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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내 삶을 통째로 바꾸는 변화…NDC가 뭐길래 ②물·바람·태양에서 얻는 전기…NDC 달성의 핵심 ③제조업 설비 다 바꿔야…수출경제 최대 난제 (계속) |
전력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한 에너지 전환이 당장은 새로운 투자 비용이 들더라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 '기회'인 측면이 있다면, 산업부문 배출 저감은 그간 온실가스 다(多)배출 제조업 중심으로 영위해온 수출경제엔 '도전' 요인이 크다.
다만 내년부터 유럽연합(EU)이 본격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이른바 '탄소 무역장벽'이 확대되는 만큼, 산업부문 탈(脫)탄소 전환도 미뤄둘 수만은 없는 과제다.
관건은 글로벌 흐름에 맞춰 산업경쟁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속도 조절을 하는 데 있다. 정부가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줄이는 감축목표(NDC)를 정하면서, 최다 배출 부문인 산업 기여 부담을 24.3~31%로 잡은 데에도 이런 고려가 있다.
다른 부문(△전력 68.8~75.3% △수송 60.2~62.8% △건물 53.6~56.2%)에 비해 상당히 완화된 수준이다. 부문별 연간 최저 감축률은 △전력 7.9% △수송 7.9% △건물 5.2% △산업 1.6%로 설계됐다.
전력부문이 지난해 잠정배출량 2억 1830만t에서 2035년까지 7천만~8830만t까지 줄이는 반면, 같은 기간 산업부문은 2억 5090만t에서 2억 915만~1억 9060만t으로 10년간 최소 6715만t만 줄여도 목표 달성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산업 부문은 제조업 설비·공정 교체를 위해 중장기 투자가 필요한 만큼 규제보단 '지원'에 초점을 맞춰 탈탄소 전환 준비를 마친 뒤, 차기 2040년 NDC부터 감축 목표치를 높여 저감 성과를 낸다는 복안이다. 일단 에너지 전환에 먼저 속도를 내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원자력만큼 낮추고 전기차 확대 등 수송 부문 배출 저감으로 시간을 버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선 지금부터 산업 부문 탈탄소 전환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연·원료 탈탄소 및 공정 전기화…저탄소 제품 시장 확대
정부는 강도 높은 혁신 지원을 바탕으로 연·원료의 탈탄소화, 공정의 전기화, 저탄소 제품 생산 확대를 통해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배출저감을 새로운 산업경쟁력으로 확보, 녹색산업을 육성하는 전략도 있다.
우선, 지난해 잠정배출량 1억t으로 산업 부문 최다 배출 업종인 철강업의 저감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철광석과 석탄을 녹여 쇳물로 만드는 핵심 공정, 용광로를 전통적인 '고로' 기반 생산방식에서 탄소배출량이 낮은 '전기로' 기반으로 전환을 추진한다.
기존 고로가 유연탄을 연소해 일산화탄소(CO)가 철, 광석과 환원반응을 일으켜 1200~1500도 온도에서 쇳물을 생산해 쇳물에 탄소나 유황(S) 등 불순물이 함유돼 있었다면, 연료로는 수소(H2)가 함유된 천연가스를 활용하고 원료도 철광석 대신 수소환원과정을 거친 고온성형철(Hot Briquetted Iron)을 활용하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에, 전기로 에너지 효율 개선까지 감안하면, 생산톤당 약 75%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이 기대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당장 포스코의 포항-광양 소재 고로 11개만 전기로로 바꾸는 데도 최소 11조 원이 필요할 걸로 예상되는 등 비용투자 규모도 상당하다. 전기로의 주원료인 철스크랩 확보, 전기로 전환으로 인한 전력사용량 증가를 고려한 전기요금 안정화도 선행 과제다.
대신 먼저 전환에 성공하면, 새로운 수출시장을 열 수도 있다. 정부는 2035년 이후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목표로 지원을 확대해 그린철강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석유화학(지난해 배출량 5360만t)도 원료인 납사(Naptha) 사용을 저감할 방안을 모색한다. 납사는 원유 증류 과정에서 생성된 휘발성 탄화수소 혼합물인데, 이를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열분해유 등으로 대체하는 아이디어다. 공정연료로 사용하는 중유, 석탄 등은 저탄소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C)와 무탄소 연료인 수소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양질의 폐플라스틱 자원을 확보하고 재활용 기술 개발에 나선다.
시멘트(지난해 배출량 3930만t)는 일반적인 포틀랜드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원료인 석회석(CaCO3) 사용 비율을 줄이고 혼합물 비중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제조공정의 열원으로 사용하는 유연탄도 폐합성수지와 같은 순환자원으로 대체한다. 이를 위해 관련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혼합시멘트 제품의 수요 창출을 위한 공공 의무 조달 및 생산 인센티브 등을 추진한다.
이밖에 반도체·디스플레이(지난해 배출량 270만t)는 공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를 지구온난화지수(GWP, Global Warming Potential)가 낮은 것으로 전환하는 등 업종별 탈탄소 전환 계획을 세웠다.
다만 정부는 산업 부문 전환 과정에서 업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상용화가 어려운 감축 수단은 제외하고, 규제보단 지원에 초점을 맞춰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탄소중립산업법을 제정해 탄소중립산업 육성과 산업계 탈탄소 전환에 중점·특화된 지원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배출권거래제(ETS) 참여업체를 대상으로 온실가스 감축설비 설치·교체 비용 지원도 확대한다.
