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군 통일교 본부. 연합뉴스경찰이 통일교 측이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련자를 상대로 현안 청탁을 위한 금품을 공여했다는 의혹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청 폐지 등 수사기관 개혁 속 경찰이 거대 여당과 정부 고위 인사 등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수사력 부족 의구심을 불식시킬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통일교의 민주당 전·현직 의원 금품 제공 의혹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민중기 특별검사팀으로부터 넘겨받은 사건 기록 검토에 착수했다.
경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일부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7년이 적용돼 올해 끝나기 때문에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내 특별수사팀에 사건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수사팀장은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한 조은석 특별검사팀에 파견된 박창환 총경이 맡게 됐다.
이번 전담팀은 '3대 특검'이 마무리 짓지 못한 사건을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본부장 김보준 경무관)와는 별도 성격이다. 경찰은 우선 수사기간이 끝난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넘긴 채 해병 순직 사건 관련 의혹 수사팀과 수사지원팀에 각 14명씩 28명으로 특수본을 구성했다. 김건희 특검과 내란 특검에서 이첩되는 사건을 담당하는 다른 2개 수사팀도 조만간 편성된다. 경찰 안팎에선 특수본 규모가 100명을 훌쩍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사건이 경찰이 살아있는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권력형 비리 수사를 강단 있게 해나갈 수 있을지 판단할 핵심 가늠자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역 여당 정치인 다수를 상대로 강도 높은 특수 수사를 진행할 능력과 의지가 경찰에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해서다.
경찰은 이재명 정부 들어 서부지법 폭동 사태 배후 수사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건, 리박스쿨 여론 조작 혐의 등 보수 정치권과 인사를 겨냥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정치 편향을 드러낸다는 공격을 받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최소한의 기계적 중립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찰 안팎에서 들린다.
경찰이 맡은 '정교유착' 의혹 사건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지난 8월 김건희 특검팀 조사에서 내놓은 진술에서 비롯됐다. 당시 윤 전 본부장은 특검에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도 금품을 지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특검은 해당 조서에 내사 사건 번호를 부여해 기록화했지만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해 수사를 벌이지 않고 놔뒀다.
윤 전 본부장이 자신의 재판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라며 "(당시 민주당 의원) 두 명은 한학자 총재한테도 왔다 갔다. 현직 장관급 등 4명과 국회의원 리스트를 특검에 말했다"고 말했다. 전날 결심 공판에서는 '2022년 한반도평화서밋' 행사에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 후보 측에 참여를 제한하라는 지시를 한학자 총재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공소사실처럼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집중한 것이 아닌데 당혹스럽다"고 주장했다.
윤 전 본부장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통일교 현안 청탁을 위해 "현금 수천만원과 명품 시계 2개를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 등 이름도 조사에서 거론됐다고 한다. 정치후원금이나 출판기념회 등으로 금전적 지원을 한 민주당 정치인이 15명에 이른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거론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통일교로부터 금품을 받지 않았다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전 장관은 방송사 인터뷰에서 "통일교를 포함해 어떤 금품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정 장관도 입장문을 밝히겠다면서 "제가 드릴 말씀은 싱거운 말씀"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특정 종교 단체와 정치인의 불법적 연루 의혹에 대해 여야,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