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제 하루 남았다. 일본이 침몰하기까지.
인터넷과 유튜브는 물론 TV와 신문에서도 7월 일본대지진설을 앞다퉈 다루고 있다. 동일본(토호쿠.東北)대지진의 3배에 이르는 대재앙이 일본 남부를 강타한다는 것이다. 100~150년 주기로 반복되며 엄청난 피해를 안겼던 난카이 트로프(南海 Trough.남해 해곡) 대지진이다. 예상 시점은 7월 5일, 바로 내일이다.
일본 기상청은 지난해 8월 난카이 대지진 주의보를 1주일 동안 발령했다. 지난 3월에는 피해 규모가 사망자 30만 명, 부상자 90만 명, 이재민 1200만 명이 넘고 건물 230만 채 이상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정치·경제의 중심 지역이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292조 엔(약 2755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앞으로 30년 내 약 80% 확률"이라고 했을 뿐이다. 7월 5일은 전혀 언급한 바 없다. 노무라 료이치 기상청 장관은 "현재 과학적으로 일시와 장소, 규모를 특정한 지진 예측은 불가능하다"며 이런 예측을 "헛소문"으로 일축했다.
진짜 대재난은 2025년 7월 5일?
2025년 7월 난카이 해곡 대지진을 예언한 타츠키 료의 '내가 본 미래 완전판' 그럼 7월 5일-심지어 오전 4시18분-은 어디서 나온 걸까? '내가 본 미래'라는 만화책이다. 만화가 타츠키 료는 1999년에 이 책을 출간했는데 동일본대지진 이후 2011년 3월이라는 발생 시기를 맞췄다는 게 알려지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2011년 10월에는 12년만에 완전판을 출시했는데, 2025년 7월 대지진으로 일본의 3분의 1이 쓰나미에 잠기고 후지산도 폭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일본은 불안에 휩싸였다. 책은 100만 부나 팔렸고 유튜브에는 관련 영상이 넘쳐나면서 공포는 확산됐다. 이는 다른 국가들로 번지면서 일본여행 취소가 늘어나고 주일 중국대사관은 일본 부동산 구입에 신중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국 역시 TV와 신문까지 가세하면서 뜨거운 이슈가 됐다. 방송과 보도 영상의 유튜브 썸네일이나 제목을 보면 일본은 7월 5일에 반드시 침몰하게 된다.
언제라도 일어난다, 10년 뒤에도 안 일어난다
과연 일본은 내일 침몰할 것인가? 답하기가 어렵다. 지질학자 등 관련 과학자들마저 "당장 내일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한다. 일본은 '불의 고리'라는 환태평양 화산대의 중심부에 있어 4개 지각판이 맞닿아있다. 난카이 대지진은 필리핀해 판이 일본열도 아래로 섭입(攝入.밀려 들어감)하면서 발생하는데 에너지가 응축된 상태여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반대 주장도 가능하다. "10년 뒤에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한마디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일본 정부의 해명이 단지 국민 동요를 막기 위한 눈가림만은 아닌 것이다.
최근 7월 대지진의 전조로 보이는 지진이 발생해 불안을 더하고는 있다. 지난달 홋카이도 지진과 큐슈의 화산 분화에 이어, 최근 2주 동안 가고시마현 남쪽 도카라 열도에서 국지적 다발성 군발지진(群発地震.Earthquake swarm)이 1000회 이상 이어지고 있다. 이는 지난해 대지진 주의보 발령 직전에도 마찬가지로 미야자키현, 홋카이도 인근 해역과 가나가와현에서 지진이 있었지만 난카이 대지진은 오지 않았다.
"30년 내 발생 확률 80%" 발표는 가장 최근인 1946년 토난카이(東南海) 지진 이후 80년이 지나 100년 주기에 20~30년 남았다는 게 판단 근거 중 하나다. 여기에 단층의 활동 이력, 지층의 응력 축적 등 지질학적 데이터를 더해 추정한 것이다.
만화가 본인마저 나섰다. 2주 전에 출간한 신작 '천사의 유언'(天使の遺言)을 통해 "꿈에서 본 것은 '2005년 7월'이며 '7월 5일'은 꿈을 꾼 날'이라고 말했다. 출판사의 판매 촉진용 편집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불확실한 시대, 확실(?)한 예언
연합뉴스그런데도 7월 5일 대지진설은 강력하게 작동했다. 지질학과 무관한데도 일본 출신이거나 일본 경험이 있는 출연자들은 전문가인 것처럼 지진에 대해 떠들어댔다. 미디어들은 그들을 앞세워 대중의 불안과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모든 게 불확실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확실한 게 필요해 보인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예언, 점, 사주 등을 통해 해소하는 사회심리적 현상은 더 고착화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을 맞췄다는 전과는 다음 예언에 대한 신뢰성을 극대화시켰다. 코로나19 예언은 전염병 창궐 수준으로 구체성이 결여됐고, 후지산도 언제 터질지는 특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전혀 상관없었다. 그렇게 만화가는 예언가가 됐다.
공포에 끌리고 유행에 민감하고 거짓정보를 즐겨 소비하는 대중의 생리를 잘 아는 미디어는 이슈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만화가의 정체는 함구했다. 어찌보면 가장 본질적인 것이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이를 거론한 것은 일본에 거주하는 '박가네'라는 한일 부부 유튜버였다. 이들은 '내가 본 미래'와 '천사의 유언'을 꼼꼼히 읽고는 책의 주제를 'Spiritual(영적인)'로 요약했다.
타츠키 료는 책에서 자신이 9살 때 우주의 시선을 느끼고 창조주를 보았다고 말했다. 창조주는 예수, 부처 등을 초월하는 유일한 절대자이며, 자신은 그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천사라고 했다. 전생에는 한 인도의 힌두교 지도자와 영적으로 이어진 딸이었다고도 했다.
언론이 놓친 또는 외면한 타츠키 료의 정체는 '영매'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에드가 케이시 외에도 '일본 침몰'을 예언한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는데 그들 대다수는 영매였다.
미래가 불투명한 대중은 판명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사실인 예언에 기댄다. 그리고 미디어는 과학보다는 미신을 앞세워 불안과 공포를 확산시키며 자신들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한다. 일본 난카이 대지진 가능성은 일시적인 흥미와 자극이 아니라 과학과 이성에 기초한 개인적 대비와 사회적 대응으로 이어져야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난카이 지진 발생시 사망자 수를 80%, 건물 붕괴는 50% 줄이기 위한 새로운 방재대책을 발표했다. 실제 달성은 어렵겠지만 목표치를 높게 잡아 피해를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P.S. 7월 5일 대지진설에도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의 발길은 꺾이지 않고 있다. 5월에 외국인 최다인 82만여 명에 이어 6월(1~25일)에도 57만을 넘어 1년 전보다 2%p 늘었다. 과학과 괴담 사이 참으로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