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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승만'이 삼킨 학교…'학살의 역사' 대물림[영화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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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이승만'이 삼킨 학교…'학살의 역사' 대물림[영화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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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세상 모든 영화는 알맹이를 품었다고 믿습니다. 껍데기는 차근차근 벗겨 내고 알찬 것들만 골고루 건져 올렸습니다. 지금 여기, 먹음직스럽게 간추린 알맹이들로 한상 가득 푸짐하게 차린 영화 한끼 대접합니다.

    정지영 감독 새 영화 '내 이름은'을 미리 봤습니다

    '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은 자신이 오류를 저질렀다고 믿지 않는 통에 더 발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류를 저지르고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사람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만 정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생각이 실종된 어느 날' 中

    소수 힘 가진 자가 다수 일반인을 지배하기 위해 고안해낸 잔인한 방법이 있다. 바로 다수끼리 편을 갈라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다. 분열지배정책, 이른바 '갈라치기'다.

    제국주의 열강이 드넓은 식민지를 지배할 때도 그랬다. 극소수 정복자는 절대다수 원주민 가운데 중간 관리자를 뽑았다. 그들로 하여금 동족을 찍어 누르도록 판을 깔아 줬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는 그 폐해를 뼈저리게 안다. '제국주의 마름'을 자처한 친일파는 동족을 극악무도하게 다뤘다. 스스로 정복자라도 된 듯이 말이다. 그것이 계급 상승의 동아줄이라 굳게 믿었으리라.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찾아왔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도 싹텄다. 그러나 잠시였다. 남쪽에는 미군정이 자리잡았다. 도망쳤던 친일파, 이젠 '친미파'가 된 그들이 다시 요직을 차지했다.

    완장을 바꿔 찬 그들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렇게 국가권력마저 손에 쥐었다. 자기네 치부를 건드리는 독립운동가, 사상가들을 철저히 배격하고 제거했다. 그리고 군인과 경찰을 사사로이 동원해 기층민을 짓눌렀다.

    제주4·3을 다룬 새 영화 '내 이름은'은 이러한 역사적 바탕 위에서 바라봐야만 할 것 같다.

    '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

     잃어 버린 현대사 참상 직시…희망 품은 현재의 봄으로


    영화 '내 이름은'은 엄마 정순(염혜란)과 아들 영옥(신우빈)을 두 기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공간 배경은 제주도. 시간은 이들 모자가 함께 보낸 1998년 봄을 중심으로 정순의 과거사(1949년 봄)와 영옥의 미래사(현재의 봄) 양쪽으로 뻗어 나간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아들 영옥의 학교 생활이다. 그 이야기가 한국 현대사 축소판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영옥이 서울에서 전학 온 경태(박지빈)와 관계 맺는 여정은 특히 그러하다.

    경태는 '작은 이승만'이라 부를 만하다. 그로 인해 영옥은 결국 절친 민수(최준우)와도 갈등을 겪는다. 끝내 경태의 실체를 들춰 내는 민수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다음으로 엄마 정순 이야기는 그가 아홉 살 이전 기억을 모조리 잃은 데 초점을 맞춘다. 정순은 매년 봄이 오면 극심한 아픔을 겪는다. 아들 영옥의 표현을 빌리면 "봄바람에 꽃잎 날리는 것만 봐도 아픈 사람"이다.

    이러한 정순은 서울에서 새로 온 의사 도움으로 잃어 버린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 나간다. 이를 통해 카메라는 국가권력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피로 얼룩진 우리네 역사를 오롯이 비춘다.

    결국 정순은 어린 시절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아픔을 다소나마 씻어내고, '이름'으로 표현된 역사적 당위를 아들 영옥에게 납득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아들 영옥의 미래사, 그러니까 희망을 품은 현재의 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가 역사라는 한 물줄기로 기어이 만나는 셈이다.

    '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내 이름은' 스틸컷. 렛츠필름·아우라픽처스 제공

    "난 너보다 우월하다" 망상 깨기…'내 이름은' 시민 연대


    갈라치기 핵심은 서열화다.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는 인식. 이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 뿌리를 뒀다. 그래서 위험하다. 끝내 '너는 인간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망상으로까지 발전하는 탓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망상의 결과물이 현실을 지배해온 사실을 잘 안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학살, 흑인의 노예화,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등이 그랬다. 역사는 이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한국 사회 부조리를 직시해온 영화인으로 유명하다. 전작들이 이를 어렵지 않게 알려 준다. '남부군' '하얀전쟁'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 '블랙머니' 등이 그 면면이다.

    그는 신작 '내 이름은'을 통해 제주4·3으로 대변되는, 한국 현대사 그늘인 민간인 학살을 조명한다. 바로 일그러진 국가권력의 극단적인 폭력성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들 영옥의 학교 이야기는 범위를 확장한다. 이는 그 폭력성이 여전히 우리네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경고다.

    결국 정 감독은 극단적인 폭력성의 근원이 갈라치기, 서열화에 있다는 점을 꿰뚫고 있다. 더욱이 제일 큰 득을 보는 사람은 그 싸움판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는 사실 역시 말이다.

    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 '내 이름은' 엔딩 크레딧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은 시민 1만여명 이름이 5분간 스크린 가득 채우고 올라간다. 그 광경은 압도적이고 숭고하다. 그렇다. '내 이름은' 시민들의 연대다.

    15일 개봉, 112분 상영,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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