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에서 개최한 '서울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안' 본 회의 통과 저지를 위한 세무사 궐기대회 모습. 한국세무사회 제공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 민간위탁 사무의 사업비 결산 검토 업무를 두고 세무사 단체와 회계사 단체가 갈등을 빚는 양상이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가 지난 17일 이들 갈등의 중심에 선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가결하면서다.
개정안은 서울시가 민간에 위탁한 사업 결산검토 업무를 회계사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 기존 조례에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정의됐던 업무를 '회계감사'로 수정하고, '독립된 사업비 결산 검사인'을 '회계법인 또는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춘 독립된 외부의 감사인'으로 수정했다.
현 11대 서울시의회에 개정안을 처음 발의한 국민의힘 허훈 시의원은 "공인회계사의 고유직무를 세무사에게 허용해 상위법령에 저촉되는 회계감사 관련 규정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자칫 세무사와 회계사 간 업역 다툼으로도 비춰지는 이 같은 갈등의 발단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12월 당시 10대 서울시의회는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가결했고, 이듬해부터 서울시 민간위탁사업의 결산검토 업무에 세무사가 참여할 길이 열렸다.
해당 조례안을 2019년 5월 최초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채인묵 당시 시의원은 "민간위탁사업의 사업비 집행 및 정산이 시장이 정한 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처리됐는지 검토하고 확인하는 '사업비 정산의 검사'를 의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회계감사'라는 용어를 사용해 불필요하게 업무수행 전문가의 범위를 축소시킴으로써 수탁기관의 불편과 비용부담이 가중됐다"고 개정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시의 민간위탁사업비가 연간 1조 원대에 달하자 2014년 해당 조례를 개정해 '수탁기관은 매 사업연도마다 결산서를 작성해 시장이 지정하는 회계법인 또는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민주당 김용석 당시 시의원이 2013년 발의한 개정안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즉, 2014년 도입한 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를 2022년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바꿨다가, 2년 만에 이를 다시 번복하려 한 셈이다.
공인회계사들이 서울 태평로 서울시의회회관 앞에서 오는 17일 열리는 서울시 기획경제위원회 전체회의에 조례 개정안을 상정하라고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제공한국공인회계사회는 이 같은 조례 재개정을 위해 서울시의회 의원들을 설득하고 나섰고, 한국세무사회는 반발하며 재개정 저지에 나섰다.
특히 갈등이 고조된 건 2021년 12월 개정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 측이 반발해 의회 의결을 무효로 해달라며 낸 소송이 지난 10월 기각되면서다.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은 지방자치법상 '사업비 결산서 검사'는 공인회계사법상 공인회계사 고유직무인 '회계에 관한 감사·증명'에 해당한다며 재의를 요구했고, 오 시장도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했지만 시의회는 2022년 4월 재의결에서도 조례안을 원안 가결했다. 이에 오 시장 측이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현행법상 지방자치단체장이 그 사무를 민간위탁한 경우 수탁기관에 대해 반드시 공인회계사법상 '회계에 관한 감사·증명'을 거쳐야 한다고 제한하는 법령이 없다"며 "시장은 수탁사무 또는 수탁기관의 규모 및 성격에 따라 '감사' 또는 '검사'를 적정하게 선택해 수탁기관의 불편과 비용부담을 감소시키고, 효율적인 수탁사무 처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회계사단체와 세무사단체 중 세무사단체의 손을 들어준 셈인데도, 서울시의회에 재개정안이 상정되자 갈등에 불이 붙은 셈이다.
이번 갈등은 지난 20일 서울시의회가 본회의에 상정하려던 조례 재개정안을 부의하지 않으면서 일단 진정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경기도의회에는 대법원 판결 뒤인 지난 11월 민간위탁사업비의 집행과 정산을 회계감사토록 한 기존 사무위탁 조례를 '사업비 정산/결산 검사'로 하는 개정안이 발의(민주 정승현 도의원)돼 내년 2월 임시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은 지난 18일 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올랐다가 논란 끝에 일단 부결됐지만, 내년 초 재상정을 앞두고 또다시 갈등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