이미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된 업종을 지원하는 '녹색금융'에서 배제된 다배출업종의 친환경 전환에 집중하는 '전환금융' 조성에도 나선다. 내년 중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 민간 금융을 조달해 2030년까지 총 420조 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산업 부문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을 위한 'K-GX(한국형 녹색전환)' 전략을 내년 상반기까지 수립해 구체화할 예정이다.
규제보다 지원 초점·K-GX로 녹색산업 육성…새 국제경쟁력으로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지난 2023년 7월 화석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산업 및 사회 구조 전환을 의미하는 녹색전환 분야 총괄 정책으로 'GX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안정적인 무탄소에너지 확보 계획에 더해, 특히 한국경제에 가장 큰 위기감으로 다가온 건 바로, '제조업의 연료·원료 전환' 방침이다. 일본정부는 민간과 공공 합산 10년에 걸쳐 150조 엔(약 1400조 원) 규모의 GX 투자를 통해 소재산업 탈탄소에 나선다. 이를 위해 GX 경제이행채를 활용한 선행 투자지원, 탄소가격제 강화, 전환금융 도입 등 새로운 금융수단 활용을 모색하기로 했다.지난 9월 '2035년 NDC 수립을 위한 대국민 공개 논의-산업 부문'에선 이 같은 제조업 '경쟁국'의 산업 부문 탈탄소 전략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0~2050년 넷제로 전환 시나리오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초반부인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은 전력과 수송 부문이 주도한다면, 2030년부터는 산업 부문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확대로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어느 정도 저감하고 나면, 이후엔 제조업 배출량을 줄여야 NDC의 목적인 파리협정 온도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오형나 교수는 "2035년 정도 되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 걸로 나오는데, 이게 가능한 이유는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기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후반부에서 줄어들어야 되는 것은 산업부문,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소재산업"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소재산업은 대부분 장치산업이라 한번 기계가 도입되면 비교적 긴 기간 유지되다가 나중에 대체되는데,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산업 부문의 소재산업 장비 교체 시기가 이제 시작되는 시점"이라며 "2040년, 늦어도 2045년이 되면 산업부문도 넷제로(순배출량=0)가 이뤄질 전망이라, 이 경우 글로벌 상품시장 자체가 넷제로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국이라고 할 만한 일본의 산업 부문 NDC 기여 목표가 40%로 설정되고, 독일이 60% 수준의 감축 목표를 잡은 건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재생에너지와 전기차를 중심으로 녹색산업 경쟁력을 선점, '제조업 패권 교체'를 노리고 있다. 한국이 2035년 NDC에서 전력과 수송, 건물 부문 감축 목표를 높게 잡고 산업 부문 부담을 줄여줬다고 해서 안도하는 게 아니라, 차기 2040년 NDC에서 산업 부문 부담을 대폭 높일 준비를 철저히 해둬야 한다는 의미다.
당장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내년부터 시행된다. 다른 나라보다 엄격한 EU 배출권거래제(ETS)를 적용받는 역내 기업 생산제품이 부담한 탄소비용과 동일한 탄소비용을, EU 시장에 진입하려는 역외 기업에 물리는 제도다. 현재 EU ETS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80유로(약 13만 원)/t 안팎인 데 반해, 한국 ETS의 배출권 가격은 1만 원 이하로 격차가 큰 만큼 해당 기업의 추가 부담이 크게 늘 전망이다. 대상 업종은 내년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수소, 전력 등 6개 업종을 시작으로, 추후 확대된다.
일각에선 파리협정 탈퇴를 통보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기조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중장기적 미래를 보고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글로벌 시장 흐름과 수요를 봐 가며 신중히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언사와 달리, 미국 시장과 기업은 기후변화 대응과 탈탄소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본다.
산업연구원 정은미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목소리에 변화가 생긴 건 트럼프 행정부 정책 때문만이라기보단) AI(인공지능)를 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재생에너지만으로 그 전력을 다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조 바이든 전 행정부 시기 제정된) IRA(인플레이션감축법)란 법률 기반 때문에 관성이 유지돼 투자가 남아 있다. 또 오바마 때 수립한 정책-지역단위 계획의 투자도 계속돼 청정기술을 계속 확보하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새로 설치된 모든 발전용량의 95% 이상이 재생에너지로 구성됐다.
글로벌 탄소중립 이슈가 트럼프 행정부 4년 때문에 후퇴할 리 없는 '메가 트렌드'인 만큼, 이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정 연구위원은 "미국은 정부가 바뀌면 또 한 번 세계 (녹색)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모든 산업 생태계를 갖고 있어 탄소중립 추진에 가장 좋은 기반을 가진 국가라는 말이 2020년부터 나왔다"면서 "산업부문 탈탄소는 개별산업 혼자가 아니라 전 국가적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만큼, 정권과 정치변화에도 일관된 국가적 목표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성우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미국의 연방정부 말고 주(州)정부의 포지션도 중요하다"며 트럼프 정부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기후공시를 하지 않기로 했는데, 캘리포니아와 뉴욕은 주정부 자체적으로 기후공시 의무화를 준비해 결과적으론 미국 전체 대기업의 90%가 기후공시 의무화를 적용받게 되는 현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주별 이런 움직임이 전체 미국을 대표하진 못해도 상당 부분 반발력을 갖고 있다"면서 "김앤장이 미국 본사도 직접 자문하는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들 기업 내 기후전략이 얼마나 후퇴할지 궁금했지만, 제가 맡는 기업들은 후퇴 조짐이 크게 보이지 않아 신기해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