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내란특검이 오는 14일 수사기간 종료를 앞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과 그 이후 이어진 '내란 정국'에 조력한 국무위원 등 고위직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계엄 동기'와 연관된 수사 과정에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김건희씨의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정황을 확인해 범죄혐의를 적용했다.
"박성재, 김건희 청탁 받고 수사 정보보고 받아"
내란특검은 11일 박 전 장관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주현 전 민정수석, 이원모 전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해 공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에게 적용된 혐의는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죄다. 박 전 장관은 12·3 비상계엄 선포 후 ①법무부 출입국규제팀 비상대기와 ②계엄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 검토 ③교정본부에 구치소 수용공간 확보를 지시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범죄에서 중요임무에 종사한 혐의를 받는다.
이 중 합수부 검사 파견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①비상대기와 ③구치소 수용공간 확보 절차는 실제 실행 단계를 밟아 직권남용 혐의도 적용됐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난해 12월 4일 오후 계엄을 정당화하는 취지의 '다수당 입법독재' 내용이 담긴 문건을 법무부 소속 검사로부터 보고 받은 점도 직권남용 혐의에 포함됐다.
특히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동기와 박 전 장관의 협조 배경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파악된 '김건희씨 수사무마'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공소를 제기했다. 지난해 5월 이원석 당시 검찰총장이 김씨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전담수사팀을 구성하도록 지시하자, 김씨는 박 전 장관에게 이에 대한 경위 파악을 해달라고 청탁했다. 박 전 장관이 채 7시간도 지나지 않아 소관 과장으로부터 관련 사항을 보고받았다는 게 특검이 수사로 파악한 사실이다.
내란특검 박지영 특별검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김씨의 텔레그램 메시지가 있고 이에 따라 박 전 장관 본인이 확인하도록 지시한 행위도 있어 명백하게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입증이 된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무부 장관으로서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이를 행사해 정보보고를 받는 건 통상적 업무 수행"이라면서도 "이 사안의 경우 수사상황에 대한 보고를 지시한 과정 자체가 부정한 목적과 결합돼 있다. 개인적 청탁을 받고 수사상황을 확인한 것이어서 일반적 정보보고 업무와 다르고 법령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정보보고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전 장관은 김씨 관련 수사팀을 해체하는 수준의 검찰 수뇌부 인사를 단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특검은 이에 대한 직권남용 또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는 '김건희특검'과의 수사 중복 문제를 고려해 제외했다고 밝혔다.
박 특검보는 "(내란특검에서 의율한 부분은) 박 전 장관의 내란중요임무종사 범행에 있어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법적 이해를 같이 한다는 (범행의) 동기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고, 부득이 저희 쪽에서 인지가 돼 수사가 이뤄진 이상 이첩이 적절치 않아 청탁금지법 위반도 같이 기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판관 미임명' 권한대행들 기소…최상목 위증죄도 적용
한덕수 전 국무총리. 류영주 기자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 시급한 사안이 된 헌법재판소 재판관 공석을 채우지 않은 대통령 권한대행들도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한 전 총리와 최 전 부총리에 대해 특검은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는 헌재 재판관 후보자로 마은혁·정계선·조한창 후보를 추천했지만,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한 전 총리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에 다음 날 국회는 한 전 총리를 재판관 임명 거부와 비상계엄 선포 방조 등으로 탄핵소추했다.
한 전 총리가 금세 탄핵되는 바람에 재판관 후보 추천을 받은 후 임명하지 않고 버틴 기간이 매우 짧지 않냐는 질의에 대해 박 특검보는 "단순한 부작위에선 시간이 중요할 수 있으나 한 전 총리는 공개적으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며 "이는 작위에 의한 부작위다. 해당 발언으로 탄핵소추되면서 직무가 정지돼 (직무유기 시간이) 하루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탄핵하겠다고 의결할 때라도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철회했다면 모르겠지만 미임명을 강행했다"며 "작위에 의한 직무유기는 본인의 명백한 의사표현으로 범행 구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창원 기자최 전 부총리는 한 전 총리 탄핵소추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며 정계선·조한창 후보자는 임명했지만, 마은혁 후보자만은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끝내 임명하지 않았다. 의무 있는 행위를 하지 않아 직무유기가 성립한다는 게 특검 견해다.
또 최 전 부총리에 대해 특검은 위증죄도 적용했다. 한 전 총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문건을 받은 기억은 있으나 내용을 본 기억은 없다'고 진술한 것이 허위라는 취지다. 특검은 대통령실 CCTV상으로 당일 최 전 부총리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고 내용을 확인하는 장면이 입증된다는 입장이다.
박 특검보는 "중요한 부분에 대한 기억이 있음에도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위증죄를 빠져나갈 순 없다"며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가진 사람들이 법정·국회에서 하는 거짓말에 대해 엄단해야 한다는 관점"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관 졸속 검증' 대통령실 참모들도 재판행
한 전 총리가 탄핵 기각 결정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복귀한 후 헌재 재판관에 함상훈·이완규 후보자를 졸속으로 지명한 혐의도 재판을 받게 됐다. 대통령실에서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의뢰한 지 하루 만에 이들을 지명해 인사 검증 담당자들의 직무권한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청문 대상이 되는 공직자 등에 대해선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국가정보원 등이 법률상 인사검증 권한을 가지고 검증 업무를 수행해왔다. 당시 실무자들은 '시간 여건상 재산정보 밖에 확인이 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검증을 거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급하게 작성해야 했다.
특검은 이 과정에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 전 총리와 정 전 실장, 김 전 수석, 이 전 비서관이 함께 관여했다고 보고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또 특검은 비상계엄 다음 날인 12월 4일 이뤄진 '안가회동'과 관련해 이완규 전 법제처장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전 처장은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안가에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 전 수석, 박 전 장관 등 4명만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실제로는 한정화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함께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이 전 처장이 안가회동을 '친목 자리'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특검은 "이 전 장관과 박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통해 만연히 밥만 먹는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입증했다"며 거짓 진술로 의율했다. 박 전 장관이 안가모임 참석 직전 '다수당 입법독재'등 계엄 정당화 문건을 보고받은 점 등을 근거로 계엄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