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의 모습. 류영주 기자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23일부터 이틀간 진행하는 가운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권한쟁의 심판을 거론하며 임명 절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거대 의석을 활용해 단독으로 헌법재판관 임명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법적·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정치권에선 이들이 윤 대통령 탄핵 심판까지 시간을 끄는 등 다른 목적이 있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일각에선 '법잘알(법을 잘 아는)' 검사 출신 권성동 원내대표 지도부가 자신이 알고 있는 법률 지식을 악용해 위헌 계엄 파문의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법꾸라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법재판관 추천 '절차적 문제' 지적했지만 내심은 '시간 끌기'
권성동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재판관 추천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시 즉시 저희는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법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주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 동의 절차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여당이 권한쟁의 심판 카드를 꺼내며 가져온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임명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는 것에 법적으로 흠결이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87년 헌법 제정 이후 국회 몫 헌법재판관은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민주당이 이번에 (그것을) 깼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여당은 헌법재판관 3인에 대한 인사청문회에도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이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절차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검사' 역할을 맡게 된 국회가 탄핵심판관 임명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점 또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권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의원총회에서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징계 취소소송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징계위원을 위촉해 결원을 충원했던 것이 절차상 위반으로 판결이 난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징계 청구권자인 법무부장관이 징계위원을 위촉해 결원을 충원한 것을 두고 헌법상 적정 절차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여당은 이 판례를 근거로 탄핵소추를 의결한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직접 추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권한인 임명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이날 권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임명은 기본적으로 국가원수 지위에서 나오기 때문에 대행으로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가 이날 권한쟁의 심판을 강하게 주장한 데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의 임명안을 재가하지 않고 버티는 데 힘이 되는 근거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한 권한대행이 실제 임명권을 행사하더라도 여당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경우,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내릴 때까진 공석인 3명의 헌법재판관을 채우긴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법잘알' 지도부의 명확해지는 탄핵방탄 노선…민심과 더 멀어지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27일)을 앞둔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탄핵반대 화환이 놓여있다. 연합뉴스이렇듯 여당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법을 앞세워 방어 논리를 구축하는 데엔, 최대한 시간을 끌어 여당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당내에선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영남권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여전히 있는 만큼, 시간을 끌다보면 이들이 결집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다.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당의 한 초선 의원은 "여의도 집회 못지않게 광화문에도 탄핵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이 모였다. 계엄령은 잘못됐지만 그럼에도 탄핵은 안된다는 것"이라며 "우리 당이 이 여론을 어떻게 무시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당이 현재 '조기 대선'을 치르기엔 불리한 상황인 점을 감안해 최대한 시간을 끌면 내년 2월쯤 예정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선고 등 변수가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집권여당으로서 '위헌적 계엄'에 대한 반성보다는, 재판 지연 '꼼수'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두고 민심과 더욱 동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야권에선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 높여가고 있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장관 2명(국방부, 행정안전부) 임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없다는 궤변을 펼치고 있다. 그저 시간을 끌고 시선을 돌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조국혁신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공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