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핵심요약

몇 해 전부터 동해심해가스전 개발 사업은 계속 진행돼 왔습니다. 산유국의 가능성을 보고 꾸준한 노력과 재원을 투자해야 할 일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에 이용됐고, 그 결과 기존의 성과는 물론 미래의 도전까지 의심 받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왕고래라고 쓰고 자원안보라고 읽어야 할 어떤 가치는 소란스럽게 떠올랐다 허무하게 사라지게 됐습니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될 점은 무엇일까요? 산업부 출입하는 조태임 기자가 이런 문제의식을 [취재 익스플레인]을 통해 공유합니다. CBS 유튜브 채널 '노컷'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산유국의 부푼 꿈을 안게 해준 대왕고래,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6일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중 가장 크고 가능성이 높다고 본 대왕고래 유망구조를 시추한 결과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급기야 산업부 고위공무원은 "1차 발표는 생각지 못한 정무적 영향이 개입됐다. 그때 발표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했는데요.

이 관계자가 말한 정무적 영향은 뭘 의미할까요?  발단은 지난해 6월 3일 예고에 없던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에서 시작됐습니다.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이었는데 10분 전까지 대통령실이나 산업부 출입기자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원유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습니다. 산업부 장관은 한술 더 떠 이 매장량이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수준이라고 밝혔는데요.
 연합뉴스연합뉴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로 알려진 대한민국에서 최대 4년 동안 쓸 수 있는 석유가 발견됐다고 하니 그 기대감에 며칠동안 석유, 가스 관련 주들은 상한가를 이어갔고요.
 
또 한편으로는 과연 믿을 수 있는 발표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논란은 미국 컨설팅 업체 '액트지오'의 세금체납, 1인 기업 등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로 된 검증이 맞냐'는 의구심을 샀습니다.
 
호주 석유개발업체 우드사이드사가 이미 동해심해가스전에 대해서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해 철수했다는 내용들이 추가 공개되면서 경제성과 신뢰성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직접 발표로 정쟁화 된 대왕고래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연일 두드려 맞았습니다, 연말에는 첫 시추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발표 당시 전문가들은 시추도 해보기 전인데 탄성파로 관측한 탐사자원량만 가지고, 또 최대치인 140억 배럴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발표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정부도 20% 확률이라 했는데 석유 개발에서 20%는 높은 확률이라고는 하지만, 80%의 실패확률을 안고 있을 만큼 불확실성이 큰 사업입니다.
 
결국 시추 결과, 물론 6개의 유망구조가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우선 대왕고래 유망구조에 대해서는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시추공도 다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대왕고래 프로젝트라는 이름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습니다.
 
엄마, 나 이번 시험에서 100점 받을 거 같아. 라며 엄마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고, 먹고싶은거 다 먹고 게임 다 했는데.. 막상 성적표 받아보니 0점이었다 라고 하면 비유가 적절할까요?
 
실제 과거 사례들과 비교해도, 대통령의 발표는 설레발 그 자체였습니다. 지난 2005년 동해 석유·가스층 발견 당시에는 석유공사 차원의 보도자료가 전부였습니다. 발표 시점도 시추가 이뤄진 뒤였습니다.
 
1998년 동해 가스전에서 양질의 가스층이 발견됐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서지 않았고 이후 한 참 뒤인 2002년 동해 가스전의 생산시설 기공식이 열릴 때 참석해 힘을 실어주는 정도였습니다.
 
익명의 한 학계 관계자는 "10단계의 과정이 있다면 이제 1단계만 거친 상황인데 불확실성을 그대로 껴안은 상황에서 발표를 하는 건 다른 어떤 나라나 기업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무르익지 않은 완전 설익은 발표였다는 걸 꼬집은 겁니다.
 
그런데 그런 발표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했다니, 그 부분이 가장 비판을 받는 지점입니다.
 
보통 대통령의 발표라고 하면 매우 신뢰할 만한 내용이라는 걸 의미하는데 이렇게 한없이 가벼운 발표였다니요. 국민들 역시 앞으로 가벼운 지도자의 말은 한번 걸러 들어야 한다는 걸 학습하는 계기가 됐을 겁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상황이 가장 안타까운 건 자원개발의 명맥이 끊어질까 하는 점입니다.
 
자원업계 관계자들은 발표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대통령의 성급한 발표에 대해서는 우려를 했습니다. 자원개발은 국가 자원안보나 에너지정책 측면에서 꼭 필요한 부분인데 이 문제가 정쟁화 하면서 자원개발 필요성이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는 대통령 발표와 무관하게 몇 해 전부터 동해심해가스전 개발 사업을 계속 진행해왔고, 대통령 발표 두달 전 시추선 계약도 다 돼 있었습니다.
 
석유공사의 시간표대로 해 오던 사업인데, 오히려 대통령 발표로 주목도가 높아지고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예산이 전액 깎이고, 이제는 이 사업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에 몰리게 됐습니다.
 
정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자원 안보라는 대의를 생각하면 경제성과 확률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일텐데요. 한국은 에너지의 90%를 수입하는 국가입니다. 그만큼 에너지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는데요. 비록 대왕고래의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왔더라도 자원개발, 석유탐사 중요성이 평가절하 돼서는 안 될 겁니다.
 
정부는 이번 시추를 통해 획득한 시료와 데이터는 나머지 6개 유망구조 후속 탐사에서 활용할 것이라고 밝히며 해외 석유 메이저 및 국내 기업 투자를 유치해 가스전 시추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입니다.
 
8개월간 정치권의 몰매와 찬사를 동시에 받아 온 대왕고래,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입니다. 정무적 판단에 의해 불려나왔던 대왕고래를 이제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이번 일을 통해 자원개발에는 정치가 개입되면 안된다는 메시지는 제대로 심어준 계기가 됐길 바라봅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27

3

전체 댓글 0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