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공사 현장. 박종민 기자경기 침체 때마다 불거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문제의 근본 대책 마련을 정부와 국회, 업계가 모색 중인 가운데 사업성 평가 시 다자검증체계를 구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시행사가 대가를 지급하고 의뢰한 신용평가사에 의해 사실상 '요식행위'에 그치는 현행 평가 체계를, 신평사뿐 아니라 회계법인과 금융·보증 기관, 투자자문, 시행관련기관 등 전문성 있는 주체들이 다각도로 평가하는 구조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이진 연구위원은 20일 '부동산PF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에 '부동산 PF 위기의 진단과 기회' 제하 발제자로 나서서 이같이 제안했다.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부동산 PF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린 모습. (왼쪽부터)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국토교통위원장), 강준현 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 민주당 간사),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 최서윤 기자 이 연구위원은 시행사가 민간평가기관에 직접 평가를 의뢰한 뒤 수수료를 지급하는 구조 대신, 공적기구(위원회·기관)에 평가를 의뢰하면 이 공적기구가 다자로 이뤄진 민간평가기관을 지정해 평가업무를 배분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구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업성 평가 기준으로는 △디벨로퍼 시행능력 △공급 상품 유형 △공급 상품 규모 △공급 지역 △수익성 △자본건전성 △시공사 등을 들었다.
아울러, 부동산개발업법을 제정해 시행능력평가를 제도화하면 개발사업의 건전성을 평가하고 시행업계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봤다. 투명성을 강화한 시행사엔 택지 우선공급, 민관공동사업 참여, 금리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안도 부연했다.
부동산 PF를 제대로 들여다 보는 주체가 없다 문제가 터진 뒤 우왕좌왕하는 현실을 개선할 '부동산 PF 통계시스템' 구축도 제안했다. 국토교통부가 가진 사업자(주택사업자, 부동산개발업자, 건설사업자) 실적정보와 금융감독원이 구축 중인 PF 대출 상시감시 시스템을 연계, 프로젝트별 고유 ID를 생성해 개발 단계마다 자금조달 정보를 조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시행사의 자기자본 확대 방안에 대해선 시행사의 자체 자본 확충 외에도 부동산개발전문 사모펀드(PEF) 활성화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를 확보하는 에쿼티 금융시스템 환경 조성을 제시했다.
이 연구위원은 "금융업권 BIS(자기자본비율)상 부동산 PF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RW)를 강화할 경우를 시뮬레이션하면 개발사업이 가능한 사업장 수가 40%로 줄게 된다"면서 우려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한국의 부동산개발금융은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거치며 PF가 도입되고 시공사 책임준공과 각종 신용보강이 수반되는 형태로 고착화됐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축적과 성장기간이 부족하다 보니 부동산개발업에 대기업이 없고 해외 디벨로버 대비 산업 규모가 영세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부동산 PF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린 모습. 최서윤 기자다만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순주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엇갈린 견해를 제시했다. 황 연구위원은 '국내 부동산 PF의 문제점과 구조개선방안' 주제 발표에서 "자기자본 요건을 높이면 주택공급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하지만, 시계열 자료상 PF가 줄어들수록 주택공급이 감소하는 경향은 관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급요인의 경우 지난 2008~2024년 중 PF 익스포져(대출+보증)가 줄어들 때 인허가와 착공이 감소하는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수요 측면에서도 부동산 경기 지표인 부동산·건설업 경기지수와 주택가격매매지수 악화와의 상관관계만 관찰됐다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예금취급기관의 부동산업 및 건설업 대출이 2023년 2분기 550조 원인 데 비해 PF 익스포져는 150조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주택공급을 위해 PF 대출 뿐 아니라 기업대출, 공공건설 자금 등 다른 수단도 많이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PF의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고보증 구조를 개선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든다'는 논리는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예컨대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은 2017년 이후 PF 방식의 자금조달을 지양하고 있고, 한화건설(12위)과 호반산업(29위) 등 일부 건설사는 2023년 9월 기준 PF 지급보증 없이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황 연구위원은 전했다.
시행업계의 저자본 고보증 구조 개선 없인 현재 PF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황 연구위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344개 사업장(사업비 총액 136조 원)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5.2%였지만, 이마저도 일부 사업장의 자기자본비율이 높아 평균을 끌어올렸을뿐 중간값은 2.5% 수준에 불과핟. 특히 주거용은 2%로 상업용(3.1%)보다 낮았다. 지방(1.9%)과 수도권(3.1%) 간 차이도 크다.
황 연구위원은 "PF가 고자본 저보증 구조로 갈 때 공급의 안정성이 높고 과잉공급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과 정무위 민주당 간사 강준현 의원 주최로 개최됐으며,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리츠협회 등 다양한 업계 및 이해관계자 등이 다수 참석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축사에서 "그간 우리나라의 많은 개발사업과 도시 성장에 한국형 PF 성과가 있다"면서도 "좀 더 튼튼한 구조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게 정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대출 중심에서 투자로, (시행사의) 자기자본을 높이는 방향 △단기개발 뒤 엑시트가 아니라 개발·운영을 같이하는 통합적 역할로의 영역 확대 △정부의 관리 및 평가시스템 강화라는 3가지 방향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