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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린샤오쥔과 빅토르 안' 세계 최강이라 슬픈 韓 쇼트트랙의 숙명

'中 린샤오쥔과 빅토르 안' 세계 최강이라 슬픈 韓 쇼트트랙의 숙명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중국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태극기가 아닌 오성홍기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중국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태극기가 아닌 오성홍기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2025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종목이 마무리됐다. 세계 최강의 대한민국 대표팀은 역대 아시안게임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두고 금의환향했다.

윤재명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6개와 은 4개, 동 3개를 수확했다. 지난 2003년 아오모리 대회(금메달 6개, 은 3개, 동 5개)를 넘어선 역대 최고 성적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한체육회가 쇼트트랙 종목에서 설정한 목표 금메달 6개, 은 3개, 동 4개도 초과 달성했다.

여자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이 한국 선수 최초로 여자 500m 정상에 오르는 등 3관왕을 달성했다. 최민정의 뒤를 잇는 김길리(이상 성남시청)도 남자팀 에이스 박지원(서울시청)과 함께 가장 많은 메달인 금 2개, 은 2개씩을 수확했다. 장성우(고려대)는 남자 1000m 금메달을 따내며 차세대 스타로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럼에도 살짝 아쉬운 장면은 있었다. 쇼트트랙에 걸린 9개 금메달 중 한국 대표팀이 따내지 못한 3개 종목이다. 남자 500m와 남녀 계주 종목이다. 모두 개최국 중국에 유리하게 보이는 석연치 않은 판정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녀 계주에서 대표팀은 모두 중국 선수와 충돌 여파로 금메달이 무산됐다.

특히 남자 500m에서는 한국에서 귀화한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우승을 차지했다. 린샤오쥔은 결선에서 박지원에 뒤졌지만 중국 대표팀 동료 쑨룽이 엉덩이를 밀어주는 도움(?) 속에 막판 추월해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명백한 반칙이었지만 개최국, 특히 중국에서 열린 대회라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임효준이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노컷뉴스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임효준이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 노컷뉴스

다만 린샤오쥔은 여전한 기량을 뽐냈다. 이번 대회 금메달과 은, 동까지 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오른 기세를 이었다. 린샤오쥔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당시 1500m 금메달과 500m 동메달을 따낸 린샤요쥔은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 우승까지 일궈낸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선수였다.

하지만 린샤오쥔은 2019년 6월 대표팀 훈련 도중 후배 황대헌(강원도청)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해프닝으로 나락에 빠졌다. 한 순간의 실수였지만 한국 국적을 버리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황대헌이 먼저 여자 선수들에게 엉덩이를 때리는 장난을 쳤는데 이에 린샤요쥔도 황대헌을 잡아당기며 흥을 이어가려 했다. 이 과정에서 황대헌의 바지가 벗겨져 엉덩이가 일부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황대헌은 대한체육회에 성희롱 신고를 했고, 린샤오쥔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게 됐다. 체육회 재심의에서도 징계가 풀리지 않은 린샤오쥔은 2020년 선수 생명의 연장을 위해 중국으로 귀화했다. 법적 공방 끝에 무죄가 선고됐지만 린샤오쥔은 한국 국적을 포기한 뒤였다. 다소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한국 쇼트트랙의 어두운 그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황대헌이 기뻐하는 모습.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황대헌이 기뻐하는 모습.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린샤오쥔은 임효준이었을 당시 대표팀 에이스였고, 황대헌은 사실상 2인자였다. 평창올림픽에서 황대헌은 500m 은메달 1개를 따냈지만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세계선수권에서도 이런 구도는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임효준이 다소 선을 넘는 장난을 쳤고, 공교롭게도 황대헌은 이를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임효준은 대표팀을 넘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둘의 명암이 엇갈렸다. 황대헌은 1000m에서 중국에 유리한 판정의 피해를 입었지만 1500m 금메달을 따내며 일약 스타로 거듭났다. 당시 빙상연맹 윤홍근 회장의 제너시스BBQ그룹에서 평생 치킨 연금을 받게 됐고,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는 등 주가가 높아졌다. 반면 린샤오쥔은 중국으로 귀화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규정에 묶여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다만 세월이 지나 형세는 달라졌다. 황대헌은 대표팀 선배 박지원에 대해 세계선수권 등 국제 대회에서 잇따라 반칙을 범하는 등 구설수에 올랐고, 대표팀 선발전에서도 떨어져 태극 마크를 달지 못했다. 반면 린샤오쥔은 IOC 규정에서 풀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친구 박지원과 함께 금메달을 따냈다.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기자 회견에 나선 빅토르 안. 노컷뉴스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기자 회견에 나선 빅토르 안. 노컷뉴스
린샤오쥔에 앞서 한국을 떠났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또 있다. '쇼트트랙 황제'로 불렸던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다.

빅토르 안은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3관왕에 오르는 등 국제 대회를 석권했다. 그러나 부상 여파로 태극 마크를 달지 못해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2014년 소치올림픽에도 나설 가능성이 없어지면서 러시아로 귀화했다.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은 3관왕에 다시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각에서는 빅토르 안이 파벌 싸움의 희생양으로 러시아에 귀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빅토르 안은 소치올림픽 뒤 기자 회견에서 "파벌 싸움 때문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빅토르 안은 "파벌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면서 "당시 소속팀이 해체되고 부상으로 다른 팀을 알아보는 게 쉽지 않아 러시아 귀화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결국 한국 쇼트트랙의 치열한 경쟁에 밀려 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김영아처럼 세계 최강 한국 쇼트트랙은 귀화 선수 배출 사례가 종종 있다. 탁구의 절대 강자 중국 역시 전지희, 한잉(독일) 등 세계 각국에 귀화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에 중국 국적으로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린샤오쥔은 '제2의 안현수'로 불린다. 기량은 물론 삶의 궤적까지 놀랍게도 비슷하다. 이유는 살짝 다르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 국적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까지 그렇다. 국제 대회 효자 종목으로 각광을 받는 한국 쇼트트랙, 세계 최강이기에 운명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빛과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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