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1차 발표(6월3일 윤석열 대통령 발표)는 저희가 생각지 못한 정무적 영향이 개입된 과정에서 장관님께서 비유로 든 것 자체가 부각됐다. 저희(산업부)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때 발표는 죄송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관계자는 6일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1차 시추 결과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지난해 석유부존 가능성 발표 당시의 성급함에 대해 사과했다.
산업부, 최종 결과 나오기 전인데 "경제성 확보 어려워" 자인
산업부는 이날 대왕고래 1차 시추 결과와 관련해 "대왕고래 시추 작업 과정에서 가스 징후가 일부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었다"며 "경제성을 확보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첫 번째 케이스에서 성공하는 것은 로또보다 적은 확률인데 정무적 이유로 많은 부담을 갖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대왕고래 유망구조에 대한 탐사시추 작업은 지난해 12월 20일 시작된 이후 47일 만인 지난 4일 종료됐다.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경북 포항시 앞바다에 위치한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웨스트 카펠라호가 탐사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시추 과정에서 취득한 시료 등을 전문 용역사로 보내 정밀 분석과 실험을 실시한 뒤 최종 분석 결과는 오는 8월에야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까지 확인한 내용 만으로 대왕고래의 석유 부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일찌감치 밝힌 것이다.
정부는 이번 시추를 통해 획득한 시료와 데이터는 나머지 6개 유망구조 후속 탐사에서 활용할 것이라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지만, 석유 부존의 가장 중요 요소인 '탄화수소' 부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라는 말도 더는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현재로서 정부는 대왕고래 유망구조에 대한 추가 시추 등 탐사는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尹 140억배럴 설레발에 주가 널뛰기, 책임론 커질듯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발언을 마친 뒤 배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앞서 지난해 6월 정부와 석유공사는 물리탐사 자료 분석을 통해 '대왕고래'를 비롯한 동해 7개 유망구조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가스·석유가 매장돼 개발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국정브리핑을 직접 발표하면서 공개적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윤 대통령은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다"고 밝히면서 산유국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같은 자리에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밝히면서 기대를 부풀렸다. 그 당시에도 성공 확률이 낮은 석유 부존 가능성을 놓고 최대치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는데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윤 대통령 발표 이후 석유,가스 관련 주가는 널뛰기를 했다. 논란은 미국 컨설팅 업체 '액트지오' 업체의 신뢰성 여부로 옮겨갔고, 급기야 액트지오사의 아브레우 대표가 입국해 직접 설명에 나서는 등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업체의 세금체납 의혹을 비롯해 호주 석유개발업체 우드사이드사가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해 철수했다는 내용들이 추가 공개되면서 경제성과 신뢰성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국회에서는 첫 시추 사업 예산 497억원이 전액 삭감되기도 했다.
자원개발 중요한데…해외투자 유치 전망 어두워
연합뉴스당시 석유업계 관계자들은 석유부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추는 한국석유공사법에도 명시돼 있고, 석유자원 개발을 위해 해 오던 일인데 윤 대통령 직접 발표로 주목도가 높아진 것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에너지자원학계 교수·전문가들도 자원안보 측면에서 자국 내 자원개발은 계속 이뤄져야 하는데 대통령의 성급한 발표로 석유탐사의 중요성이 평가절하 되는 것을 우려했다.
결국 대왕고래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당시의 우려는 현실화 하는 모습이다.
앞서 국회가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예산을 사실상 전액 삭감하면서 정부는 2차 시추부터는 해외투자 유치로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봤던 대왕고래 유망구조가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되면서 향후 해외 투자 유치를 비롯한 6개 유망구조에 대한 전망도 어두워졌다.
이에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다른 해외 유전들도 수십차례 시도 끝에 성공한 사례들이 있다"며 "국민이 허락해주시면 계속 이어가는 것이 자원 개발 생태계 유지에 좋다고 본다"고 호소했다.
히지만 정치 상황과 맞물려 시추 사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전망이어서,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찬반 논란과 정부 책임론 등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