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씨가 거주하던 반지하 집. 성북주거복지센터 제공"사방 천지에 곰팡이가 생겼어요. 바닥에서 물이 올라오는데 당장 갈 곳이 없어 스티로폼을 깔고 쪽잠을 잤어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해 뜨면 물건을 말리면서요."
19일 서울 성북주거복지센터에서 만난 홍모(65) 씨는 당시를 회상하다 눈물을 왈칵 쏟았다. 2020년 2월 SH전세임대주택 반지하에 입주했던 그는 이불을 개다 곰팡이를 발견했다. 날이 풀리자 곰팡이가 벽면을 새까맣게 뒤덮었고, 6개월 만에 장롱, 옷 등 세간살이 전체로 번졌다. 편안해야 할 집이 지옥으로 변했다.
홍 씨는 피부염을 앓으면서도 갈 곳이 없어 무작정 버텼다. 집주인에게 도배와 장판을 요구해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청소를 안 해서 그렇다", "예전에 세입자는 그곳에서 잘만 살았다"며 책임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결국, 홍 씨는 지인에게 보증금을 빌려 다른 반지하 월셋집으로 이주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SH임대료 이자에 월세까지, 주거비를 양쪽에 지불해야 했다. 형편이 어려워 간 반지하였는데 되려 더 큰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그는 "'이런 집을 구한 내 잘못인가' 하며 자책도 했다. 그런데 그런 집은 세 놓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통해 구한 집이었는데 분쟁을 겪는 동안 공사는 한 번도 개입하지 않았다. 이게 맞는 것인가"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금 거주하는 곳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출입구 계단을 비롯해 온 집안을 쓸고 닦아도 이틀 후면 곰팡이가 올라온다. 그는 "날이 조금만 습해져도 신경이 곤두선다. 그릇에도 곰팡이가 슬고 냉장고에도 곰팡이가 생긴다"며 "환기도 안 되는 터라 건강 걱정이 크다. 반지하에 살다 보면 건강이 제일 먼저 안 좋아진다고 다들 말한다"고 씁쓸해했다.
곰팡이가 홍 씨의 옷장과 옷을 뒤덮은 모습. 성북주거복지센터 제공침수 사망 사고만 문제? "반지하 사람 살면 안 되는 곳"
성북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은 "2022년 관악구 침수 사망사고로 반지하의 취약함이 부각된 것일 뿐, 거주민들에게 이런 위협은 일상적이다. 지하에 살며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주거기본법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거주지는 방습 등에 양호해야 하며 적절한 환기·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춰야 한다. 소음·진동·악취 및 대기오염 등 환경요소도 법정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환기·방습 등을 따지는 세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보통의 반지하 가구는 현행 최저주거기준에는 미달되지 않을 수 있으나, 성능 측면에서 따져 보면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반지하 가구의 환경 특성은 단순 쾌적함을 재는 척도가 아니라, 질병을 유발하거나 거주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반지하에 거주 중인 전국세입자협회 윤성노 팀장은 "반지하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름이면 반지하 내부 온도는 34도, 습도는 90%까지 올라간다. 높은 습도에 체감 온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에 (내부에 있기) 힘들어진다"며 "벌레와 곰팡이로 인한 위생 문제도 있으며 전염병에도 취약하다"고 밝혔다.
침수나 화재 같은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윤성노 팀장은 "환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화재 때 더 위험하며, 침수로 인한 사망 사고와 전기 감전의 우려도 있다"며 "반지하 사망 사고가 되풀이되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차수판 설치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며 "물에 빠져 죽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진 모르나, 화재 등 다른 위험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선미 센터장 역시 "반지하 집은 역류 방지를 위해 변기가 있는 곳의 단을 높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계단을 오르다 낙상하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지하는 결코 안전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반지하 대책 헛발질…"매입임대주택 늘리는 것이 답"
지난 2022년 관악구 반지하 침수 사고 현장. 연합뉴스서울시는 지난 2022년 관악구 반지하 침수 사고 이후 점진적으로 반지하를 퇴출하겠다며 반지하 매입, 반지하 이주 지원, 반지하 특정 바우처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정책 효과는 저조하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동할 경우 매달 20만 원씩 지원하는 '반지하 특정 바우처' 신청 가구는 이달 초 기준 1천 가구도 넘지 못했다. 20만 원으로는 지상층 임대료를 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지원이 끊긴 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지하 퇴출을 위한 매입도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SH공사는 반지하 3450가구를 매입하겠다고 추진했으나, 2021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매입한 반지하 가구는 587호에 불과했다. LH는 지난 2년간 반지하 주택을 단 한 건도 매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12월 31일 기준 서울에는 20만 2741호의 반지하주택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전체 가구의 약 5%를 차지한다. 이 중 1990년 이전 사용승인을 받은 노후 지하·반지하 주택이 8만 6707호다.
성북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 강지윤 기자
김 센터장은 "매입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SH가 소극적으로 나오는 상황"이라며 "반지하를 퇴출하려면 출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매입임대주택 수가 너무 적다. 민간을 활용하는 전세임대도 좋지만, 경제 취약 계층의 경우 소액으로라도 채무가 있어 은행 대출이 어렵고 고령의 단신 가구의 경우 집을 알아보는 게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센터장은 '전세금 지원 한도 증액'과 '임대료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약 계층에 대한 보증금 지원 한도가 현재 1억 3천만 원인데, 도심에서 그 금액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반지하뿐"이라며 "같은 서울이라도 시세에 맞게 지원 한도를 차등하는 식의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물의 노후도, 교통편 등을 따져 기준 임대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세금 지원 한도 금액이 오르면 그만큼 반지하 전셋값이 오르는 일이 더러 있다. 부르는 게 값이 되니 생기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실질적으로 반지하 가구가 지상으로 이주할 수 있는 방법은 주거취약전세임대 제도 밖에 없다"며 "매입임대주택을 늘려 SH가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빌라 등을 적극적으로 구매해 임대한다면, 민간으로 흘러가는 주거급여 등을 회수할 수 있어 오히려 주거 복지 비용이 절약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시는 장기적으로 '재개발' 등을 통해 반지하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완충 대책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재개발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