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향후 정국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후 떠나고 있다. 박종민 기자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불참 끝에 자동 '폐기'됐다. 투표 참여 의원 숫자가 의결정족수인 200명에 미치지 못하면서 '투표 불성립'으로 끝이 났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안이 개표조차 되지 못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긴 셈이다.
이 사태엔 한동훈 대표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표는 최초 비상계엄 사태 때 "위헌·위법 계엄 선포"라고 규정했고, 다음 날엔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부역해선 절대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대통령은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탄핵에는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로 결국 국민의힘 의원들의 투표 불참에 힘을 실었다.
특히 한 대표는 처음엔 탄핵에 반대했다가, 계엄 당시 본인에 대한 체포조가 활동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탄핵에 찬성할 것처럼 언급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여당에 모든 권한을 일임하겠다"고 발표하자 다시 입장을 선회하는 듯한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한 대표가 대의적 명분보다는 개인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7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여당 의원들의 대거 불참으로 투표 불성립이 돼 자동 폐기됐다.
우원식 의장은 "명패수를 확인한 바 총 195매로서 투표하신 의원수가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에 미치지 못했다"며 "이 안건에 대한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날 탄핵안은 오후 6시 17분쯤부터 표결에 부쳐졌지만, 결과는 약 3시간 뒤인 9시 30분쯤이 되어서야 나왔다. 안철수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자, 우 의장이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종료를 선언하지 않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예지·김상욱 의원만 돌아와 투표했고, 나머지 의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불참 배경에는 한 대표의 의지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 대표는 대통령 탄핵 찬반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엔 "위헌·위법 계엄 선포"라며 "국민과 함께 계엄을 막아내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고, 직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선 윤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추경호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정해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은 따르겠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더니 다음 날 돌연 "윤 대통령이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추가 계엄 사태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막을 다른 수단이 없다 보니, 탄핵을 찬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직후 이뤄진 윤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에도 "이 판단을 뒤집을 만한 말을 못 들었다"고 거듭 못 박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히자, 한 대표는 다시 '탄핵 반대'로 입장을 선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담화 직후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조기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밝히면서도 탄핵 찬반 여부엔 침묵했다. 결국 여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에 반대 뜻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탄핵 반대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실제 한 대표가 태도를 바꿀 때마다 당내 '친한(親韓)계' 의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도 했다. 한 대표가 탄핵안에 찬성했으면 충분히 가결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조경태 의원은 여당 의원 중 처음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을 언급했다가, 한 대표의 뜻이 바뀌자 '대통령 조기퇴진'으로 물러서기도 했다. 조 의원은 직접 "한동훈 대표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대표가 본인 유불리에 따라 탄핵에 반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표 입장에선 정국 주도권을 쥘 기회가 생긴 데다가, 대통령 퇴진을 늦추면 그만큼 차기 대선 시점도 늦어지고 사법리스크가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불리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대표는 탄핵 동조로 인한 '배신자 프레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다만 본인이 계엄 사태에 대해 '위헌'이라고 밝혔고,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음에도 탄핵을 반대하는 모순적 행위에 대해선 추후 정치적 책임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 나아가 내란 행위를 감싸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 탄핵안이 폐기된 이후 기자들과 만나 "계엄 선포 이후 오늘까지 상황에 대해 여당 대표로서 국민들께 대단히 송구스럽다. 계엄 선포 사태는 명백하고 심각한 위헌·위법 사태였다"며 "그래서 계엄을 막으려 제일 먼저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으로 하여금 임기 등 거취를 당에 일임하게 해서 퇴진 약속을 받았다. 국민의힘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할 것"이라며 "혼란은 없을 것이다. 오직 대한민국과 국민에 최선인 방식으로 국민들께서 불안해하시지 않게 예측 가능하고 투명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도 협의할 것"이라며 "대통령 퇴진 시까지 사실상 직무 배제될 것이고 국무총리와 당과 협의해 국정 운영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