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중동 전쟁으로 국내 기름값이 치솟자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지 27일로 2주를 맞는다. 급등한 가격을 끌어내리는 성과는 있었지만, 문제는 2차 석유 최고가격 산정부터다. 중동 전쟁이 격화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해 국내 기름값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산식을 단순 반영할 경우 휘발유 가격이 2천원대로 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등 지원책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제 유가와의 격차를 메워야 해 재정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최고가격제 2주 시행해보니…휘발유 79원·경유 103원 하락 효과
황진환 기자26일 산업통상부와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국내 휘발유·경유 전국 평균 가격은 리터당 1810원대를 유지하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최고가격제 시행 직전(12일)과 비교하면 전날 오후 5시 기준 휘발유 가격은 79.81원, 경유는 103.68원 각각 하락했다. 중동 전쟁 발발 직전에 주유소가 일제히 기름값을 올린 폭과 비교하면 체감 인하 폭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일정 부분 정책 효과는 거뒀다는 평가다.
산업연구원도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의 정책적 함의와 향후 방향' 보고서를 통해 최고가격제의 단기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보고서는 최고가격제가 가격 상승 속도를 억제하고 소비자 부담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시장 안정 의지를 전달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고 시장 안정성도 높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동 사태 장기화로 에너지 수급 불안이 커질 경우, 가격을 낮추는 정책과 소비를 줄이려는 정책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정책 신호가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부터 기름값 2천원 넘나…주유소 인상 속도도 빨라질 듯
그러나 기름값은 다시 반등할 전망이다. 27일 0시부터 2차 석유 최고가격이 고시되는데, 구조상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최고가격은 정유사의 주간 세전 공급가격인 '기준가격'에 국제 석유제품 가격의 변동 비율을 뜻하는 '변동률'을 곱한 뒤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제세금을 더해 산정한다. 기준이 되는 1차 최고가격은 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실내등유 1320원이다.
문제는 변동률에 해당하는 국제 유가다.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휘발유는 2월 넷째 주 배럴당 78.84달러에서 3월 셋째 주 144.26달러까지 83% 급등했다. 같은 기간 경유도 150.2% 폭등했다. 1차 최고가격제 시행 전날 기준과 비교해도 휘발유와 경유는 각각 16.2%, 14.4%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1차 최고가격에서 제세금을 제외한 뒤 국제 유가 변동률을 단순 적용할 경우 국내 기름값이 대략 10% 상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2천원 안팎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는 유류세 인하 등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펼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를 고려해 최고가격을 낮게 산정할 수도 있다.
최고가격이 높아질 경우 전국 주유소는 빠르게 기름값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일부 주유소는 2차 최고가격 발표 전임에도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시민단체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 따르면 전날 기준 20일 대비 가격을 인상한 주유소는 휘발유 670곳, 경유 457곳으로 나타났다.
감시단 이서혜 대표는 "대부분 주유소가 정유사로부터 최고가격 이하로 기름을 공급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가격 인상 요인은 없다"며 "27일 2차 최고가격 적용 전에는 가격을 인상하지 않아야 하는데 인상 주유소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재정 부담↑…차량 5부제와 메시지 혼선 우려도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입구에 차량 5부제 실시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류영주 기자정부는 기름값 상승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재정 부담은 적지 않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석유제품 최고가격이 일부 올라갈 수 있다. 상승폭을 줄이기 위해 유류세를 인하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며 "특히 경유 가격 상승폭을 억제해 서민 부담을 경감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제 유가가 꾸준히 상승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고가격제가 정부 재정으로 정유사 손실을 보전하는 구조인 만큼, 국제 유가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정책 시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서강대 허정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2차 최고가격제를 포함해 앞으로 한두 차례는 상한선을 올리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3차 조정 전 정부가 취약 업종 등을 중심으로 보조금을 지원해 시간을 벌고 충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차량 5부제 정책과 메시지가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요 억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동시에 최고가격제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 것이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경제학자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5부제가 나온다는 것은 석유 가격이 쉽게 내려오지 않고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신호인데, 석유 최고가격제는 자동차 이용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도 보고서에서 석유 최고가격제가 단기적으로는 가격 상승 속도를 억제하고 소비자 부담 완화에 기여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초과수요를 유발하고 공급 축소 등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격 통제 정책은 위기 상황에서의 일시적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정책 효과보다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허 교수는 "가격의 수요 억제 측면으로 본다면 기름값 상승이 사람들의 수요를 억제하는 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는 절대적인 공급이 적은 상태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초과 수요가 발생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