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중동의 불안이 다시 국제 유가를 흔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주변으로 긴장이 확산되면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한번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연장, 원유 도입선 다변화,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 의무 시행 등 긴급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취약성에 대한 불가피한 반응이다.
이 시점에서 신재생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그 논거를 어디에서 찾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흔히 탄소중립이나 기후위기 대응이 전면에 내세워지지만, 에너지 정책의 관점에서는 리스크 관리와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경제적 논리가 보다 냉정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안보와 포트폴리오 전략
금융에서 포트폴리오 이론의 핵심은, 하나의 자산에 집중할수록 그 자산의 변동성이 곧 전체 위험이 된다는 것이다. 분산투자는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아니라, 주어진 수익률 하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에너지 정책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한국은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수준이며, 석유 수입의 상당 부분이 중동에 집중되어 있다. 원유는 전쟁, 제재, 산유국 카르텔의 감산 결정 등 지정학적 사건에 극도로 민감한 자산이다. 반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연료비가 없고 수입이 필요 없으며 지정학적 충격과의 연관성이 낮다. 따라서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믹스에 편입시키는 것은, 포트폴리오에서 지정학 리스크의 비중을 줄이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경험이 보여주는 교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유럽 전역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절반 이상을 의존하고 있었고, 공급 차단은 곧바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로 이어졌다.
유럽연합은 이후 리파워EU(REPowerEU) 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의 구속력 있는 목표를 42.5%로, 도전적 목표를 45%로 설정하면서 설치 속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이미 전력 수요의 절반 이상을 풍력으로 충당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던 덴마크는 상대적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주목할 것은, 이 전환이 환경 논리만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 곧 안보라는 현실적 판단이 그 배경에 있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 대응 수단인 동시에, 지정학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재정의된 것이다.
합리적 전환을 위한 조건
다만 재생에너지 전환이 중요하다는 것이, 속도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간헐성이라는 본질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 스마트그리드, 백업 전원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무리한 전환은 전력 시스템의 불안정, 전기요금 급등,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합리적인 접근은 리스크 관리의 논리 위에서 경제성 분석을 병행하는 것이다. 어느 수준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에너지 안보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면서 동시에 비용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 전환의 방향은 분명하되, 그 속도와 경로는 면밀한 비용-편익 분석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위기를 구조 전환의 계기로
1970년대 오일쇼크, 2022년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그리고 현재의 중동 불안은 모두 같은 교훈을 반복하고 있다. 특정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외부 충격 앞에서 경제 전반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의 단기 대응은 불가피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나 비축유 방출만으로는 구조적 취약성을 해소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 에너지 저장 기술 투자, 전력망 고도화는 당장의 유가를 낮춰주지는 않지만, 다음 위기를 훨씬 낮은 비용으로 넘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는 에너지 정책은 없다. 그러나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분산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이 포트폴리오 전략이 주는 교훈이며, 지금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주목해야 하는 경제적 이유다.
장연재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