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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망증세' 취급 조지호, 칭찬받은 김봉식…경찰도 '굴욕'

'섬망증세' 취급 조지호, 칭찬받은 김봉식…경찰도 '굴욕'

편집자 주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 심판의 날이 임박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그날 밤 비상계엄은 모두에게 '악몽'으로 각인됐다. 12·3 내란 사태의 시작부터 치열했던 헌재 변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쟁점들이 떠올랐다. 그 과정에 '오명'으로 남을 헌정사 최초의 기록들은 수두룩 쓰였다.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기억해야 할 주요 장면들을 되짚어본다.

[임박한 尹 심판의 날]⑩기억해야 할 장면들
경찰 1·2인자 모두 대통령 탄핵 심판정에
계엄 당일 저녁 '삼청동 안가' 회동 가져
검찰서 '체포 지시', 조지호 진술 흔들기
침묵 김봉식에 尹 "칭찬받아야 할 사람"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내란 수괴' 尹이 쓴 불명예 기록들…수두룩한 '헌정 최초'
②'미리 알았다면'…수상쩍었던 尹, 물밑엔 비상계엄 준비
③비상계엄 핵심 도구였던 軍…폭로와 침묵 '두 동강'
④'정치인 체포' 두고 국정원 1·2인자 치열한 공방…되짚어보니
⑤안갯속 '尹 심판의 날'…구속취소에 감사원장 등 선고 변수까지
⑥'12·3 밤 대통령실서 열린 회의 '간담회일까, 국무회의일까'
⑦인권은 尹부터…과거 잊은 검찰, 쏠리는 매서운 눈
⑧심화하는 '부정선거 유니버스'…저세상 '공방'
⑨헌법재판관들도 궁금했다…尹탄핵심판서 던진 질문들
⑩'섬망증세' 취급 조지호, 칭찬받은 김봉식…경찰도 '굴욕'
(계속)

12·3 비상계엄 선포 약 3시간 전, 조지호 당시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삼청동 안가'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을 결심한 배경을 밝혔다고 한다. 함께 있던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은 계엄 계획이 담긴 한 장 짜리 문건을 전달하며 국회 통제 등을 당부했다. 계엄 선포 후 국회 외곽 경비를 위해 경찰 1768명이 동원됐다.

경찰 1·2인자는 지난달 20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정 증인석에 올랐다. 국회 봉쇄와 국회의원 체포지시가 쟁점이 됐던 이날 윤 대통령 측은 혈액암 투병 중인 조 청장의 수사기관 진술 신빙성을 흔드는 데 주력했다. 반면 구체적 진술을 하지 않은 김 전 청장은 윤 대통령으로부터 "칭찬받아야 할 사람"이라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尹측 경찰 1인자에 "섬망 증세 없었나"

투병 중인 조 청장은 두 차례 소환 통보를 거부했지만, 윤 대통령 측이 강제 구인까지 요청하면서 결국 10차 변론에 김봉식 전 서울청장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했다. 수척해진 모습의 조 청장은 증언 도중 여러 차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갔다.

조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했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는 12·3 비상계엄 당시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과 연결되는 핵심 쟁점이다.

수사기관에서 조 청장은 "대통령은 제게 '조 청장!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1시 30분쯤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3분쯤까지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러한 내용으로 총 6회 전화를 받았다며 "대통령이 굉장히 다급하다고 느꼈다"라고도 했다.

