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양당 원내대표와 회동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우 의장,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
여야정이 국정협의를 위한 첫 발을 내딛는 가운데 경기 보강을 위한 추가 경정 예산 편성에 관한 논의도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도 올해 경제 상황에 '적신호'를 켠 마당에 시장의 심리를 반전시킬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만큼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與 "무분별한 추경은 포퓰리즘" 정부 "추경하더라도 1분기 이후에"
정부와 여야는 9일 국회에서 여야정 국정협의체의 일정·의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첫 실무협의를 갖는다.
이날 당정은 야당의 추경 편성 요구를 거부하는 대신 정부 예산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고, 경제 관련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키자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놓고 여야 갈등이 격화된만큼 여야가 팽팽하게 맞설 전망이다.
앞서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지난 7일 "무차별 현금 뿌리기식 낭비성 추경 편성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도체특별법 등 경제 관련 법안 처리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 경제 안정을 위한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도 야당의 주장처럼 추경을 조기 편성하는 대신, 올 상반기 중 정부 예산의 67%를 조기 집행하는 등 속도를 내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두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경제여건 전반을 1분기 중 재점검하고, 필요시 추가 경기보강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추경의 필요성은 일부 인정하더라도 그 시점은 1분기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12·3 내란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 접어들며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추경 편성이 정치적 변수로 이어질 수 있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야당은 최대한 빨리 추경 예산을 편성해 급한 불을 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뜩이나 내수가 침체되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던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新)행정부 집권 등으로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데도 12·3내란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탓에 경제 위기에 대응할 시간조차 부족한 만큼 더 미룰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역대급 저성장 코앞인데…재정 조기 집행으로 경제 심리 돌릴 수 있겠나
이미 정부도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1.8%로 하향 조정해 건국 이래 7번째로 낮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예측대로라면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기 시작한 2022년 2.7%부터 2023년 1.4%, 2024년 2.1%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1~2%대의 저성장 터널을 지나게 된다.
전날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도 2년만에 "경기 하방 위험"을 전면 경고하고 나섰다. 매월 '경제동향 보고서를 발표하는 KDI가 '경기 하방'을 거론한 일은 2023년 1월 이후 처음이다.
특히 KDI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와 비교하며 환율 등 금융 지표의 동요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지만, 가계·기업의 심리지수는 크게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추경과 같은 특단의 대책 없이 단순히 정부의 주장처럼 이미 발표된 경제정책·예산 사업을 서둘러 집행하는 것만으로 위축된 경제 심리를 되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이 때문에 기존에 발표된 정책·법안의 추진 속도를 단순히 높이는 수준으로는 경기를 부양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늦게 발표할수록 낮은 성장률과 이에 따른 심리에 주는 영향이 있는 만큼 빠른 시간에 합의를 해서 새로운 예산을 발표하는 것이 경제 심리에 좋다"며 추경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명지대학교 우석진 경제학과 교수도 "예산이 하반기에 남으면 돈을 돌려쓸 수 없으니, 상반기에 당겨서 쓰면 전체 예산을 충분히 쓸 수 있다는 면에서 조기 집행이 효과가 있을 뿐, 실제로 경기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로 상반기에 67%를 집행하면 하반기에는 33%만 남는다는 얘기로, 하반기에 생길 위험을 대처하지 못하게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추경 재원 마련 고민이라지만…'감액 예산안' 고려하면 추경해야 정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환시장 점검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전날 추경안 편성 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민생경제회복단장인 허영 의원은 "정부가 상반기 예산 67%를 조기 집행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는 대내외적 불확실성을 이겨내고 민생경제를 회복하기에 역부족"이라며 "20조 원을 기본 출발선으로 해서 충분히 단계별로 추경을 편성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추경 규모 목표도 제시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강도 높은 감세 일변도 정책의 후폭풍으로 2년 연속 80조 원에 달하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세수 결손으로 인해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평소라면 추경재원으로 활용할 세계잉여금이나 외평기금 등은 세수 결손을 메우는 데 이미 끌어다 써서 여유가 없다. 결국 극심한 대내외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와중에 국가 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무릅쓰고 국채 발행 규모까지 늘려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애초 올해 예산안은 지난해 국회에서 감액만 이뤄졌을 뿐, 윤 대통령이 일으킨 12·3 계엄으로 증액이 되지 않은 '불완전 예산안'이다. 이 때문에 야당은 애초 증액했어야 할 예산을 추경을 통해 '완전한 예산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정전문 민간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의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8일 '추경 예산안 규모 및 내용 제안' 보고서를 통해 재정에 부담이 없는 최소한의 추경 규모로 국회 감액분(4조 1천억 원)에 상속세 및 증여세 증액분(1조 7천억 원)을 합한 5조 8천억 원 수준은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여기에 비상시국인 점을 감안해 세출 뿐 아니라 세입 추경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이 위원은 "정부가 국회에 2025년도 국세수입안을 제출한 이후 2024년 국세수입 재추계를 통해 -29조 6천 억원의 국세수입을 조정했다"며 "특히 국회심의 과정에서 상증세 증가액 만큼 소득세와 법인세 국세수입 금액을 임의로 삭감해 2025년 국세수입 액수를 확정했는데, 이에 작년과 재작년 발생한 세수결손이 올해에도 이어지지 않도록 세입 추경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