강제 추행을 당했다. 분리조치가 이뤄졌지만 부대 내 2차 가해가 발생했고, 견디다 못한 B하사는 타 부대 전출을 택했다. 그러나 얼마 후 2차 가해를 주도했던 상급자가 같은 부대에 배속됐다. 2023년 6월 전출된 부대의 상사에게 또 성추행을 당했고, 올해 1월에는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딥페이크 음란물'이 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듭되는 성폭력을 버티지 못한 B하사는 3차례 세상을 등지려는 시도까지 했다. 결국 그는 군 복무 중 전상·공상·질병 또는 심신 장애로 인한 전역을 의미하는 '의병전역'을 신청했다. 그러나 군은 그에게 '불명예전역'을 의미하는 현역복무부적합심사 절차를 안내했다.

    "왜 또 성추행? 공군 수뇌부는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

    성추행 피해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한 군 검사에게 부당한 위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 지난 8월 29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황진환 기자성추행 피해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한 군 검사에게 부당한 위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 지난 8월 29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황진환 기자
    방혜린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은 공군 내 성폭력 발생과 이에 대한 미온적 대처의 원인으로 '공군사관학교 조종사 중심의 이너서클 문화'를 지목했다. 그는 "말하자면 고임의 정도가 다르다. 공군은 대체로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조종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직의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너서클 안에서 잘 무마하면 되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때문에 말 그대로 난리가 나지 않았었나. 그러나 공군 이너서클 안에서는 별일이 아닌 거다"며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을 비롯해 지금까지 재판에서 제대로 처벌받은 고위급 인사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공군 수뇌부는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이예람 중사 사건으로 군 최초 특검이 실시되고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는 등 대대적 변화가 있었지만, 공군 조직문화는 변화지 않았을 뿐더러 고위급 인사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예람 중사 사건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전익수 전 실장은 지난 8월 29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방 팀장은 "범죄 예방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이 돌아온다는 '필벌'의 원칙이다. 신고를 하면 절차대로 처리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하는데 번번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씨는 '전익수 방지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법은 군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수사 또는 재판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나 군 수사업무 종사자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위력을 행사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전 전 실장을 처벌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나도 당했지만, 신고 못했다"…조직 떠나는 여군들

    연합뉴스연합뉴스
    필벌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피해를 볼까 신고할 수 없게 된다는 방 팀장의 말처럼, 현역 여군들은 불이익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했다.

    14년 차 김모 소령(진)은 "나도 초급 장교 때 불쾌한 일을 경험했고, 성희롱을 당한 사람을 목격하기도 했다"며 "동성 간의 성폭력도 벌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이 경우에는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 신고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앞으로의 군 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을지 걱정되지 않겠나. 여군들은 자진해서 군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진급과 장기복무를 바라는 상황에서 이를 말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를 엄격히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조금의 불이익도 가지 않는 사례를 많이 보여줘야 한다. 그런 사례가 쌓이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4년차 최모 중사는 "뒤에서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제3자의 신고로 알게 됐다"며 "곧바로 가해자와 분리조치가 됐고 지휘관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명성을 보장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내 앞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공론화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최 중사는 "성범죄를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없다. 군대라는 조직이 폐쇄적이고 위계질서가 심하지 않나. 성폭력을 은폐하려는 경향도 있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도 부족하다. 그리고 그 피해자가 (군 조직의 일원인) 여군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황희 의원실 제공황희 의원실 제공
    성폭력을 방지하겠다는 군의 약속에도, 여군 대상 성범죄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여군 대상 성희롱은 1730건, 성폭력은 915건이 신고 접수됐다. 특히 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력범죄도 △2020년 77건, △2021년 212건, △2022년 263건 △2023년 247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여군의 희망전역도 꾸준히 늘고 있다. 여군 희망전역은 최근 5년간 842명에 달했다. 2019년 108명에서 △2020년 116명, △2021년 112명, △2022년 158명, △2023년 180명으로 증가했고, 올해도 9월까지 168명이 희망전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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