또한 조 청장은 계엄 당일 밤 10시 반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전화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김동현 판사를 포함해 15명을 불러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여 전 사령관은 두 번째 통화에서 "한동훈 추가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회 측은 이 명단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받아적었다는 '체포조 명단'과 거의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체포 지시의 실체가 있었다는 근거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 측은 이에 맞서 심판정에 나온 조 청장을 향해 수사 기관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전략을 폈다. 대통령 측은 줄곧 국회 봉쇄와 주요 인사 체포 지시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암 치료 중인 조 청장에게 조사를 받을 때 '섬망 증세'는 없었는지 물었다. 이동찬 변호사는 "경찰이나 검찰 조사 당시에 섬망 증세가 혹시 있다던가, 치료 중에 그런 건 없었느냐"고 물었고, 조 청장은 "병원에 있을 때는 침대에 거의 누워서 조사받다시피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측은 또 계엄 당시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는지 추가로 추궁했지만, 조 청장은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갑자기 폐렴증상이 와서 그때부터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그런데 섬망 증상이 있다든지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증인석에 선 조 청장은 자신의 형사재판을 이유로 대부분의 증언을 거부했지만,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 때 사실대로 진술했고 자신이 한 발언을 직접 확인하고 서명과 날인을 했다는 점은은 분명히 밝혔다. 체포 지시에 대한 수사 기관 진술은 거짓이 아니라고 확인해 준 셈이다. 헌재는 관련 기록을 증거로 채택했다.

그런 조 청장을 향해 윤 대통령은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고만 짧게 말했다.

尹 "김봉식 서울청장은 칭찬받아야 할 사람"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연합뉴스김봉식 서울경찰청장. 연합뉴스
서울 전역의 치안을 책임졌던 김봉식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윤 대통령으로부터 주요 인사들의 체포나 국회 봉쇄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입을 닫았다. 국회에 경찰을 투입한 이유는 단순 질서유지 차원이라며, 윤 대통령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을 했다.

또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이유로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를 언급했다고 했으나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침묵했다. 국회 측이 삼청동 안가에서 윤 대통령이 했던 말을 기억해달라고 했지만,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김 전 청장의 입에서 국회 봉쇄·정치인 체포와 관련해 핵심 진술이 나오지 않자, 윤 대통령은 "서울경찰청장은 사실 영어(囹圄)의 몸이 될 것이 아니라 자기 상황에 맡은 임무를 제대로 해서 칭찬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신문 과정을 통해서 느꼈다"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비상계엄 당일 국회 출입 통제를 지시했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직후,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35분경 국회에 배치된 경찰은 오후 10시 48분부터 오후 11시 6분쯤까지 국회의원 등 시민들의 출입을 1차 통제했다.

이후 김 전 청장은 법률 검토를 거쳐 국회의원 출입을 막을 근거가 없다고 판단, 기동대 지휘관에게 연락해 일시적으로 출입을 허용했다. 이때 많은 의원이 국회로 들어갔다. 그러나 조 청장은 박안수 당시 계엄사령관으로부터 "포고령이 내려졌다. 국회 출입을 차단해달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를 김 전 청장에게 다시 전달했다. 이에 따라 오후 11시 37분쯤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45분쯤까지 국회 출입이 2차 전면 차단됐다.

'삼청동 안가'서 '경찰 배치' 그림 자백한 尹

서울 삼청동 소재 대통령 안전가옥. 연합뉴스서울 삼청동 소재 대통령 안전가옥. 연합뉴스
계엄 당일 삼청동 안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안가에서 국회에 경찰력을 투입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음을 의도치 않게 털어놨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청장 증인신문 말미에 "제 기억에는 종이를 놓고 장관이 두 분 경찰청장하고 서울청장에게 '국회 외곽 어느 쪽에 경찰 병력을 배치 하는게 좋겠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하는 거를 제가 봤다"고 구체적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어떤 '디 타임(D-Time)'이 되기 전에 너무 가까이 있지 말고 외곽에 배치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림 그리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책상에 있던 펜을 들어 무언가를 그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이는 경찰 수뇌부를 삼청동 안가로 부른 상황을 부연 설명하다가 나온 의외의 자백이었다. 경찰 병력은 국회 외곽 경비만을 시켰다는 걸 강조하려다 수사기관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진술을 대통령 스스로 한 셈이었다.

한편 헌재는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마무리했지만, 현재까지 선고일을 지정하지 않고 있다. 군과 경찰을 동원한 국회 봉쇄와 활동 방해 여부는 윤 대통령 5가지 탄핵 소추 쟁점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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