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중요임무 종사' 한덕수 2심 징역 15년 선고. 연합뉴스12·3 내란 사태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항소심에서 1심보다 8년 줄어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가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했던 것과 비교하면 형량이 크게 낮아졌다.
주요 혐의 대부분은 항소심에서도 유죄로 인정됐지만,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주도하거나 사전 공모한 정황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감형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 전 총리에게 유리한 정상들을 보다 폭넓게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부작위범 무죄…"법원 판단 대상 아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2-1부(이승철 조진구 김민아 고법판사)는 전날 한 전 총리의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이 유죄로 인정했던 '부작위범' 부분에 대한 판단을 뒤집고 무죄로 봤다.
부작위 혐의는 한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방기했다는 내용이다. 1심은 이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의 실행행위로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법리적으로 별도의 부작위범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한 전 총리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를 막지 않았다고 본 원심 판단에 대해서도 "특별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형사재판에서 검사가 공소 제기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는 '불고불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앞서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한 전 총리에 대해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로서의 '부작위 책임'을 강하게 물은 바 있다.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 부의장이자 국무총리로서 부담하는 작위의무를 이행했다면,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등 내란행위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다는 판단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항소심 판단을 두고 한 전 총리의 책임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항소심은 한 전 총리의 책임을 없다고 본 것이 아니라, 부작위범은 공소장에 없어 이를 법원이 직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혐의 대부분 유죄 유지…"내란 가담하는 편에 서"
실제로 항소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주된 혐의에 대해서는 1심 판단을 대부분 유지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허위공문서 작성, 공용서류손상, 위증 등 핵심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우선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국무회의 심의의 외관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한 전 총리 측은 국무위원 소집 건의가 계엄 선포를 막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이상민 전 장관과 주요 기관 봉쇄 및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이행 방안을 논의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비상계엄 해제 뒤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선포문에 서명하고 폐기한 혐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위증한 혐의 역시 유죄로 봤다.
다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허위작성공문서 행사 혐의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단이 유지됐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가 대통령비서실 부속실 서랍에 보관된 것만으로는 형법상 행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위증 혐의 중 이상민 전 장관에게 문건을 건네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한 진술 부분의 경우에는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1심과 달리 판단했다.
한편 항소심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헌정질서를 침해한 '내란'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비상계엄의 위헌성과 중대성을 거듭 강조했다. 재판부는 "폭력 등의 수단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한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헌법 기능을 소멸시키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며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를 직접 침해하는 범죄로 그 성격과 중대성은 어떤 범죄와 비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국무총리이자 대통령의 제1보좌기관이자 행정부 2인자로서 대통령 권한이 합헌·합법적으로 행사되도록 보좌하고 잘못된 권한 행사를 견제·통제할 의무가 있었다"며 "부여받은 권한과 지위에서 오는 막중한 책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려는 방법으로 내란 가담하는 편에 섰고 죄책을 감추기 위해 사후 범행까지 저질렀다는 점에서 죄책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징역 15년' 특검 1심 구형량과 같아
서울고법 제공법조계에서는 이번 감형 배경으로 항소심 재판부가 한덕수 전 총리의 '가담 정도'를 1심과 다르게 평가한 점을 꼽는다. 핵심 혐의 대부분의 유죄 판단은 유지됐지만, 한 전 총리의 구체적인 역할과 책임 범위를 보다 세밀하게 따져 형량을 다시 정했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소울의 서정빈 변호사는 "핵심 범죄의 유죄 구조 자체는 1심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항소심은 한 전 총리를 적극 가담자라기보다 상대적으로 소극적 조력자에 가깝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한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서 헌법적 책무를 저버렸다고 강하게 질타하면서도, 비상계엄을 사전에 공모하거나 주도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직후 직접 해제 국무회의를 소집·주재해 계엄 종료 절차를 진행한 점 역시 감형 사유로 반영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내란 행위에 관해 사전에 모의하거나 조직적으로 주도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기록상 찾기 어렵다"며 "피고인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되자 대통령을 대신해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 주재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1심의 징역 23년형보다 상대적으로 낮지만, 특검 1심 구형량인 징역 15년형과 같은 형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진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심은 국무총리라는 지위 자체에 따른 책임을 매우 무겁게 평가했다면, 항소심은 실제 행위의 적극성과 소극성을 더 세밀하게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전·단수 이상민 항소심에도 영향 미칠까
12·3 비상계엄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등의 의혹을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황진환 기자
이번 판결은 향후 비상계엄 관련 다른 국무위원들 항소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이행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이상민 전 장관 사건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전 장관이 한 전 총리보다 실행 관여 정도가 더 크다고 판단될 경우 형량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전 장관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오는 12일 열린다. 이 전 장관은 2024년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등 주요 기관 봉쇄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받고 허석곤 당시 소방청장에게 협조를 지시한 혐의(내란 중요임무 종사·직권남용)로 기소됐다.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단전·단수 지시를 한 적이 없고 대통령으로부터 관련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는 취지로 위증한 혐의도 있다.
1심은 이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위증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다만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