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각종 무역법을 활용해 관세를 부과하는 '품목별 관세'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정부의 쿠팡 제재와 관련해 강력한 카드인 무역법 301조 조사에 나설지 곧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미국이 한국의 각종 디지털 규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고 벼르던 상황에서, 쿠팡을 빌미로 광범위한 관세 폭격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최근 구글 고정밀 지도 반출을 전격 허용한 것이 쿠팡 조사를 막는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디지털 규제 완화 요구에 화답한 만큼 미 측이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는 전망이다.
쿠팡 조사 착수 여부 7일 발표…광범위 관세로 확대 가능성
6일 산업통상부 등 통상 당국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주요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위반 등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근거한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결하자, 그 공백을 무역법 301조 위반에 따른 품목별 관세로 대체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미국이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부과한 10%의 '글로벌 관세'는 미 의회 승인 없이는 150일 동안만 유지할 수 있는 만큼, 향후 관세 체계는 무역법 301조 등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최근 현지 인터뷰에서 "조사 결과 불공정 무역 관행이 확인되고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는 활용 가능한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 정부가 해외 시장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불공정 행위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통상 상대국을 압박하는 강력한 통상 카드로 활용되면서 '슈퍼 301조'로도 불린다. USTR이 조사 결과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 있다고 결론 내리면 상한 없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특히 부과 기간은 4년이지만 이해관계자가 요청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사실상 기간과 강도가 제한 없는 막강한 통상 카드인 셈이다. 조사 기간도 통상 1년 이상 걸리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조사를 5개월 내 끝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글로벌 관세 150일 시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지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돌연 쿠팡 사태가 도화선이 됐다. 지난 1월 쿠팡의 미국 투자회사가 미 기업인 쿠팡을 상대로 한국 정부가 차별적 대우를 했다며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조사해 달라고 USTR에 청원서를 제출하면서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 황진환 기자해럴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 연방 하원에 출석해 직접 비공개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USTR은 청원이 접수되면 접수 후 45일 내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조사 여부 결정은 기한이 막바지인 7일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문제는 쿠팡을 고리로 미국이 광범위한 관세 부과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301조 조사가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USTR이 자체 판단에 따라 '교차 보복' 방식으로 상대국의 관세 품목과 세율 등을 폭넓게 정할 수 있다. 앞서 미국은 프랑스의 디지털 규제를 문제 삼아 301조 조사에 나섰지만, 결국 범위를 넓혀 프랑스산 와인·치즈·핸드백 등을 대상으로 관세 부과에 나선 바 있다. 쿠팡 사태에 대한 301조 조사가 명분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 지도 전격 반출에 화답할까…"전쟁 상황까지 고려해야"
연합뉴스전문가들은 한국의 △구글 고정밀 지도 반출 허용 조치와 △정부·정치권의 스킨십이 USTR의 조사 착수 여부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유화책을 구사해 왔다. 이 가운데 지난달 27일 국토교통부가 구글의 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승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6년 국가 안보와 지리 정보 유출 우려를 이유로 불허 결정을 내린 이후 약 10년 만에 전격적으로 빗장을 연 것이다.
해당 승인은 안보 논리보다는 통상 협상에서의 협상력을 고려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USTR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을 대표적인 디지털 서비스 무역 장벽으로 지목한 바 있다.
정치권 움직임도 긴박하다. 정치권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미 측에 지속적으로 쿠팡에 대한 조치가 '미국 기업 차별'이 아닌 '국내 소비자 보호 및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법적 대응'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한미의원연합은 구체적인 쿠팡 개인정보 유출 건수와 관련 법 규정 등을 미 측에 전달하는 등 설명을 이어가고 있다.
서강대 허정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쿠팡 사태가 주요 통상 이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미국이 이를 빌미로 관세 정책을 펼 수 있다"면서도 "우리 정부의 지도 반출 허용 조치는 비관세 부문 압박에 대비해 미리 움직인 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도 통화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 정부가 지도 반출을 허용하고 지속적으로 쿠팡 사태를 설명해 온 점을 미국이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미국의 전쟁 상황까지 고려하면 조사에 착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