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탈팡' 인증글이 올라오고 있다. SNS 캡처"쿠팡이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유진(25)씨는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문자를 받고 쿠팡을 탈퇴했다. 여러 논란이 있고 그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른바 '탈팡' 행렬에 동참한 것이다.
온라인에도 "반사회, 반기업 쿠팡을 탈퇴했다. 탈팡 인증! 다른 대안들이 더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탈팡 인증.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등의 '탈팡 인증' 글이 올라오고 있다.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노동자 과로사 은폐 논란에 휩싸이면서 쿠팡을 탈퇴하는 '탈팡' 인증이 이어지고 있다. 쿠팡의 하루 이용자 수는 유출 사태 이후로 계속 줄어들어 1400명대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개인의 가치에 따라 윤리적 소비를 하는 '가치 소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신 차려야 다시 가입"
한 SNS에 올라온 '탈팡' 인증글. 작성자는 쿠팡 회원을 탈퇴하면서 '쿠팡이 반사회적, 반기업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SNS 캡처 서울 종로구에 사는 이모(33)씨도 "주변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 쿠팡을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 있다"며 "나도 올해 아기가 생기고 나서 그런 기업의 나쁜 행태가 당장은 영향이 없지만 아기를 생각해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쿠팡은 고객 계정 약 3770만 개의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 일부 주문정보, 공동현관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민관합동조사단과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고, 경찰도 대규모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고강도 수사 중이다.
그런데 이후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국회 불출석, 합의되지 않은 쿠팡의 자체 조사 결과 발표 등으로 시민들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 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여 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조영아(56)씨도 더 이상 쿠팡을 사용하지 않는다. 조씨는 "쿠팡이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벌써 조사를 해서 입장을 발표했다고 하더라"라며 "쿠팡이 지금 미국 회사다 보니 우리나라 국민의 입장보다는 오히려 미국 자사의 입장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전했다.
쿠팡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퇴직금 미지급 의혹과 산업재해 은폐 의혹 등 노동 문제에도 휩싸였다. 또 상설특검팀은 쿠팡이 지난 2023년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쿠팡 측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퇴직금법) 위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쿠팡이 지난 2021년 사망한 물류센터 노동자가 받은 산업재해 판정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낸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고객정보 유출, 노동자 안전과 생명 방치, 총체적 불법기업 쿠팡 규탄 기자회견' 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시민사회와 노동계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노동 문제까지 더해 쿠팡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쿠팡 소속 노동자, 쿠팡 산재 사망자 유족 등 40여 명은 지난달 29일 '안전한 쿠팡 만들기 공동행동'을 발족하고 "쿠팡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비용으로 취급하며 과로·산재·노동권 침해를 구조적으로 반복해 왔다"라고 비판했다.
정치권과 문화계에서도 탈팡 인증이 이어지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지난달 21일 페이스북에서 쿠팡을 비판하고 "참고로 저는 탈팡했다"며 인증샷을 올렸다. 앞서 18일에는 배우 김의성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탈퇴한 모 업체는 정신 좀 차리는 게 보이면 다시 가입하려고 한다", 19일에는 배우 문성근씨도 "쿠팡 안쓰기 쉽네"라며 '탈팡'을 인증했다.
"탈팡, 윤리적 기준 적용한 선택"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데이터 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기준 쿠팡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는 1488만 2151명으로 집계됐다. 다음 날인 20일에도 1484만 3787명을 기록하며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는 장기간 유지되던 1500만 명대가 처음으로 붕괴된 사례다. 약 20일 만에 300만 명 가까운 이용자가 이탈했다.
'탈팡' 인증은 쿠팡의 여러 논란에 실망하고 윤리적인 기준에 맞게 '선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최철 교수는 "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소비하지만 최근 윤리적인 인식과 기준이 높아졌다"며 "그래서 소비자가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윤리적인 기준과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해 자신의 선택이 이것에 부합하는지를 따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비자 본인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은 선택을 하지 않기로 하고, 소비에 반영되는 것이 지금처럼 탈퇴나 불매 운동으로의 전개"라며 "소비자의 이런 반응은 오히려 규제 당국의 사후 제재 못지않게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건국대학교 소비자학 담당 김시월 교수는 '탈팡' 움직임을 "플랫폼 기업의 신뢰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항거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현재 개인정보 유출뿐 아니라 미국에 본사를 두고 시장 이익은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쿠팡 자본의 구조, 청문회 등에서 보인 쿠팡 임원진의 태도 등에 소비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기업의 전문성과 신뢰성은 물론 진정성까지 파괴된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시장은 편리한 만큼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시스템적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와 다르게 플랫폼 중심의 시장에서 기업을 감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이른바 '프로슈머' 역할을 하려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집단적인 탈팡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